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구글 사옥에 놓인 간판. EPA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 구글 사옥에 놓인 간판.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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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성관계 영상이 불법 유출돼 커뮤니티를 통한 조롱과 2차 가해가 심각합니다. 제발 저를 특정하는 연관 검색어를 삭제해주세요. 면밀히 살펴주시고 저를 제발 폭력으로부터 살려주세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 성적 수치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해당 유알엘(URL)의 즉각 삭제와 국내 접속 차단, 검색 노출 제외를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이는 불법 촬영물 피해자들이 구글에 직접 보낸 삭제 요청문의 일부다. 구글이 불법 촬영물에 붙은 개인 신상 정보를 자동 연관 검색어까지 생성해내며 퍼뜨리자, 피해자들이 절박한 마음으로 삭제를 요청한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물 정보를 검색 결과에 노출하는 것도 지우는 것도 모두 구글 뜻대로라서다. 그런데, 구글은 여기서 한술 더 떴다. 구글이 피해자 민감 정보가 담긴 요청문을 원문 그대로 협업 연구기관에 무단으로 넘겨 일반에 공개되도록 한 사실이 한겨레 취재로 확인됐다. 개인이 보낸 것뿐 아니라 정부 기관이 보낸 요청문까지 무차별로 공개됐다. 정부는 구글에 요청문 삭제를 요구하고 강력히 항의하는 한편, 경위 파악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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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성평등가족부와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방미심위)는 미국의 구글과 협업 중인 연구기관의 프로젝트 사이트에 무단 공개된 47건의 피해자 요청문 등은 물론, 피해 삭제 지원기관명이 검색어로 들어간 최소 100건 이상의 민감 정보 데이터 일체를 차단·삭제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성평등가족부 관계자는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며 “구글에 항의해 피해자 신상 게시물부터 삭제 요청했으며 구체적인 해명과 재발방지책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방미심위도 “피해자 신상 관련 게시물부터 접속 차단 심의를 했고 구글에도 강력하게 항의했다”고 밝혔다.

불법촬영물 피해자들이 구글에 삭제를 요청한 주요 내용. 현재는 게시물이 삭제·차단됐다. 그래픽 송권재 기자 cafe@hani.co.kr
불법촬영물 피해자들이 구글에 삭제를 요청한 주요 내용. 현재는 게시물이 삭제·차단됐다. 그래픽 송권재 기자 cafe@hani.co.kr

미국의 ㄹ(가명)이라는 프로젝트 사이트엔 불법 촬영물 피해자들의 삭제 요청이 원문 그대로 게시됐다. 피해자의 이름, 나이, 직장, 학교, 휴대전화 번호는 물론,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 “제발 살려달라”는 간절한 호소까지 비식별화 처리 없이 올라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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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를 대리해 성평등부와 방미심위가 보낸 공적 삭제 요청도 줄줄이 박제돼 있었다. 이를 발견한 한겨레는 해당 내용을 지난달 25일 관련 정부 부처에 알려 대응을 요청했다. 이들 부처가 나선 결과 13일 만에 피해자 신상 게시물이 대거 삭제됐다. 원민경 성평등부 장관은 지난 5일 장관 주재 회의에 구글을 불러 강한 유감을 표하고 피해자 정보 유출 경위를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구글은 과거부터 성범죄물 확산의 공범이자 주범으로 꼽힌다. 불법 사이트에 유포된 불법 촬영물 유알엘을 검색 상위 결과에 노출하거나 이미지로 보여주며, 피해자 이름 등을 자동 연관 검색어로 생성해 2차 가해를 야기한다. 구글이 이렇게 영상을 퍼뜨리면 이를 되돌리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피해자가 구글 고객센터에 직접 연락해 자기 신상을 밝히며 삭제를 읍소할 뿐이다. 그런데 구글은 그렇게 접수된 요청문마저도 ㄹ사이트에 넘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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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피해자 신상이 구글에서 ㄹ사이트로 옮겨진 경위부터 파악하고 있다. 과거 구글이 삭제 요청을 접수할 때 ‘이용자의 삭제 요구를 복사해 연구 목적으로 써도 되는지’ 물은 적이 있다. 자사와 협업하는 곳을 “하버드 로스쿨 산하 연구기관”이라고도 소개했다. 하지만 구글이 넘긴 피해자 민감 정보가 ㄹ사이트에 공개된다는 사실은 전혀 알리지 않았다. 피해 삭제를 지원하는 정부 기관 역시 ‘정보 공유를 묻는 절차엔 부동의(NO)한다’를 원칙으로 삼았는데 관련 정보가 넘어간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정부 부처가 뒤늦게 사태 파악에 나서며 급한 불은 껐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개인 피해자들이 끊임없이 구글에 민감 정보가 담긴 삭제 요청을 넣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게다가 구글은 지난달 12일부턴 아예 정보 공유에 동의를 구하는 절차마저 없앴다. 당사자 동의도 없이 민감 정보가 ㄹ사이트에 넘겨질 위험이 더 커진 것이다. 최근 ㄹ사이트는 누리집을 방문한 기업 고객을 상대로 서비스 수요 조사도 했다. “전체 유알엘 주소를 필요로 하느냐”, “얼마가 합리적 금액이라고 보느냐” 등 노골적으로 유료화 의사를 드러냈다.

ㄹ이 최근 진행한 기업 수요조사 갈무리. ㄹ의 이름은 가림 처리했다.
ㄹ이 최근 진행한 기업 수요조사 갈무리. ㄹ의 이름은 가림 처리했다.

결국 피해자 삭제 지원 기관은 지난달 중순부터 구글 쪽에 보내던 불법 촬영물 삭제 요청을 무기한 중단했다. 피해자를 대신해 불법 촬영물 삭제를 도맡는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등은 ‘유출 위험이 해소되지 않는 한 구글에 삭제 요청을 할 수 없다’며 관련 업무를 무기한 중단한 상태다. 피해자들이 구글의 성범죄물 확산으로 고통받는데 구글에 항의조차 못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는 동의 절차를 없앤 경위를 해명하라고 구글에 요구했다.

구글과의 협업 기관인 ㄹ에 제출된 불법촬영물 피해자의 연관 검색어. 이름과 대학, 소속 직장 등이 그대로 적혀있어 가림(모자이크) 처리했다.
구글과의 협업 기관인 ㄹ에 제출된 불법촬영물 피해자의 연관 검색어. 이름과 대학, 소속 직장 등이 그대로 적혀있어 가림(모자이크) 처리했다.

구글은 이용자에게 삭제 접수를 받을 때 ‘개인정보는 수집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ㄹ사이트에서 보듯 이는 현실에서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구글이 사실상 비영어권 게시물의 민감 정보를 제대로 거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한겨레가 일본어, 중국어 등으로 불법 촬영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자 “허락 없이 신체를 무단 촬영한 게시물”, “빨리 지워달라”는 글이 실명으로 올라와 있었다. ㄹ사이트 연구진도 2022년 미국 연방거래위원회에 보낸 서한에서 “비동의 성적 이미지의 경우 구글이 삭제 정보를 자사와 공유하지 않는다”면서도 “피해자들이 다른 경로로 삭제 요청을 하면 자사에도 공유되곤 한다”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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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 이용자의 삭제 요청을 ㄹ사이트에 넘긴 건 2002년부터다. 당시엔 권력기관의 무분별한 정보 삭제 요구로 포털이 정당한 정치 패러디물까지 삭제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구글은 자의적 삭제 시비에 대비해 ‘이용자 삭제 요청을 따로 백업하겠다’고 밝혔다. 일종의 복사·저장 아카이브를 마련해 포털 검열 논란에 대비한 것이다. 실제로 연구진이 ㄹ사이트에 축적된 관련 데이터를 분석해 권력기관의 과도한 삭제 요구를 고발하는 등 긍정적 기능도 했다. 그러나 24년이 흐른 지금은 성범죄물 피해 등으로 평범한 시민의 삭제 요구가 늘면서 이들의 민감 정보가 유출될 위험도 커졌다.

구글은 성평등부에 “ㄹ사이트에 삭제 정보를 제공할 때 사람이 (검증차) 확인하는데 이번 사안은 사람의 실수로 보인다”고, 방미통위엔 “사안의 중대성을 인지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방미심위와 한겨레 질의에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ㄹ사이트 쪽은 데이터를 수익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한겨레 문의에 “오해”라며 “어떠한 데이터도 판매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겨레가 기업 수요조사 내역을 제시하며 ‘그렇다면 이런 조사는 왜 했느냐’고 묻자 더 이상 답을 보내오지 않았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