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섭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걸프 지역의 친미 아랍 국가들이 큰 희생을 치르고 있다. 역내 미군 기지는 물론, 두바이 국제공항과 사우디아라비아 정유 시설 등 민간 핵심 인프라까지 이란의 수평적 확전 전략에 의해 타격을 받고 있다. 불타는 중동을 지켜보며 대만해협을 걱정하던 와중, 더 급박한 문제가 불거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느닷없이 호르무즈해협에 동맹국 전함 파견을 요구한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위험 전가다.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가진 미국조차 작전상 위험 때문에 유조선 호위에 신중한 상황에서, 그 부담을 동맹국에 넘기려는 셈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 인식이다. 그는 유럽과 한국, 일본을 향해 “우리가 40년 동안 보호해왔는데, 이런 사소한 문제에도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냐”고 불만을 터뜨린다. 주한미군 4만5천명이라는 잘못된 수치를 여전히 인용하며, 동맹국들이 미국의 일방적 시혜에 기대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미 동맹의 성격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동맹 관리의 기준을 바로 세울 수 있다. 흔히 트럼프의 동맹관을 ‘거래적’이라고 비판한다. 가치나 공동의 위협 인식보다 노골적인 주고받기의 상업적 관계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맹은 본질적으로 상호 교환의 관계다. 주고받는 것이 있기에 성립하고 유지된다. 미국의 동맹만 해도 권위주의 국가도, 절대왕정도 포함돼 있다. 문제는 거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거래가 공정한가에 있다.
그렇다면 한-미 동맹은 무엇을 주고받는 관계인가? 한국에 동맹의 1차적 목표는 북한 위협에 대한 억제다. 재래식 전력에서 이미 한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만큼, 미국의 역할은 확장억제에 집중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비치듯 전적인 보호가 아니다. 실제로 미국 국방전략서도 “핵심적이지만 보다 제한적인 지원”(critical but more limited U.S. support)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전시작전권 전환을 서두르고, 한반도 방어에 대한 한국의 주도적 책임을 당당히 받아들여야 한다. 확장억제 역시 엄밀히 보면 미국의 시혜라기보다, 핵무장을 자제하는 데 대한 반대급부의 성격이 있다.
반대로 미국이 동맹을 통해 얻는 건 무엇인가? 그건 한마디로 기지 접근권이다. 국외 주둔 미군은 특정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선의’라기보다, 해당 지역에 대한 정치·군사적 관여를 보장하는 미국 패권의 핵심 수단이다. 이 점은 미국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1951년 일본과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협상 당시, 협상 책임자였던 존 포스터 덜레스는 “미국이 원하는 병력을 원하는 장소에, 원하는 기간 동안 주둔시킬 권리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근본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 역시 대한민국이 자국 영토 내에 미국이 군대를 주둔시킬 “권리”를 허용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반도를 “일본과 중국 본토 사이에 떠 있는 고정된 항공모함”에 비유한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주도의 전쟁에 동맹국의 군사적 기여를 기대하는 건 다음 문제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러한 기지 접근과 사용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이번 주한미군의 중동 차출에서 보듯, 일회성 전략적 유연성은 불가피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대북 억제 공백을 제기하지만, 이는 지나친 우려다. 억제력은 주한미군 부대 몇개의 전투력에 의해 좌우되기보다, 동맹의 결속 자체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반도가 제3국과의 전쟁에 마치 발진 기지처럼 반복적으로 활용되는 경우다. 이 경우엔 우리 의사에 반해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이런 형태의 전략적 유연성에는 분명히 선을 그을 수밖에 없다. 오산 기지와 대만해협은 약 1600㎞나 떨어져 있어, 미국으로서도 대만 유사시 한반도보다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작전을 구상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일본이 ‘대만 유사는 일본 유사’라고 주장하더라도, 한국은 다른 입장을 가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동맹은 분명 전략적 자산이지만 동시에 부담이기도 하다. 미국이 변하고 국제 질서가 흔들리면서, 동맹의 효용과 비용에 대한 계산도 달라지고 있다.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을 것인지, 우리 스스로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전쟁을 막고자 맺은 동맹이 오히려 전쟁을 불러오도록 놔둘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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