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
지난 6월 베트남에 다녀왔다. 새롭게 시작하는 3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실 규명을 신청하기 위해서였다. 하미 마을과 프억빈 마을에서 벌어진 두 학살 사건 피해자들에게 절차를 설명하고 위임을 받았다. 하미 학살 피해자 쯔엉티투에게 ‘이재명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는 ‘전하지 않겠다, 직접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대신 전해주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대통령이 이곳에 와서 저를 만나야 합니다. 그 사람의 양심과 심장을 마주 보고 직접 말하겠습니다. 왜 이 일을 인정하지 않습니까. 60년 동안 저는 이런 상태로 살아왔습니다. 제가 100살이 된다고 해도, 살아만 있다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잊을 수 없습니다. 왜 죄 없는 아이들을 그렇게 죽였습니까?”
베트남전 종전 이후 50여년, 1999년 한국 사회의 공론화 이후 20여년이 훌쩍 지났지만 한국 정부의 사실 인정도, 사과도 없다. 1938년생 쯔엉티투는 죽을 때까지 묻겠다고 외치지만, ‘베트남이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는 거짓말은 여전히 가득하다. 외침을 들은 한국의 변호사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겠다, 노력하겠다’ 약속드렸다. 이 글은 쯔엉티투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으로서, 그 약속을 이행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번 만남에서 생존 피해자들은 조금 다른 요청을 했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피해자지만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겨우 피했던 죽음과 다시 가까워지면서 다른 궁금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내가 왜 살았는지’라는 의문. 청룡부대 3대대 10중대는 1966년 11월9일 오전, 베트남 중부 프억빈 마을에 진입해 70여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그 프억빈 학살 피해자 보티리엠의 요구다.
“나에게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났어야 했을까요. 그러나 한국을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비극 속에 내가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혹시 한국군이 나를 일부러 살려준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한국군이 5살 소녀였던 내 머리채를 잡았는데, 조금 느슨해졌고, 그 순간 저는 도망쳐 살았습니다. 나이가 든 지금도 종종 그 순간이 떠오릅니다. 그가 일부러 살려준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그 군인이 아직 살아 있다면 꼭 만나 물어보고 싶습니다.”
하미 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홍은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도 했다. “내 오빠에게 와서 위험을 알려주고 살아남도록 도와준 한국군이 있다. 꼭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 집이 마을에서 물소를 기르던 유일한 집이었다. 그 군인이 살아만 있다면 분명 기억할 수 있을 거다.”
베트남에 다녀온 나를 포함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들은 이제 이 요구를 가해국의 공식 기구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로 전달할 것이다. 진화위에 부탁한다. 진화위원장이 쯔엉티투를 직접 만나러 가 그가 심장으로 전하겠다는 말을 듣길 바란다. 청룡부대 3대대 10중대원 중에서 1966년 11월9일 오전 5살 소녀의 머리채를 잡았다가 양심에 가책을 느껴 그 아이가 도망칠 수 있도록 한 사람이 있는지 찾아봐달라. 찾는다면, 그때 당신이 살린 소녀가 지금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고 전해달라. 1968년 2월24일 130여명의 민간인이 죽은 거대한 하미 학살을 수행한 부대원에게 물어봐달라. 과자와 사탕을 주며 친하게 지내던 베트남 소년에게, ‘우리가 너흴 죽일 거니 얼른 도망가라’고 말한 사람이 있는지. 찾는다면, 그 소년의 동생이 지금까지도 ‘오빠를 살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전해달라.
과거의 학살과 비극에 대한 추모와 반성만으로도 벅찬데, 현실은 정반대로 조롱과 왜곡이 넘실거린다. 그럴수록 과거에 대한 현재의 책임이 충분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10년째 이 활동을 하고 있지만, 매년 마주하는 것은 피해자의 건강한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책임은 이미 너무 늦었지만, 더 늦어져서는 안 된다.
이번 칼럼으로 2020년 7월부터 시작한 6년간의 한겨레 연재를 마친다. 77개의 글을 썼는데, 각 칼럼 제목들만 봐도 6년의 시간이, 마감을 앞두고 가득했던 번민과 끙끙거림이 선하다. 대학 시절부터 종이신문으로 한겨레를 봤고, 지금도 그렇다. 내 삶에 깊숙이 박힌 매체에 내 ‘지면’이 있다는 것은 영광이었고 자랑이었다. 지면을 허락해준 한겨레, 부족한 글 읽어주신 독자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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