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수돌 |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일론 머스크의 우주선에 태워 그가 발견할 행성으로 보내버리고 싶다.” 세계적인 침팬지 연구자, 제인 구달 선생이 91년의 삶을 마감하기 전인 지난 3월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그는 “머스크와 함께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도 함께 태울 것”이며, 또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같이 보내고 싶다 했다. 이들이 경쟁자들과 우위를 다투는 수컷 침팬지처럼 공격적 행동을 하기 때문에 꼴도 보기 싫다는 말!
물론, 구달 선생은 폭력을 쓰는 침팬지와 두뇌를 쓰는 침팬지를 구분했다. 폭력적인 수컷 침팬지의 경우, 낯선 사람을 만나면 스스로 흥분해 털을 곤두세우며 분노와 두려움을 느낀 표정을 드러낸다. 그러면 다른 수컷들도 같은 감정을 느끼고 함께 공격적으로 변하며, “(공격성엔) 전염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강하지만 주도권(패권) 경쟁 때문에 오래가진 못한다. 반면, 머리를 쓰는 수컷 침팬지는 겉보기엔 그리 강하진 않지만 신뢰와 공감을 얻는 특유의 능력 덕에 지속가능한 리더십을 발휘한다.
나는 “공격성이 선천적”이라는 구달 선생의 견해에 동의하진 않지만, 폭력을 쓰는 침팬지와 두뇌를 쓰는 침팬지의 유형 구분은 일리 있다고 본다. 물론, 모든 수컷 침팬지를 단지 두 그룹으로만 분류하는 것엔 무리가 있지만, 평생을 침팬지와 함께 삶의 현장에서 연구해온 학자의 소결론을 반박하긴 어렵다. 앞서 말한 정치가들이나 경제인들을 돌아오지 않을 우주선으로 보내고 싶다는 구달 선생의 소망 역시 (두뇌나 가슴 아닌) 주먹과 폭력을 쓰는 침팬지가 사라지면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할 것이란 믿음에 근거할 터!
동물의 세계에 견주어 인간의 세계를 설명하는 건 일견 설득력이 있지만, 좀더 자세히 보면 더 이상 등치 시키기 어려운 지점도 있다. 예컨대, 폭력을 쓰는 집단과 두뇌를 쓰는 집단의 구분을 인간에게 적용해, 조직의 주도권 내지 리더십의 지속성을 설명하는 구달 선생의 통찰은 흥미롭다. 그런데 인간 사회는 훨씬 복잡하다. 실제로, 폭력을 쓰는 집단이나 두뇌를 쓰는 집단이나 물질적 이해관계(권력과 재물) 앞에서는 모두 야망, 집착, 혈투, 중독에 곧잘 빠진다. 인간 사회는 물질적 이익을 위해 폭력과 두뇌를 번갈아 사용하거나 병용한다. 적어도 16세기 이후 지금까지 달려온 자본주의 상품가치 사회에서 물신주의에 빠진 인간은 대체로 그렇게 행동하며 산다. 따라서 머스크, 트럼프, 푸틴, 시진핑, 네타냐후 등을 우주선에 태워 날려 보낸들, 제2, 제3의 머스크, 트럼프, 푸틴, 시진핑, 네타냐후 등이 계속 등장할 것이다. 하늘나라에서 안식을 취하려던 구달 선생의 마음이 좀 불편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구달 선생을 ‘희망의 학자’라 본다. 침팬지를 연구하면서도 늘 인간 사회를 고민했고, 더 나은 세상을 믿고 갈구했다. 그는 마지막 인터뷰에서 정치적 억압, 기후위기, 6차 대멸종 등에 맞서 싸우는 이들에게 “오늘날 지구가 어두워도 희망은 있다”며 “희망을 잃지 말라. 희망을 잃으면 무관심해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며 격려했다. 그녀는 자신의 ‘뿌리와 새싹’ 운동을 예로 들어, ‘위대한 사명, 작은 실천’을 강조했다.
물론, 우리는 지난 수십, 수백년간 지속된 상품가치 중심의 경제 시스템을 전혀 고치려 들지 않은 채 섣불리 ‘값싼 희망’을 설파하는 오류를 범해선 안 된다. 구달 선생이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어두운 지구’를 만든 것은 공격성 강한 수컷 침팬지도 아니요, 그들의 행동 패턴을 닮은 마초형 인간만의 문제도 아니다. 진짜 주범은 ‘돈 놓고 돈 먹는’ 자본주의 경제 원리와 그 시스템 아래 우리 자신의 삶을 복속시키는 행위 패턴이다. 따라서 트럼프와 같은 정치가들만 탓하는 것도, 갈수록 투기성과 기생성이 강해지는 금융자본만 문제 삼는 것도, 결코 탈출구가 되진 못한다. 진짜 탈출구를 만들려면, 마치 구달 선생이 평생을 걸고 침팬지 연구에 몰두한 것처럼, 우리네 ‘삶 전체를 걸고’ 자본의 가치, 즉 상품가치나 화폐가치가 지배하는 풍조 전반을 넘어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감수성이 필요하다. 화폐 감수성 아닌 생태 감수성!
이 새로운 감수성이 없다면, 우리는 단지 자본주의를 좀더 신사적으로, 인간적으로 관리하려다 지치고 말 것이다. 물론,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만드는 것조차 쉽진 않다. 사실, 그것은 1945년 종전 뒤 약 30년 정도 미국과 유럽에서 복지국가 형태로 존재했으나, 그조차 자기모순과 부작용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다. 그래서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나왔고, 그마저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파산 선고됐다. 그 뒤 지금까지 자본주의는 사실상 산소호흡기로 억지 연명하는 중환자 꼴이다. 이에 최후의 발악을 하는 모습이 (트럼프로 상징되듯) 최근 세계 각국에서 창궐하는 극우주의, 권위주의, 인종주의, 전쟁주의 등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재명 국민주권 정부가 트럼프의 미국이 ‘45일 이내로 현금 3500억달러를 선불 투자하라’는 반강압적 요구에 속아 넘어가지 않아 망정이지, 하마터면 미국과 일본의 비밀공작에 속을 뻔했다. 수백명이 체포·구금당했던 9월 초의 ‘조지아 사태’도 크게 보면 그런 공작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게 다는 아니다. 이미 한국 기업들은 미국 내 20여곳에서 신규 공장들을 지어 미국의 자본 약탈, 고용 약탈, 기술 약탈 시도에 ‘어쩔 수 없다’며 동조하는 형국이며, 대통령도 ‘코스피 5000’에 사활을 건다.
‘인간적 자본주의’―일견 그럴듯하지만, 그것은 타자와 자연의 희생을 전제로 가능했던 일시적 시스템이었을 뿐! 그나마 더 이상 지속 불가다. 이젠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생태주의를 민본주의와 결합한 새 출구가 필요하다. 현 단계에서 최선의 대안은 생태민주주의다. ‘아직’ 여유가 있다 싶을 때 함께 근본 대안을 찾아야지, ‘큰일’이 터지고 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박경리 선생이 소설 ‘토지’에서 누누이 강조한 “생명에 대한 연민”과 같은 감수성, 그리고 구달 선생이 강조한 “예의 바르고 연민의 정이 있는 새로운 시민들”이 곧 생태민주주의를 만들 희망의 근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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