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미국이 관세협상 타결을 선언하면서 7월 말 큰 틀의 합의 이후 초미의 관심을 끌어온 긴 힘겨루기는 고비를 넘기게 됐다. 3500억달러(약 500조원)의 대미 투자 펀드 중 현금 투자 범위를 2000억달러로 제한하고, 자동차 품목관세 인하에 이어 제네릭 의약품과 항공기 부품 등에서 무관세 혜택을 받아낸 ‘주고받기’의 결과다. 다만 재정이나 외환 운용에 대한 부담을 떠안은 탓에 향후 구체적인 현금 투자와 이익 배분 방식 등을 두고는 논란이 이어질 소지가 남아 있다.
미국의 주요 무역 상대인 한국은 올해 1월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개시한 ‘관세전쟁’에서 일본 등과 함께 주요 표적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가 많다는 점을 트집 잡아 상호관세율 25%를 적용하겠다고 위협했다.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엄밀히 따져 적정한 상호관세율을 정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특정 국가에 대한 상품수지 적자액을 수입액으로 나눈 뒤 그 절반을 상호관세율로 정하는 황당한 셈법을 썼다.
이에 따라 한국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미국 상품에 거의 무관세를 적용하는데도 고율의 상호관세 부과 대상으로 지목됐다. 한국이 정권교체 과정에서 협상에 속도를 내기 어려운 가운데 미국은 일본과 5500억달러 대미 투자 등의 대가로 25%의 상호관세율을 15%로 내려 적용하고, 자동차 품목관세율도 27.5%에서 15%로 내리기로 합의했다. 대미 무역 구조가 비슷한 일본의 합의 도달 소식에 초조해진 정부는 7월30일에 상호관세율과 자동차 품목관세율을 일본처럼 15%로 조정하는 큰 틀의 합의를 이뤘다.
하지만 거액의 투자를 어떻게 할지를 두고 한·미는 곧 큰 입장 차이를 보였다. 애초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직접투자 비중은 3500억달러 중 5% 미만일 것이고 나머지는 대출과 대출 보증일 것이라며 큰 부담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은 합의 직후 전액 현금 투자를 요구하고 나섰다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다. 정부는 한국의 외환보유고나 경제 규모 등을 고려하면 이는 수용할 수 없는 요구라고 판단하고 협상을 이어갔다. 그러나 미·일이 9월4일에 합의 내용을 구체화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정부는 계속 쫓기는 처지가 됐다. 상호관세율은 낮아졌지만, 미국은 펀드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자동차 품목관세율 25%는 유지했다.
한·미는 그동안 줄다리기를 하면서 3500억달러 펀드의 구성, 투자처 선정, 이익 배분 방식 등을 두고 이견을 해소하지 못해왔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수차례 워싱턴을 방문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논의를 했고, 지난 22일에는 김용범 실장도 김정관 장관과 함께 방미해 러트닉 장관과 담판을 했다. 김 실장은 24일 귀국하면서 “핵심 쟁점에 있어서는 양국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27일 보도된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투자 방식, 투자 금액, 시간표, 우리가 어떻게 손실을 공유하고 배당을 나눌지 이 모든 게 여전히 쟁점”이라며 “인내심”을 강조하기도 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도 지난 27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 협상 타결 가능성에 대해 “아직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막판 합의가 이뤄진 데는 주요 경쟁 상대인 일본과 유럽연합(EU)의 대미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품목관세율이 15%로 낮아진 상황에서 한국산만 25%를 적용받는 것에 대한 부담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으로서는 다른 국가들과 협상을 계속하는 상황에서 한국과의 협상을 정상회담을 계기로 매듭짓고 싶어 한 것으로 보인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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