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동차 관세 인상, 미군 감축 등으로 독일을 잇따라 압박하는 가운데, 독일은 “예상 가능했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유럽에 등 돌려온 트럼프 행정부 행보에 비추어 보면 미국과의 유대가 느슨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유럽의 ‘자주 방위’ 행보가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2일(현지시각) 독일 데페아(DPA) 통신 인터뷰에서 미국의 독일 주둔 미군 감축에 대해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독일은 (독일) 람슈타인, 그라펜뵈어, 프랑크푸르트와 다른 여러 곳에서 유럽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미국인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둔 미군 숫자가 줄어도 독일 내 미군 기지들의 기능은 유지된다는 뜻이다.
앞서 미 국방부는 성명을 내어, 트럼프 대통령 지시에 따라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독일 주둔 미군 약 5000명 철수를 명령했다고 밝힌 바 있다. 숀 파넬 국방부 대변인은 철수가 6∼12개월 안에 끝날 거라고 했다. 최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미·이스라엘-이란 전쟁에 대해 “미국이 굴욕 당하고 있다”고 평가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주독 미군 감축으로 응수한 것이다.
지난달 기준 유럽에는 약 8만6000명의 미군 병력이 주둔하고 있고, 이중 약 3만8000명이 독일에 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미군 유럽사령부(EUCOM)가, 람슈타인에 미 공군의 아프리카·중동 작전 거점인 공군기지가 있다. 피스토리우스 장관은 미군이 줄어도 방위 태세에 차질이 없도록, 유럽의 군사 강국인 프랑스·이탈리아·폴란드·영국과 군사 과제를 논의하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 카드에 대해서는 정치권에서 더 강경한 반발이 쏟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부터 유럽산 자동차·트럭에 대해 25% 관세율을 적용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지난해 미국-유럽연합(EU) 간 무역 협정으로 정한 15% 관세율을 뒤집은 것이다. 이에 베른트 랑게 유럽의회 국제통상위원장은 이날 엑스(X)에 “트럼프 계획은 받아들일 수 없다. 유럽연합이 (무역 협정 등) 약속을 지키는 동안 미국 쪽은 자기가 한 약속을 계속 깨고 있다”고 성토했다.
미국 워싱턴 주재 유럽연합 대표부 역시 아에프페(AFP) 통신에 미국이 무역 협정 등을 지키지 않는다면, 유럽연합 공동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선택지를 열어둘 것”이라고 했다. ‘무역 바주카포’로 불리는 최고 수준의 무역 방어 수단(통상위협대응조치) 등을 꺼낼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독일 자동차연구센터(CAR)는 자동차 대상 관세가 25%로 인상되면 독일 자동차 산업에 연 25억유로(4조3275억원)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 페르디난트 두덴회퍼 센터장은 “(유럽) 다른 나라 업체들의 대미 수출 규모는 적기 때문에, 트럼프의 새 관세 위협은 독일을 겨냥한 경제 전쟁의 시작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관세로 손해보는 건 독일 회사들만이 아니라고 그는 덧붙였다. 두덴회퍼 센터장은 “(미국 내) 판매가 인상을 통해 미국 소비자들에게 관세 부담을 전가하려는 시도가 있을 것”이라며 “독일 자동차에 대한 (미 소비자들의) 브랜드 충성도가 강하다. 가격이 오른다고 구매자들이 곧장 다른 브랜드로 갈아탈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독일 정치·산업계의 이런 반응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첫해인 지난해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지난해엔 프랑스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통보에 맞서 통상위협 대응 조치 도입을 주장했지만 독일·이탈리아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이들 나라 산업계가 미국과의 통상 갈등을 봉합하라고 요구한 결과다. 지난해 8월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영토 양보를 뼈대로 한 우크라이나 종전 방안을 내밀었을 땐, 메르츠 총리가 유럽 정상 6명과 백악관을 찾아가 그를 달래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초 트럼프 대통령이 덴마크령 그린란드 영유권을 주장한 뒤론 유럽 각국이 미국에 제 목소리를 내는 분위기다. 영토 등에 대한 선 넘은 요구가 이어지며 그에 대한 각국 여론이 악화한 데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들어주면 더욱 무리한 압박이 이어진다는 ‘학습 효과’가 생긴 것으로 풀이된다.
1월 독일 공작기계·산업장비협회(VDMA)가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 관세 위협에 맞서 통상위협 대응조치를 도입해달라고 유럽연합에 공개 요청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독일 수출기업협회(BGA)는 성명을 내어 “관세가 정치적 무기가 되도록 방치하면 모두가 패자가 될 것”이라며 강경 대응을 촉구했다.
미군 감축에 대해서도 ‘트럼프 달래기’ 대신 자주 국방 강화로 대응하자는 목소리가 크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나 미군 철수 압박에 휘둘리지 않도록, 유럽 스스로 방위력을 키우자는 것이다. 피스토리우스 장관은 데페아 통신에 “우리 유럽인들은 스스로의 안보에 대해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은 1일 르몽드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를 끝내고 싶어하며, 그 목표를 향해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는 이제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미국의 오랜 ‘보호령’ 체제는 트럼프 치세에서 끝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 유럽은 스스로의 길을 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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