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최저시급이 올해 1만30원보다 290원(2.9%) 오른 1만320원으로 정해졌다. 지난 몇년간 최저임금이 물가 상승에도 미치지 못한 실질임금 삭감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찔끔’ 인상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번에도 ‘최저임금 인상률 억제용’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공익위원 심의촉진구간 내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졌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10일 열린 12차 전원회의에서 노사 합의를 거쳐 내년 최저임금안(1만320원)을 의결했다. 민주노총 위원들이 중도 퇴장함에 따라 ‘반쪽짜리’ 합의이긴 하지만, 17년 만에 노사 합의로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1988년 최저임금 제도가 시행된 뒤로 노사 합의를 통한 의결은 이날까지 8차례뿐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 정년 연장 등 노사 간 이견이 큰 현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란 기대가 뒤따른다.
다만 이날 결정된 최저임금 인상률은 ‘노동존중’을 표방한 이재명 정부의 집권 첫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측면이 크다.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3~2024년 인상률은 각각 2.5%와 1.7%의 저조한 수준에서 결정됐다. 좀 더 시계열을 넓게 잡아보면, 2021년 대비 2024년에 물가는 11.4% 올랐는데 같은 기간 최저임금은 9.5% 인상(결정 연도 기준)되는 데 그쳤다. 그간 실질임금 삭감을 감내해왔는데, 또다시 노동계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의 결정이 이뤄진 것이다. 실제로 비혼 단신 노동자 생계비는 월 265만원으로, 내년 최저임금의 월 환산액(215만6880원)과 비교하면 차이가 50만원가량 벌어진다. 더군다나 집권 첫해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윤 정부 때 5.0%와도 차이가 크다. 2.9%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결정된 최저임금 인상률(2.7%)과 비슷한 수준이다.
최종 결정된 2.9% 인상안은 앞서 공익위원이 제시한 심의촉진구간(1.8~4.1%)의 중간값이다. 하한선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로, 상한선은 ‘국민경제생산성 산식’(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취업자 증가율)에 근거해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심의촉진구간은 일관된 잣대 없이 그때그때 다른 근거 자료를 활용함에 따라, 국민적 신뢰를 잃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노사 합의를 이뤘다고는 하지만 이번에도 공익위원의 심의촉진구간에 논의가 갇혀버린 것은 대단히 유감이다. 정부가 시급히 최저임금 제도 개선을 추진해, 노사가 신뢰할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를 새로 마련해야 한다.
11일 대통령실은 “이번 결정은 물가인상률 등 객관적 통계와 함께 취약노동자, 소상공인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경기가 나쁘다는 점 등을 두루 고려한 것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러나 최저임금의 본래 기능은 저임금 노동자의 최소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소상공인의 어려움은 과당경쟁 등 구조적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자꾸 최저임금 의사결정 과정에 대입시키면 결과적으로 ‘을과 을들의 대립’만 부추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