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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 미국 워싱턴디시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을 이끌고 이동하고 있다. 워싱턴디시/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 미국 워싱턴디시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을 이끌고 이동하고 있다. 워싱턴디시/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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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 전 정의당 의원

이번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독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영국 키어 스타머 총리, 그리고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난 백악관은 기이한 정상회담의 현장이었다. 메르츠는 기자들에게 “우리는 잘 조율되었고, 미 대통령이 기뻐했다”고 말했다. 이 문장 뒤에는 트럼프가 자신이 숭배받는다고 여기도록 하는 ‘아부’라는 외교적 무기의 존재가 비친다. 젤렌스키는 전쟁 중에도 960억달러 무기 구매 약속을 쏟아부었다. ‘조공’이 아니라 ‘구매’란 말을 썼지만, 실제로는 생존을 담보로 한 거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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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아부 기술은 거의 신기에 가까웠다. 지난 2월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하면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미션을 완수할 리더십을 신이 선택한 것”, “미국과 세계를 위한 의지가 명확한 지도자”, “당신이 살아남은 것은 신이 세계 평화를 위해 내려주신 선물”이라는 찬사를 쏟아냈다. 이스라엘, 파키스탄, 가봉, 모리타니 등 10개국 이상의 정상이 잇달아 트럼프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트럼프를 만날 때 노벨위원회에 보낸 추천장 사본을 지참하는 건 필수가 되었다. 이들이 제시한 ‘평화 실적’은 대부분 “트럼프가 중재를 시도했다”는 추상적 문구에 불과하다. 중동에선 더욱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졌다.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장 마흐무드 아바스가 동시에 “평화의 사도”라는 찬사를 트럼프에게 돌렸다. 서로를 향해선 한치의 양보도 없던 이들이, 트럼프 앞에서만큼은 한몸이 되어 아부를 뿜어냈다.

세계 정상들은 자국 내 언론으로부터 “굴욕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아부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트럼프에 대한 ‘거짓 충성’은 이제 정상외교에서 표준 매뉴얼이 되었다. 주된 행동 준칙은 ①개인적 칭찬 ②사적 소통 ③선물 공세 ④직접적 비판 회피 ⑤시간 끌기다. 이를 거쳐 얻는 것은 ‘즉각적 파국’을 피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그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공감대와 계산이 국제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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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미국은 더 이상 ‘규범의 수호자’가 아니라는 현실 인식이다. 트럼프는 “나토는 구멍 뚫린 지갑”이라 했고, “무역적자만 만드는 동맹”이라고 일갈했다. 이 말 한마디에 유럽은 방위비를 2%에서 4%로 올리는 방안을 논의하는 척하며 시간을 벌었다. 둘째, ‘트럼프 리스크’를 낮추기 위한 셈법이다. 트럼프는 이번주 정상회담에 대해 “1년 전이었다면 그들은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자신의 위세를 과시했다. 이 말은 동맹국들에 ‘미국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경고음처럼 들렸다. 그래서 그들은 트럼프의 기분을 맞추는 대가로 ‘즉각적 파국’은 피하려 한다. 셋째, 가장 본질적인 계산은 ‘포스트 아메리카’ 구상이다. 유럽연합은 2025년부터 방위기금을 8배로 늘려 독자적 군사력 구축을 가속화하기로 했다. 아시아에선 쿼드(QUAD)·오커스(AUKUS) 등 미국과 이름을 같이 쓰되, 실질적으론 미국 의존도를 줄여가는 병행 전략이 진행 중이다.

결국 지금의 ‘거짓 충성’은 이중적 행위다. 표면적으로는 무릎을 꿇고, 속으로는 미국 없는 세계를 준비한다. 트럼프가 도파민에 취해 “나 없이는 당신들도 없다”고 외치는 동안, 동맹국들은 조용히 ‘플랜비’를 다듬고 있다. 트럼프 시대가 끝난 뒤,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유럽은 미국에 기대지 않는 ‘전략 자율권’을 갖추고 중동은 미-중 양극체제를 틈타 자체 균형추의 역할을 모색할 것이다. 아시아는 미국과는 협력하면서도 동시에 미국을 견제하는 다자 네트워크를 더 촘촘히 엮어나갈 것이다.

오는 25일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다. 냉전 이후 형성된 자유주의의 주변 질서는 이제 종말을 고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가는 비행기에서는 트럼프의 비위를 맞추며 미국에 제공할 선물 목록을 점검할 것이다. 그러나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우리가 아는 미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진실 앞에서 미국 없이 홀로 서야 할 한국의 미래를 고민하게 될지도 모른다. 후견인 없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야 하는 중견 국가의 지도자로서 이 대통령은 국가 생존의 대전략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