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업체에 납품단가 조정협의를 신청한 경기도 외곽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 업체를 가리기 위해 생산 제품은 지웠다. 사진 김남일 기자
원청업체에 납품단가 조정협의를 신청한 경기도 외곽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 업체를 가리기 위해 생산 제품은 지웠다. 사진 김남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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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외곽에서 자동차 부품업체를 운영하는 ㄱ대표는 지게차를 직접 운전한다. 8톤이 넘는 납품용 화물차를 몰고 원청업체에 가는 것도 그의 몫이다. 간단한 설비 예방 정비까지 한다. ㄱ대표는 “공장을 운영하다 보니 다 하게 됐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경영 사정이 나빠지며 7명이었던 직원은 3명으로, 9대였던 설비는 3대로 줄었다.

원청이 납품 가격을 올려주면 그래도 조금 숨통이 트였을 것이다. 17년간 납품단가는 20원이 올랐다. ㄱ대표는 “그동안 최저임금은 4000원에서 1만원선으로, 산업용 전력 요금은 70원대에서 180원대로 인상됐다”고 했다. 제품 가공에 쓰이는 소모성 부품 역시 코로나19 이후 가격이 40∼50% 올랐다고 한다.

ㄱ대표는 몇 년 전 원청에 원가자료를 제출하며 단가 인상을 요청했다가, 역으로 요청한 인상 폭만큼 단가 인하 요구를 받았던 경험이 있다. “원청을 모기업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일했다. 정말 절박해서 간절하게 요청했는데, 돌아온 것은 자기들은 알 바 아니라는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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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같은 일이 반복될까 두려워 최근 몇 년 손실이 계속 쌓여도 단가 조정 요구를 못 했다고 한다. 연매출 5억원 정도인 회사는 매출의 80% 이상을 해당 원청에 의존한다. 그때그때 발주하는 형태라 갑자기 거래를 중단하거나 물량을 약간만 줄여도 심각한 경영 위기를 겪게 되는 구조다. ㄱ대표는 “청와대는 납품대금 연동제 확대를 말하지만, 우리처럼 원재료를 직접 구입하지 않는 임가공 수탁기업은 완벽한 사각지대에 있다”고 했다.

청와대는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메가프로젝트 민간합동 점검회의 뒤 ‘산업 생태계 동반 성장’을 강조하며 대·중소기업 간 납품대금 연동제 적용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투자의 온기가 중소기업에도 전해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제조업 분야 중소기업 중 절반이 넘는 50.6%가 다른 기업에서 주문을 받아 납품하는 위·수탁거래 관계에 있다. 코로나19에 이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며 원자재 가격이 빠르게 상승했는데, 협상력이 약한 중소 수탁기업은 원가 상승분을 납품대금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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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서 정부와 국회는 불공정 하도급 관행 개선 방안의 하나로 2008년부터 검토했던 납품대금 연동제를 다시 논의하기 시작했고, 상생협력법을 개정해 2023년 10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납품대금에서 차지하는 비용이 10% 이상인 원료·재료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변동하면, 그 변동분을 납품대금에 반영하도록 사전에 서면으로 약정하는 제도다. 올해 12월부터는 연동 대상을 확대해 전기료·가스비 등 에너지 경비에도 연동제를 적용한다.

문제는 우월적 지위에 있는 원청의 ‘미연동’ 강요나 ‘쪼개기’ 계약이 여전하고, 원재료 판단 기준 등 연동제 적용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설계됐다는 점이다. 특히 ㄱ대표 사례처럼 원청이 무상 제공한 원자재를 가공해 원청에 다시 납품하는 거래(무상 사급)는 아예 연동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인건비 등 다른 공급원가가 상승할 경우 부담은 고스란히 수탁업체가 떠안게 된다. ㄱ대표 업체는 외국인 2명과 한국인 1명을 직원으로 두고 있다. 월급은 인당 350만∼400만원 정도다. 외국인 직원에게는 월 40만원인 공장 주변 원룸도 제공한다. ㄱ대표는 “예전에는 원룸을 두 명이 함께 썼는데, 요즘 그렇게 하면 다른 업체로 떠난다. 공과금 포함해 14만원만 받고 1인 1실을 제공한다”고 했다. 그가 보여준 상반기 원가 계산서에는 노무·복리후생·안전 관련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45% 수준이었다. 그는 “인건비 상승분을 반영해 원청이 10∼20원 정도만 납품 가격을 올려주면 다달이 발생하는 540만원 정도의 적자를 메우고 5% 정도 이윤도 남길 수 있다”고 했다. 이마저도 생산 인력을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ㄱ대표가 직접 설비 보수와 물류 업무 등까지 맡을 때 나오는 숫자다. 그는 “연매출 500억원이 넘는 원청에서 이걸 안 해준다”며 답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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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제 적용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도 인건비 상승 등 예상치 못한 원가 변동분을 납품가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납품대금 조정협의제도가 있다. 2009년 하도급법 개정으로 도입된 이 제도는, 2019년 상생협력법 개정을 통해 하도급거래뿐만 아니라 위·수탁거래까지 확대 적용됐다. 납품대금 조정 신청을 이유로 보복할 경우, 손해액의 최대 3배까지 징벌적 배상도 가능하다.

원청업체에 납품단가 조정협의를 신청한 경기도 외곽의 한 자동차부품업체. 업체 제공
원청업체에 납품단가 조정협의를 신청한 경기도 외곽의 한 자동차부품업체. 업체 제공

제도와 현실은 다르다. 납품업체로서는 당장 보복을 당하지 않더라도 시간을 두고 물량이 줄거나 계약 갱신이 거절되는 등의 불이익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단가 인상을 요청했다가 ‘괘씸죄’에 걸려 보복성 인하를 당했던 ㄱ대표는 “그런 제도가 있다는 것과 현장에서 안심하고 신청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고 했다. 연동제가 ‘사전 의무 약정’이라면, 조정협의제는 ‘사후 협의 신청’이다. 업체 간 자율 협의 방식이어서 강제성이 떨어진다. 법은 수탁기업이 납품대금 조정협의를 신청하면 원청은 열흘 이내에 의무적으로 협의 개시를 하도록 했다. ㄱ대표는 “더는 비용 절감이나 추가 차입 여력이 없다”며 최근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원청에 단가 협의를 신청했다. 한 달여가 지나도 회신이 없어 재차 문의하자, 그제야 구매 담당자로부터 ‘요청한 조정안을 경영진에 보고했다’는 답을 들었다. 정작 해당 원청은 연동제에 따라 1차 위탁업체로부터 원재료비 상승분에 대한 단가 조정 혜택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청와대의 ‘납품대금 연동제 대폭 확대’ 취지가 우리 같은 소규모 3차 뿌리기업까지 도달하려면, 인건비와 설비 유지보수비 등 임가공 원가 변동분이 납품단가에 주기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자동 연동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7월 발간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지원 사업·정책 평가’ ‘납품대금 연동제 추진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원재료뿐만 아니라 인건비, 에너지비 등 다양한 비용 요인이 생산원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현행 연동제는 이러한 비용 변동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제조업 중심 국가로 원자재·에너지·물류비용 상승 등 우리와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는 일본 역시 원청의 일방적 가격 결정 및 비용 전가 관행을 개선하려 한다. 이를 위해 2021년부터 원재료비와 에너지비 외에 노무비(인건비)를 핵심 원가 요소로 지정하고 있다.

특히 일본 중소기업청은 위·수탁업체가 객관적 지표를 바탕으로 납품대금을 협의할 수 있도록 공신력 있는 국가통계 등을 제공한다. 노무비의 경우 최저임금 및 인상률(후생노동성), 노무단가 및 표준운임(국토교통성), 소비자물가지수(총무성) 등을 지표로 활용하도록 했다. 일본은 ‘하청’ 용어를 없애고 인건비와 원자재·에너지 비용 상승에 따른 가격 보장 등을 담은 중소수탁거래적정화법(옛 하도급법)을 올해 1월부터 시행 중이다. 상생협력 정책 전문가는 7일 “한국과 일본 제도가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고 했다. 한국은 자동 연동 형식이지만 미연동 사례가 많고, 일본은 다양한 지표를 제공하지만 연동제보다 강제성이 떨어진다. 이 전문가는 “일본처럼 정부가 객관적 가격지표를 제공하면 단가 협상 등 연동제 실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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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이어 지난 1일 같은 당 이광희 의원도 노무비를 연동 대상에 포함하는 하도급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앞서 한성숙 국무총리는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시절 뿌리기업 경영자들을 만나 연동제 적용 대상 확대 등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중기부 쪽은 연동제 추가 확대 논의는 아직 없다고 했다. 다만 조만간 연동제 운영 현황과 성과를 점검하는 실태조사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