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조수사본부(공조본)가 체포영장을 재집행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 1월14일 밤 11시 한남동 관저 앞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드러누운 모습.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공조수사본부(공조본)가 체포영장을 재집행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 1월14일 밤 11시 한남동 관저 앞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드러누운 모습.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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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감정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감정들은 사회적으로,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중요하게 논의된다. 한국인의 일상 감정인 ‘울분’을 살펴본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런데 왜 감정은 정치에서 중요한가? 단적으로 말하면, 감정의 힘이 이성적·논리적 설득보다 강하고 그래서 사람들을 더 많이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감정에 대한 기능주의적 설명이라 할 수 있고 경험적으로도 타당하다.

하지만 거기에 그치면 곤란하다. 이 설명이 감정에 대한 심층적 이해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대중은 우매해서 이성적 설득이 아니라 감정적 선동에 휘둘린다’는 비난으로 이해되기 쉽다. 그러면 악무한적 상호비난이 시작된다. 예컨대 김어준 방송을 열심히 보는 어떤 팬들에게 윤석열 지지자들은 “유튜브발 ‘가짜뉴스’와 혐중 음모론을 믿으면서 아직도 계엄을 옹호하고 있는 한심한 무지렁이들”이다. 하지만 반대로 어떤 윤석열 팬 혹은 민주당을 싫어하는 몇몇 시민에게 김어준 팬·민주당 지지자 일부는 “이른바 ‘K값’ 선거 음모론, 세월호 항적 조작 음모론에 놀아나면서 자신이 똑똑한 줄 착각하는 멍청이들”에 불과하다.

저들 중 누가 ‘조금 덜 멍청한지’ 판가름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글의 초점은 누가 옳은지 감별하는 것이 아니라, 극우정치를 포함한 정치적 실천에서 감정이 어떻게 그토록 강한 위력을 발휘하는가를 보다 깊은 층위에서 탐구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극우 감정의 구체적 양태를 관찰하고 분류하는 경험 연구는 필수적이다. 사회학자 알리 러셀 혹실드는 미국의 극우 성향 시민을 인터뷰하여 이를 탁월하게 수행한 바 있다(‘자기 땅의 이방인들’ ‘도둑맞은 자부심’). 한국의 경우 ‘울분’이나 지위 불안 같은 감정에 대한 논의가 여기 해당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특정한 감정들이 ‘어떻게’ 특정한 정치적 신념들과 단단히 결속하게 되는지, 보다 근본적으로는 어떻게 감정이 이데올로기화하는지, 혹은 어떻게 이데올로기가 감정화하는지 등의 질문은 여전히 공백으로 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