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6년 8월 톈안먼(천안문) 광장에서 마오쩌둥이 ‘마오주석 어록’을 흔들며 열광하는 100만 홍위병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문화대혁명(문혁)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마오쩌둥의 연설과 저술 중에서 뽑은 구절을 모아 붉은 표지의 소책자로 만들어 소홍서(小紅書)로 불리는 마오주석 어록은 문혁 당시 10억부가 발행되었다고 한다.
지금 시진핑 시대의 풍경도 어딘가 그때를 닮아 있지만, 훨씬 진화했다. 중국 언론과 정치 담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차이나 미디어 프로젝트’에 따르면, 2024년까지 시진핑 명의로 출판된 저서와 연설문 모음집 등은 120권이 넘는다. 중국 서점마다 시진핑 주석의 저작들을 별도로 모아놓은 코너가 있다. ‘시진핑 사상’(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은 이미 중국공산당의 헌법인 당장에 삽입되었고, 당원들이 매일 의무적으로 시진핑 사상을 학습하는 ‘학습강국’(學習强國)이란 앱이 보급되기도 했다.
시진핑 주석의 많은 저서 가운데, ‘빈곤타파’(擺脫貧困)는 시진핑 사상의 원형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시진핑이 30대 중반이던 1988년부터 1990년까지 푸젠성 닝더시 당서기로 근무하던 시기에 발표한 글과 연설을 모은 책이다. 시진핑이 지방 지도자로 근무하면서 이 책을 쓴 시기는 1989년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모인 시위대가 민주와 개혁을 요구하며 큰 정치적 풍파가 일어난 시기와 맞물려 있다. 당시 시진핑이 회의에서 발표한 연설문이 실려 있는데, 학생들과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문혁과 연결시키는 그의 생각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민주란 무엇인가? 쓸데없이 외치는 것이 민주는 아니다. 내 개인적인 이해로는 사회주의 국가의 민주란 인민의 이익을 법제화해서 실현하는 것이다. … 문화대혁명이야말로 대민주(大民主)의 표본 아닌가? 이런 대민주는 과학과도, 법제와도 관련이 없고, 대신 미신과 우매로 연결되고 결과적으로 대동란에 빠졌다. … 오늘은 당신이 나를 타도하고 내일은 내가 당신을 타도한다. 이런 나날을 반복하는 것이 좋은가? 그렇기 때문에 민주화의 문제는 법제의 궤도 위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중국에 필요한 민주화는 인민의 요구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이 법과 제도를 만들어 인민의 이익을 실현시켜주는 것이라는 시진핑의 이념은 젊은 시절부터 확고했다. 시진핑의 기억 속에서 문혁은 최고 지도자 마오쩌둥과 공산당의 오류보다는, 노동자·농민·학생 등 ‘조반파 홍위병’들이 당의 통제에서 벗어나 사회를 대혼란에 빠뜨렸다는 기억이 훨씬 깊은 듯 보인다. 마오쩌둥이 문혁에서 대중을 동원하고 당 관료제를 우회하여 급진주의로 치달은 것과 달리, 문혁의 ‘혼란’을 경계하는 시진핑은 공산당 조직과 중국 사회 곳곳에 대한 통제를 극도로 강화했다. 문혁에서 인민에게 큰 고통을 가한 마오쩌둥과 당, 군대에 대한 책임도, 마오쩌둥의 1인 숭배가 일으킨 비극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당과 지도자의 역할에 대한 비판은 ‘역사 허무주의’로 처벌한다.

마오쩌둥과 시진핑의 인민에 대한 인식은 상반된 측면이 있지만, 중국이 ‘제3세계’ ‘글로벌 사우스’를 이끌고 미국과 서구에 맞선다는 인식은 동일하다. 1957년 마오쩌둥이 “동풍이 서풍을 이기고 있다고 믿는다”고 했고 시진핑 주석은 이제 “동쪽은 떠오르고 서구는 쇠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시진핑이 젊은 시절에 쓴 저서 ‘빈곤타파’에는 그가 1989년 12월에 쓴 ‘빈곤지역의 정신문명을 확실히 건설한다’는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개혁개방 과정에서 대량의 외국 문물이 들어오고 있다. 특히 영향을 받기 쉬운 것은 젊은이다, 우리들은 제국주의의 ‘화평연변’(비폭력 민주화 혁명)을 방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늑대가 온다’고 몇번 소리 지르는 일이 아니다. 늑대는 분명히 이미 왔다. 사회주의의 진지를 우리는 한뼘도 잃어서는 안 된다.”
시진핑의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경계감은 1991년 소련 붕괴와 2003~2005년 우크라이나, 조지아, 키르기스스탄 등 옛 소련권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난 ‘화평연변’을 보면서 확신으로 변해갔다. 시진핑은 당서기에 취임한 직후 2013년 1월5일에 열린 당의 학습회의에서 단호하게 경고했다. “소련은 왜 붕괴했는가. 이데올로기 분야에서 격렬한 전쟁이 일어나, 소련 역사와 당의 역사를 부정하고, 레닌을 부정하고 스탈린을 부정하고, 역사 허무주의로 나아가, 사상이 혼란스러워지고 당 조직이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고, 군대가 당의 지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처럼 위대한 소련공산당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진핑 주석은 3연임 1년 전인 2021년 11월 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에서 중국공산당 역사상 3번째로 역사결의를 통과시켰다. 시진핑의 제3차 역사결의는 약 3만6000자 가운데 시진핑 통치에 대한 부분이 약 1만9200자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시진핑 사상’을 “21세기 마르크스주의이자 중화 문명과 중국 정신의 시대 정화”라고 선언하면서,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해 시 주석 같은 ‘강한 지도자’가 장기집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담았다.
장윤미 동서대 연구교수는 지난 4월 ‘아시아리뷰’(통권 33호)에 쓴 ‘묻을 수 없는 역사의 기억’이란 글에서 문혁 시기와 현재 중국 정치의 다섯가지 유사한 흐름을 분석했다. 첫째, 기존 강대국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중국 중심의 새로운 메시지를 만들고 이를 선전한다. 1960년대 초 중소분쟁 이후 중국공산당은 소련이 이미 수정주의로 돌아섰고 따라서 중국이 사회주의 종주국이며 세계 혁명의 진정한 지도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선전했다. 시진핑 시기에는 미국 패권이 쇠퇴하는 시대에 세계의 발전과 안보를 중국이 이끌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보였다. 문혁 시기에는 제3세계를 대상으로, 현재는 글로벌 사우스를 대상으로 국제적 연대를 표명하며 영향력을 넓히려 한다. 둘째, 국제주의적 성격과 함께 강한 민족주의의 경향을 보인다. 셋째, 문혁은 계급투쟁의 원동력을 국제 정세의 변화에 대한 결의 각성을 고취하면서 진행했다. 시진핑 체제에서는 개혁의 원동력을 미국과의 대치 상황을 통해 고취한다. 넷째, 문혁 시기에는 소련으로부터, 지금은 미국으로부터의 기술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학기술 발전에 매진한다. 다섯째, ‘운동’의 방식으로 목표(혁명/개혁)를 추진한다. 당의 영도하에 위에서 아래로의 정치적 동원 방식을 사용하여, 국가 전체의 모든 힘과 역량을 집중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지난 3일 베이징 톈안먼(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인민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전 80주년’ 기념 열병식은 이런 흐름이 총 집약된 초대형 정치 이벤트였다. 시 주석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비롯해 ‘반미’ 26개국 정상과 함께 톈안먼 망루에 올라 미국 중심의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중국 중심의 새로운 질서가 등장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세계에 과시했다.
특히 올 들어 시 주석은 2차 세계대전과 국제질서에 대한 새로운 역사 해석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왔다. 그동안 2차 세계대전 승리의 주역 자리는 미국과 유럽이 차지하고 있었으나, 이제 시진핑은 중국과 러시아가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큰 희생을 치르면서 파시즘에 대한 승리에 기여한 주역이었다는 역사관을 강조한다. 시진핑은 지난 5월 모스크바 방문을 앞두고 러시아 국영 매체에 실은 글에서 “80년 전, 중국과 소련을 포함한 전세계 정의의 세력이 영웅적으로 힘을 합쳐 무적처럼 보였던 파시스트 세력을 물리쳤다”면서 “80년이 지난 지금, 일방주의, 패권주의, 강압적 괴롭힘이 심대한 해악을 낳고 있다. 인류는 다시 한번 갈림길에 섰다”고 했다.
시 주석의 이런 역사관에 따라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난달 27일 ‘항일전쟁사’ 개정판 발간 소식을 전하면서 “공산당이 항일전쟁의 최종 승리에 중추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민족 부흥을 이끄는 핵심 세력으로 거듭났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일본의 침략에 맞서 국민당이 전면전을 이끌었고 공산당은 후방에서 게릴라전을 주도했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주류 견해였지만, 이제 그 역사를 새로 쓰는 ‘기억 전쟁’이 진행 중이다.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재해석은 대만에 대한 중국의 ‘권리’ 주장 강화로 이어진다. 그동안 미국은 대만 영유권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을 근거로 국제 질서를 주도해왔지만, 중국은 카이로 선언(1943)과 포츠담 선언(1945)의 의미를 점점 더 강조하고 있다.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은 대만의 중국 반환을 명기하고 일본의 본토 4개 섬 이외의 영토 처리를 연합국이 결정한다고 명시했다.
이번 열병식에서 인민해방군 장병들은 이전에는 등장하지 않던 새로운 구호를 외쳤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正義必勝) 트럼프의 미국이 벌이는 강압과 혼란에 맞서, 이제 중국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정의의 세력이라는 선언이다. 세계의 여론은 동의할까.

박민희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2007~2008년 중국 인민대학교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통일외교팀장,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세계와 외교에 대해 취재하고 쓰고 있다. ‘중국 딜레마’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보이지 않는 중국’ ‘롱게임’ 등의 책을 번역했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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