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
0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위원장과 부위원장들이 고위공직자가 작성해야 하는 민간 분야 업무 내역에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활동 등을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민간 전문가가 공직 수행 과정에서 이해충돌 상황을 관리하거나 자기 검열 기제로 작동하도록 권익위가 만들어둔 규정을 정작 권익위 수뇌부가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이 권익위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보한 ‘고위공직자의 민간 분야 업무활동 내역서’를 12일 보면, 유철환 위원장과 정 부위원장, 박종민 행정심판부위원장(부위원장)의 내역서에는 국민의힘 대선 중앙선거대책위원회·정책본부 등에서의 이력은 적혀 있지 않았다. 유 위원장과 정승윤 부위원장은 2021년 말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직속 사법개혁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됐고, 이듬해 정 부위원장은 국민의힘 정책본부 공정법치분과위원장을 맡았다. 박 부위원장은 정책본부 경제사회위원회 법치행정혁신본부장을 맡았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규정집에서 고위공직자의 민간 분야 업무 내역 제출 의무를 부과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대목.
국민권익위원회가 규정집에서 고위공직자의 민간 분야 업무 내역 제출 의무를 부과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대목.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에는, 고위공직자가 3년 이내 민간 부문에서 업무 활동을 한 경우 내역을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권익위는 지난해 10월 발간한 규정집(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 업무 편람)에서 “민간 전문가가 고위공직자로 임용된 이후 공무 수행 과정에서 직면할 우려가 있는 이해충돌 상황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사적 이해관계 관련 사항을 스스로 확인하는 자기 검열 기제로 작용하도록” 이 규정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민간 부문 업무 활동 내역을 제출하지 않은 사실이 발견되면 징계 절차를 진행할 수도 있다는, ‘위반 시 제재’ 사항도 있다.

광고

규정집에는 ‘○○당 ○○도당 서민경제위원장’ ‘○○도당 청년위원회 부위원장’ 등 “정당법에 근거한 비법인 사단(단체)으로 당직을 맡아 정당 활동한 경우 해당 내용을 ‘재직했던 법인, 단체 등과 그 업무 내용’ 항목에 작성해야 한다”는 유권 해석도 덧붙여놓았다. ‘태권도협회 홍보이사’ ‘○○번영회 이사’ ‘○○총동문회 회장’ 등으로 활동한 경우에도 그 내역을 적으라고 명시했다.

현재 권익위 수뇌부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을 위해 활동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해충돌 문제를 총괄하는 기관의 공직을 맡으면서 앞서 권익위가 공직사회에 제시한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윤태범 한국방송통신대 교수(행정학)는 “공직자의 이해충돌 여부를 가장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해야 할 주무 기관이 제도 도입 취지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권익위 관계자는 “특정 기구가 고위공직자가 ’재직했던 법인‧단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해당 기구가 상법, 민법,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 국세기본법, 부가가치세법 시행령 등에 따라 공식적으로 등록되거나 관리되고 있는 법인‧단체인지, 해당 법인‧단체가 존속하여 고위공직자가 임용 또는 임기 개시 후 공무를 수행하며 해당 법인‧단체가 사적이해관계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판단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