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4월7일로 예정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12월28일로 꼭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차기 대통령 선거를 11개월 앞두고 치러지는 이번 보궐선거는 향후 대선까지 민심의 큰 흐름을 살필 수 있는 가늠자로 여겨진다. 특히 관심이 쏠리는 것은 집권 4년차에 치러지는 보궐선거에서 ‘심판론’ 바람의 방향과 강도다.
보수 야권은 앞서 치러진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내로남불’과 소득주도성장 등 정책 실패를 들어 문재인 정부 심판을 호소했지만, 민심은 싸늘하게 등 돌렸다. 그러나 이번엔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무엇보다 이번 보궐선거의 원인이 여당 소속인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의 권력형 성폭력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치솟는 전셋값과 아파트값도 여권의 악재다. 야당은 코로나19 백신 문제를 고리로 정부·여당이 추어올리던 ‘케이(K)-방역’에 균열을 노리고 있다. 야당은 반전의 기회를 득점으로 이어갈 수 있을까? 여당은 능력과 책임을 보여주는 집권세력으로서 재신임을 받을까? <한겨레>는 4월 보궐선거를 ‘코로나19 확산’ ‘젠더’ ‘부동산 정책’ 세가지 이슈로 조망해 본다.
1995년 제1회 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 이래 지금까지 17개 광역자치단체 통틀어 여성 단체장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남성 단체장들의 성범죄로 인해 보궐선거가 열리게 되자 남성들이 독점하다시피 해온 정치권력 구조를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때보다 높다. 여야 모두 재보선의 승리 전략으로 ‘여성 후보 띄우기’를 궁리중이다. ‘젠더 선거’의 공간이 열린 만큼 서울과 부산에서 최초의 여성 시장이 탄생할지도 관심이 쏠린다.
여당 출신 두 전직 시장의 성범죄로 치르게 되는 재보궐 선거는 야당에게 ‘선공’의 판을 깔아줬다. 차기 시장 후보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성인지 감수성’을 내세우면서 박 전 시장의 성범죄 과오를 계속 환기시키고 ‘심판 여론’을 끌고가겠다는 계산이다.
더불어민주당보다 일찍 재보선 경선준비위원회(경준위)를 꾸려 선거 국면에 돌입한 국민의힘은 ‘성인지 감수성’을 앞세운 강도 높은 검증 계획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경준위는 지난달 12일 △권력형 성범죄 등 성비위 △세금탈루 △막말·갑질 등 후보자들의 공직 적격성 전반을 엄격하게 검증할 ‘자기검증서’를 제출받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겨레>가 국민의힘 경준위로부터 입수한 자기검증서를 보면, ‘양성평등 및 성비위 관련’ 항목에 ‘본인, 배우자 또는 자녀가 성매매 등의 범죄로 조사 또는 수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본인, 배우자 또는 자녀가 이성에 대한 발언이나 행동 등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항의가 제기되는 등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까’ 등의 11개 문항이 있다. 경준위원인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성범죄에 대한 후보자의 인식과 양성평등 의식 검증을 우선시한다는 취지로 관련 문항을 추가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난 21일 4·7재보궐선거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검증위)를 꾸렸다.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포함해 총 9명인 검증위 중 외부위원 5명을 여성으로 구성했다. 여성 대상 범죄인 성범죄나 가정폭력의 경우 기소유예를 포함한 처벌 전력이 있으면 무조건 부적격 판단을 내리기로 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춘숙 민주당 의원은 “성폭력 문제는 사실 권력과 대표성의 문제다. 여성에게 기회를 주고 여성이 권력을 쥐었을 때 어떻게 달라지는지 가시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며 ‘여성 후보 추대론’도 띄웠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선 야당이 깔아놓은 ‘젠더선거판’에 끌려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반발이 나오기도 한다.


그동안 정치는 여성들에게 특히 인색한 분야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17대 국회 13%에서 계속 소폭 증가했으나 21대 국회에서도 19%에 머물렀다. 지방자치단체를 보면 성별 불균형이 더 심각하다. 여성 광역단체장은 0명일 뿐더러,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여성 기초자치단체장 당선자는 3.5%에 불과하다.
이처럼 남성 중심적이었던 정치무대에서 여성 후보들의 출사표가 쏟아지는 건 긍정적인 현상이다. 심판론을 내세운 야권에서 그 분위기가 더 뜨겁다. 나경원 전 의원(4선), 이혜훈 전 의원(3선), 재선 구청장인 조은희 서초구청장, 박춘희 전 송파구청장, ‘나는 임차인입니다’ 5분발언으로 인지도가 올라간 초선 윤희숙 의원 등 여성 후보군이 풍부하다. 여권에선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꼽힌다. 정의당에서는 권수정 서울시의원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도 27일 공식 출마를 선언했고, 신지혜 기본소득당 대표는 이미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부산에서는 재선의 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고, 민주당 소속인 박인영 부산시의장도 후보로 입에 오르내린다.
그렇지만 단순히 여성 대 남성으로 각을 세우는 성대결 국면으로 선거가 흘러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성대결 구도로 전임 남성 시장들과의 차별화를 부각하다가 여성 후보들은 불쏘시개로만 쓰이고 사그라들 수도 있다. 전직 두 시장의 사건의 배경이 단체장에게 막강한 권한이 주어지고 이를 사유화하는 것이 묵인되는 구조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차기 시장은 이 권력 구조 문제를 뜯어고칠 의지를 검증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대표는 “그동안 재보선이 치러지게 된 원인을 보면, 꼭 성범죄가 아니더라도 남성 정치인의 과오로 인한 선거가 많았다. 이는 여성 정치인이 그동안 정치에 개입되는 정도가 낮아서라는 이유도 있다. 여성이 권력을 잡는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성별’ 자체보다, 성범죄 혐의로 끝난 시정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비전’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권 대표는 “이런 점에서 봤을 때, 지금 양당에서 단순히 인기 있는 여성 정치인을 밀어주는 방식으로 얘기가 나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후보자의 성인지 감수성과 무엇보다 지금 젊은 여성들이 갖는 불안을 어떻게 해소시켜줄 것인지를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수현 대표는 “성평등 관점이 들어간 구체적인 문제 해결책이나 대안 없이 유명 정치인만 앞세운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또한 (두 전직 시장의 성범죄) 상황으로 인해 여성 후보가 이점을 얻었다고 인식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책과 대안 없이 ‘성별’만 앞세운 선거는 ‘풍요 속 빈곤’에 그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오연서 노현웅 정환봉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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