
“두 사람이 보여준 용기와 헌신에 잘못된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딸의 혼인신고 수리 여부를 결정할 재판부에 박여진(36)의 아버지가 전한 진술서의 한 대목이다. 여진은 2020년 9월 같은 여성인 황희연(37)과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지난 2024년 결혼기념일 4주년을 맞아 관할 시청에 접수한 혼인신고가 불수리 되자 이에 불복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여진이 소송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는 딸을 말렸다. ‘왜 나서서 돌을 맞으려고 하느냐’는 염려였다. 여진은 “그래도 이 나라에서 살려면 노력이라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딸에게 청첩장을 받고도 결혼식에 못 갔던 여진의 부모는 이번 만큼은 딸 옆에 있어 주기로 했다.
그렇게 쓰인 진술서에서 여진의 어머니는 “결혼식 후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둘의 관계에 대해 슬픈 마음을 전했을 때, 둘은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증명하고, 보여주겠다고 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둘은 변함없이 서로 사랑하고 위하며 함께 미래를 계획하고 살아나가는 모습을 보여줘 저의 우려를 긍정과 응원하는 마음으로 변모하게 해줬다”고 적었다.
“아버지로서, 한 사람으로서 존중한다”
결혼식 후 여진은 희연과 매달 부모를 찾아 식사하고, 사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매년 돌아오는 여진 부모의 생일도 빼먹지 않고 챙겼다. 여진 어머니 환갑 때는 휴양림에 숙소를 잡고 온 가족이 모여 축하 파티를 열었다. 6년 가까운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여진은 “부모님도 희연이를 만나고 제가 ‘사람이 됐다’고 느끼시니 제 반찬은 안 보내도 희연이가 좋아하는 반찬은 챙겨 보낼 만큼 희연이를 예뻐하신다”고 했다. 희연도 “여진이 생일마다 부모님이 용돈도 챙겨주시고, 여진이라는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며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지만, 우리가 결혼 생활하는 모습을 보며 믿음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여진의 아버지는 “두 사람의 교제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이 마주할 적대적 환경에 마음과 몸이 다칠까 걱정이 많았다. 또한 어린 시절의 치기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며 “하지만 두 사람은 외부의 어려움에도 사랑과 헌신으로 서로 북돋우며 용기 있게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박여진과 황희연을 존중하고 그들의 의지를 존경한다”고 했다. 이어 “두 사람을 가까이서 바라보는 사람 중 하나로서 동성 간의 부부관계라 할지라도 평범한 부부와 다름이 없음을 느낀다”며 “서로 다른 점에 집중해 차별하기보다는 근본적인 옳음에 집중하며 포용하는 것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여진 어머니도 “부부가 사랑과 신뢰로 맺어지고 이해와 헌신으로 인생의 역경을 이겨내며 평생 함께하는 관계라면, 여진이와 희연이는 아주 당연하게도 부부”라고 적었다.
11년 만에 부부의 고충 물어본 법원
여진과 희연, 부모님의 간절한 마음이 통한 것일까. 법원은 지난달 27일 여진과 희연이 제기한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에 대한 불복 신청과 위헌법률심판 제청(혼인평등소송)에 대해 심문기일을 열었다. 2015년 같은 소송을 냈던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부부 이후 법원이 관련 소송을 기각·각하하지 않고, 심문기일을 잡은 건 11년 만이었다.
이날 심문기일 직후 한겨레와 만난 희연은 “서프라이즈로 심문기일이 잡혀 놀라고 감사했죠. 저희 얘기를 전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희연·여진과 같은 시기 소송에 나섰던 다른 동성부부 9쌍의 사건이 줄줄이 기각·각하된 탓에 큰 기대는 없던 터였다. 함께 소송에 나섰던 다른 동성부부들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재판부는 법적으로 혼인 관계를 인정받지 못하는 고충은 무엇인지, 사실혼 관계와 동성 결혼의 차이는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동성 동반자를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한 2024년 대법원 판결과 호주제 폐지, 법적 성별 정정이 가능해진 사실을 언급하며 변화의 흐름을 짚기도 했다. 두 사람은 조금의 희망을 봤다. “한 걸음 앞으로 나갈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희연이 말했다.
서로를 보호하고 책임질 수 있다면
심문기일은 열렸지만, 두 사람 결혼에 대한 법적 인정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앞서 기각·각하된 사건들에서 법원은 혼인제도가 ‘남여 간의 결합’을 전제로 하기에 혼인신고 불수리 처분이 위법하거나 위헌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민법상 혼인의 성립을 규정한 조항에 동성 간 혼인을 금지하는 내용이 없고, 이런 조처가 헌법상 혼인의 자유와 인격권을 침해한다는 원고 쪽 대리인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여진은 그래도 싸움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결혼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내가 이 사람을 온전히 책임질 수 없겠더라고요. 갑자기 희연이가 아플 때 제가 가장 먼저 연락을 받고 싶고, 보호자로 병원에 가고 싶어요. 제가 먼저 세상을 떠나더라도 저희가 함께 다져온 삶의 기반이 희연이를 지켜주기를 바라고요.” 희연도 말했다. “저희가 바라는 건 특별한 권리가 아닙니다. 다른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서로 보호하고 책임질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인정받고 싶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다는 이 단순한 바람이 걱정과 두려움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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