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의 서점마을 풍경. 김탁환 제공
전북 고창의 서점마을 풍경. 김탁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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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 소설가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문을 연 서점마을을 다녀왔다. 독립 서점 여섯군데가 모여 마을을 이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려다보니, 취향과 개성이 제각각인 서점들이 비탈을 따라 두줄로 단정하게 늘어섰다. 제일 윗집인 ‘철학 서점과 로스터리 카페 세발자전거’ 앞에서 이 마을 촌장 이윤호 대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서점들의 다채로운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그래픽노블 서점 NO°9’ ‘윤동주 시집과 독립출판물 서점 초롱이와 쑥’ ‘여행과 인문 서점 목수의 책방’ ‘생태 서점 맹그로브’ ‘모두의 그림책 서점 고릴라’. 제일 아래에는 여섯 서점이 함께 운영하는 ‘중고책 서점 리북’이 있다.

두해 전 구상을 미리 듣긴 했다. 서점마을을 세우기로 의기투합한 이들이 함께 곡성을 방문한 것이다. 섬진강 들녘에서 서점지기로 일하던 나는 그들의 계획 앞에서 한편으론 가슴이 뛰었고 한편으론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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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인생 서점이 있는가. 거기서 산 책은 무엇이고 만난 사람은 누구이며 나눈 대화는 어디서 어디까지인가. 생각과 느낌이 맞는 서점을 찾아 헤매다가 아예 서점을 차리기로 결심한 여섯 사람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걱정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하나는 서점에 방점이 찍혔고 다른 하나는 마을에 고민이 모였다. 책 읽는 인구가 나날이 줄어드는 시절이 아닌가. 지방 농촌 외딴 비탈을 서점으로 채운다고 과연 독자들이 걸음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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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들이 모였다고 마을인 것은 아니다. 부산을 비롯한 몇몇 도시에서 연이어 늘어섰던 서점들이 떠오른다. 그곳을 우리는 책방 골목이라거나 서점 거리로 부르긴 해도 서점마을이라고 하진 않았다. 마을이 되려면 안팎으로 궁리하며 갖출 부분이 훨씬 많다.

통일신라 시대 학승 혜초의 길을 따라 인도 북부와 중국 둔황을 거쳐 이란 페르세폴리스까지 답사를 다닌 적이 있다. ‘왕오천축국전’의 매력은 국적을 불문하고 한문을 해석할 수만 있으면 길 안내를 정확하게 받는다는 점이다. 먼저 나라가 등장하고 그다음엔 동서남북 방향이 나오며 이어서 걷는 기간이 언급되고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나라가 놓이는 식이다. 길 위의 날들은 불편하고 힘겹고 위험하다. 사막이든 초원이든 밀림이든, 그 길을 계속 가게 하는 힘은 마을에 가닿으리란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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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고생해서 도착한 마을이 여행자를 냉대하고 배척한다면 여정을 이어갈 수 없다. 먹고 자고 쉴 곳을 기꺼이 내어주는 마을이어야만, 여행자는 피로를 풀고 상처를 치료하며 원기를 회복하여 다시 길 위로 나설 수 있다.

서점마을의 환대는 곡진했다. 방문객이 충분히 서점을 둘러보도록 가만가만 배려했다. 내 서점은 물론이고 옆 서점까지 안내하며 특징을 소개했고, 서점 순례를 마쳤거나 도중에 휴식이 필요한 이들을 북카페로 이끌어 정다운 차담을 잇도록 했다. 서점마을을 좀 더 음미하도록 북스테이 시설까지 갖췄다. 단순히 하룻밤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밤새도록 서점들을 돌아다니며 책이란 우주에 젖을 기회다.

출근해서 서점을 돌보다가 퇴근하여 뿔뿔이 흩어진다면 마을을 꾸렸다고 하기 어렵다. 마을이 마을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거창한 경영 철학이나 세세한 규칙을 내세우는 이도 있겠지만, 나는 마을 구성원들의 일상이 궁금했다. 이윤호 대표는 서점지기들이 적어도 하루에 한끼는 모두 모여 음식을 요리해서 먹는 부엌과 탁자를 보여줬다. 마을 공동 텃밭에서 심고 기른 작물로 자주 반찬을 만든다고도 했다. 소박한 공동 식사는 비용을 절감할 뿐만 아니라 서로를 깊이 알아나가는 과정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밥 먹고 떠들고 농사짓고 걷고 차와 술을 마시는 동안 그들은 비로소 한마을 이웃이 된다.

서점마을의 앞날이 내내 밝고 훈훈하진 않을 것이다. 국내 최초라는 언급은 한반도에선 그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길로 접어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똘똘 뭉쳐 같은 출발선에서 첫걸음을 내딛더라도, 가다 보면 조금씩 이런저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 차이를 매출이나 효율이란 단어로 후벼 파는 바람에 무너진 마을이 또한 적지 않다. 소유보다 공유, 경쟁보다 협력을 앞세운 서점마을이 크고 작은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갔으면 한다.

저물 무렵 섬진강 들녘으로 돌아왔다. 고창 서점마을처럼 같은 언덕에서 나란히 지내긴 어렵겠지만, 강줄기를 따라 봄을 맞는 남원과 구례와 하동의 서점지기들과 만나 밥이라도 먹으며 의미 있고 재미난 궁리를 시작하고 싶다. 일찍이 간디는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고 했다. 서점마을은 어떤 세계를 구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