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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들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 사무실 현판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케이티(KT)광화문웨스트 2층에 걸려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들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 사무실 현판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케이티(KT)광화문웨스트 2층에 걸려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에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수사팀장을 맡아온 한문혁 부장검사가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와 과거 함께 술을 마신 사진이 뒤늦게 드러나 수사·공판 업무에서 배제되고 파견도 해제됐다. 한 부장검사는 ‘만남 당시 이 전 대표가 주가 조작 관련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이후 수사 과정에서 한 부장검사가 이 전 대표의 존재를 인지하고도 과거 만남을 검찰과 특검 지휘부에 보고하지 않은 채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수사와 공판 업무에 참여한 것을 두고 공정성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한 부장검사가 이 전 대표와 만난 시점은 2021년 7월이다. 당시 한 부장검사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강력2부 부부장으로 부임해 김 여사의 ‘코바나컨텐츠 협찬금 수수 의혹’ 사건을 우선 맡았다고 한다. 한 부장검사가 이 전 대표와 만나게 된 건, 평소 한 부장검사가 친하게 지내던 지인 최아무개씨(의사)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서울 성동구의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이 자리에 이 전 대표가 최씨의 지인이라며 합석했고, 최씨의 집으로 이동해 술자리가 이어졌으며, 이곳에서 사진이 촬영됐다. 한 부장검사는 지난 26일 입장문을 통해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2021년 7월께 주말에 아이들 건강문제로 상의하면서 친해진 의사 지인과 안부 전화를 하다가 당일 저녁약속을 잡게 됐다. 약속 장소인 식당에 갔더니 지인이 만나던 여성분과 낯선 남성이 있었다. 지인이 ‘오후에 업무회의가 있어 만난 분인데 식사에 합석해도 되겠냐’고 하였고, 간단히 인사한 후 식사를 하게 됐다. 지인이 ‘집에 가서 간단히 맥주 한잔 더하자’고 하여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고, 지인의 손님 몇분 더 와서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헤어졌다. 당시 이종호는 도이치모터스 피의자가 아니었고,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구체적인 소개를 하지 않아 도이치모터스 관련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당시 명함이나 연락처도 교환하지 않았고, 이후에 이종호를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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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대표는 2021년 9월 하순께 입건됐고 한달 뒤 구속됐는데, 한 부장검사와 이 전 대표가 만난 시점에는 이 전 대표가 수사기록 등에 나오지 않아 사건 관련자인지 몰랐다는 게 한 부장검사의 주장이다. 반면, 이 전 대표 쪽은 당시 한 부장검사가 이 전 대표의 신분을 “알았다”고 주장한다. 당시 자리에서 이 전 대표가 한 부장검사에게 “이종호입니다”라고 인사하니 한 부장검사가 “블랙펄?”이라고 물었고, 이 전 대표가 “맞는다”고 답하자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말려 식사 자리가 계속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부장검사는 “4년 전이라 솔직히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당시 자리에서 이 전 대표로부터 소개를 안 받은 건 확실하다. 내가 알았으면 무슨 이득이 있다고 그 식사자리까지 가고, 2차도 가고 했겠나”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사진으로 남은 술자리 시점으로부터 4개월 뒤 한 부장검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의 공판 검사로 재판에 참여했고 그 자리에서 이 전 대표를 조우했다. 한 부장검사는 ‘이 전 대표를 사적인 자리에서 만났지만 문제 될 게 없다’고 판단하고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공판에 계속 참여했다. 한 부장검사는 그로부터 약 2년 뒤인 2023년 ‘술자리 사진’의 존재를 알게 된다. 임성근 전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의 공익신고자인 김규현 변호사가 이를 알린 것이다. 김 변호사는 검찰에서 한 부장검사와 함께 일한 근무 연이 있다. 당시 김 변호사는 한 부장검사에게 ‘이 전 대표를 아냐’고 물었고, 한 부장검사는 ‘재판에서 보는 사람인데, 당연히 안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자 김 변호사는 ‘이 전 대표와 같이 찍은 사진이 있다고 한다. 사진을 보여주더라’고 전했다. 한 부장검사는 “당시엔 (이 전 대표를) 모르고 만났던 사이였고, 당시 밥값도 내가 냈었고, 사진도 왜 그렇게 다 같이 찍은 건지도 몰랐었다. (이 전 대표와 만난 이후) 수사를 제대로 안 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는 크게 문제 될 게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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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전 대표가 민중기 특검팀과 이명현 특검팀의 공통 수사 대상이 되면서 ‘술자리 사진’의 꼬리가 잡혔다. 지난 7월 채 상병 사건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특별검사팀은 이 전 대표의 휴대전화를 함께 폐기한 측근 ㄱ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했고 그 안에 ‘술자리 사진’이 있었다. 이명현 특검팀은 이 사진이 수사 대상과는 무관하다며 압수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뒤 이 사진은 이 전 대표의 또 다른 측근인 ㄴ씨에게 전달됐고, ㄴ씨는 지난 13일 민중기 특검팀 수사관에게 문자메시지로 “공익제보”라며 이 사진을 보냈다. 문제의 술자리 사진이 4년 만에 수면 위로 불쑥 솟은 셈이다.

특검과 검찰 안팎에서는 한 부장검사가 이 전 대표와 만난 인연 때문에 ‘봐주기 수사’를 했다고 보진 않는다. 실제 한 부장검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초기 수사팀이었고 당시 수사를 열심히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22년 7월엔 서울중앙지검에서 의정부지검 남양주지청으로 전보됐다. 지난 4월에야 서울고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재수사팀에 합류해 김 여사의 미래에셋 녹취 파일을 확보하는 등 서울중앙지검의 봐주기 수사를 바로잡는 역할을 했다. 다만, 한 부장검사가 이 전 대표와의 술자리 사실을 사전에 검찰·특검 지휘부에 보고하지 않으면서 불공정 수사 논란을 불렀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대검찰청은 한 부장검사를 현 보직인 서울중앙지검 반부패3부장에서 수원고검으로 발령하고 감찰에 착수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