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라미 | 법률사무소 디케 변호사
민주주의는 책임에 기반한다. 유권자들은 투표로 정치인들의 행동에, 소비자들은 선택권 행사로 기업 행동에 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인터넷 경제의 급속한 성장에 기본 시스템만으로 책임성의 원리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거대 기업인 구글, 페이스북, 쿠팡과 같은 플랫폼 회사들은 사실상 책임 없이 우리 일상 경험을 형성하고, 정보, 상품, 서비스뿐만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까지 중재하는 상황이다.
지난달 쿠팡에서 약 3370만건, 거의 전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 이런 심각한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는 쿠팡이 자신의 법적 또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을까. 김범석 쿠팡 의장은 국회 청문회 출석을 거부했고, 그를 대신한 쿠팡 대표는 영어를 방패 삼아 동문서답으로 일관했다. 쿠팡이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이런 전략이 그간 먹혔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정보 사건은 아무리 심각해도 한국 사회에서는 이 또한 지나갈 이슈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최근에 내린 에스케이(SK)텔레콤에 대한 매출액 대비 미미한 과징금액은 쿠팡에도 역시 비슷할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무려 8년이나 기본적인 보안수칙도 지키지 않아 약 23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에스케이텔레콤에는 연 매출액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추후 공개된 회의록에서 드러난 사실은, 최초 내부에서 산정한 과징금액이 몇몇 민간 비상임 위원들의 ‘기준 금액이 너무 높다’는 취지의 질문 끝에 51%나 감액되었다는 것이다. 에스케이텔레콤에 대한 사회적 공분과 논란에 비해 사건 처리 과정은 허망한 수준이다.
이뿐만 아니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방법으로 기업들에 특혜를 주는 입법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기도 하다. 인공지능(AI) 원본 데이터 이용이 바로 그것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직원들은 “인공지능 기술 개발을 위해서 당초 수집 목적 외로 개인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는 특혜성 개인정보보호법의 발의 및 개정을 위해 국회에서 설득 작업을 벌여온 바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인공지능 기술 개발이 사회적 가치가 있다며 개인정보 보호에 있어 특혜를 허용하는 법안을 들고 다니는 것이 정상적인 상황인가. 돌아보면, 쿠팡 같은 회사도 초창기에는 혁신기업이라고 하고 우리 사회는 ‘혁신’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며 얼마나 칭찬해왔는가.
개인정보보호법은 본래 컴퓨터 기술의 발전이 사람들의 권리에 큰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는 인식에서 시작되었다. 자동화된 개인정보 시스템에 대한 우려에서 1970년 독일 헤센주에서 세계 최초로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되었고, 미국에서도 워터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1974년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되었다. 인공지능 시대에 그 위험은 더 커져가는데 우리 사회는 점점 둔감해져가고 있다.
규제기관들은 왜 제 역할을 못 하거나 안 하는 걸까. 우리는 주무 규제기관들이 대형 로펌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고위직 공무원들이나 중요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대형 로펌으로 이직하는 현상을 못마땅하게 볼 수밖에 없다. 왜 이런 기관의 중요 연구반이나 법령 연구 과정에서 대형 로펌 변호사들의 입김이 거센 것인지도 의심이 들기에 충분하다.
정부가 대관에 능한 쿠팡과 같은 회사들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이를 비판하고 감시할 수 있게라도 해야 한다. 그러나 언론 역시 거대 기업들에 불안한 위치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처럼 표현행위에 대하여 형사소송절차, 국가심의제도, 손해배상소송까지 허용하는 나라에서 언론은 강건하게 발전하기 어렵다. 쿠팡 같은 회사들이 비판적 언론 보도에 대해 ‘입막음 소송’을 남발하며 대응해온 것은 그것이 가능하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재 국회에서는 그간 허용되던 표현행위에까지 국가심의를 확대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확대할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쿠팡과 같은 기업들은 만세를 부를 것이다.
규제기관과 피규제기관의 밀접한 관계, 언론에 대한 위협이 가능한 법적 시스템과 같은 제도적 허점은 ‘책임성’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쿠팡 사태는 김범석 의장과 같은 거대 기업 의사결정권자들에게 책임 없이 우리의 미디어 풍경과 정보 환경을 맡겨도 되느냐는 문제를 씁쓸하게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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