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
0:00
지난 5일 서울 참여연대에서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충현 사망사고 1차 조사발표 기자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서울 참여연대에서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충현 사망사고 1차 조사발표 기자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김충현씨의 끼임 사망사고 이후 하청노동자에 대한 안전관리가 형식적이고 부실하게 이뤄진 사례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서부발전-한전케이피에스(KPS)-2차 하청업체로 이어지는 고용 구조에서, 하청노동자들은 원·하청 사업주가 위험한 작업을 ‘나 홀로’ 하도록 방치했을 뿐만 아니라, 안전관리 책임을 떠밀었다고 주장한다.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책임의 외주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9일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대책위)가 공개한 한전케이피에스의 태안화력 하청업체 두곳(기계·전기)의 ‘작업 전 안전회의’(툴박스미팅) 일지를 보면, ‘위험 작업’에 노동자 혼자 작업한 사례들이 여럿 발견된다. 한전케이피에스는 공사설계서에 ‘유해·위험 작업’으로 고소 작업, 고온/고압기기 및 증기 근접 작업, 중량물 취급 작업, 충전부 근접 작업 등을 들고 있다.

구체적으로 2022년 3월 발전설비 주변 비상조명등을 교체하는 작업은 ‘감전’ ‘추락·낙하’ ‘협착’이 유해·위험 요인으로 지적됐지만, 작업자란에 적힌 이름은 한명으로 혼자 작업했음을 보여준다. 전기분야 하청업체 노동자 ㄱ씨는 “조명이 보통 2m 이상 높이에 있고 더 높은 것은 4m씩 되지만, 혼자 사다리를 가지고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지난 5월 발전설비에 공기를 공급하는 컴프레셔에 기름을 보충하는 작업 역시 ‘누유로 인한 미끄럼 주의’나 ‘협착(끼임) 주의’가 위험요인으로 지적됐다. 작업 중에 미끄러져 고속으로 회전하는 다른 설비에 끼일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작업자는 한명이었다. 일지 기본 양식에 적힌 “작업책임자의 승인 없이 현장 이탈, 무단 작업, 단독 작업 금지”라는 문구가 무색하다.

광고

대책위가 공개한 일지에는 추락 위험이 있거나 중량물이 떨어져 맞을 수 있는 다른 작업들도 1명만 배치된 사례가 많았다. 김씨의 사고에 대해 한전케이피에스는 그가 유일한 선반기술자여서 혼자 작업을 해왔다고 주장했지만, 하청업체가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위험 작업 역시 ‘나 홀로 작업’이 많았던 셈이다.

한전케이피에스가 이러한 1인 작업을 묵인한 정황도 드러난다. 원청인 한전케이피에스·서부발전 공사감독은 공사가 시작되기 직전 해당 일지에 서명해야 하고, 해당 일지에는 공사감독자 이름이 적혀 있다. 혼자 작업한다는 사실을 원청이 모를 리 없는 구조다. 2차 하청업체 노동자 ㄴ씨는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원래 배분된 작업이 아닌 (갑자기) 전화로 이뤄지는 작업 지시도 있어 혼자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광고
광고

하청노동자들은 2명 이상이 작업한다 하더라도 작업자 가운데 1명을 ‘관리감독자’로 지정하는 ‘책임의 외주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2차 하청업체들은 작업자들에게 산업안전보건법의 노동자안전보건교육 위탁기관에서 실시하는 온라인 ‘건설업 관리감독자 교육’을 이수하게 한 뒤, 작업 중 ‘관리감독자’로 지정하고 있다. 2명이 작업하면 1명은 작업책임자, 1명은 관리감독자인 것이다. 산안법과 시행령이 규정하는 ‘관리감독자’는 특정 작업을 지휘·감독하는 사람으로, 기계·기구·설비의 안전·보건 점검부터, 작업복·보호구 점검·착용·사용 지도, 작업에서 발생한 산재 보고와 응급조처 등의 책임을 진다. ㄱ씨는 “똑같이 작업을 하는데 관리감독자로 지정된 사람이 사고 발생 때 책임을 모두 져야 한다. 혹시나 그 사람에게 피해가 갈까 봐 사고가 발생해도 유야무야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며 “안전인력이 충원 없이 작업하는 사람들이 안전관리까지 책임져야 하는 구조가 문제”라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