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지난 6월19~22일 나는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열린 제32차 유럽한국학학회(AKSE)의 학술대회에 참가했다. 내가 최초로 참가한 유럽한국학학회 대회는 1995년이었으니, 딱 30년이 흐른 셈이다. 그 30년 동안 유럽 한국학의 지형은 상전벽해 격으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 유럽의 대학원생들이 이번에 발표한 논문, 예컨대 수도권 그린벨트에서의 토지 수용 반대 운동이나 일제강점기 신문 광고 이미지들의 변천사 등은, 그 데이터의 양이나 이론 적용, 분석의 방법 등으로는 국내 학계 수준과 비슷하거나 아예 그 이상이었다. 오늘날 유럽 지역의 신진 한국학 학도들에게 국내에서의 현지 조사와 국내 기존 연구의 포괄적인 섭렵은 기본이다. 거기에 참신한 이론 적용과 다른 나라 지역과의 비교 등이 가미되니 훌륭한 연구 결과들이 나온다.
유럽을 포함한 국외 한국학은 질뿐만 아니라 양적으로도 지금 급성장, 급상승의 국면이다. 상당수의 국가에서 한국어는 아예 가장 인기 있는 외국어로 떠올라 있다. 한국어 과정이 있는 많은 북유럽 대학에서는 최근 몇년간 한국어를 선택하는 신입생의 수가, 예컨대 일본어 내지 중국어를 선택한 이들보다 4~5배나 더 많았다. 현재 교원 인력으로는 거의 감당하기 어려운 ‘한국어’, 그리고 나아가서는 ‘한국학’ 붐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다 한류의 효능’이라는 것은 많은 이들의 생각이겠지만, 꼭 한류 때문만은 아니다. 한류는 대개 한국학에 입문할 때 그 직접적 동기로 작용하는 ‘관문’의 구실을 한다. 하지만 한번 입문한 뒤에는 그 동기가 유지되는 데에 한류뿐만 아니라 한국의 진보적 시민사회의 매력 등 여러가지 복합적 이유들이 작동한다. 한국학을 포함한 인문·사회과학의 신진기예 연구자 대부분은 여성인데, 그들에게 예컨대 한국의 급진 페미니즘 등은 대단히 매력적인 주제다. 안티페미니즘이 극성을 부리는 한국의 일부 젊은 남성들의 사회 현실과 이보다 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사례가 또 있을까.
질과 양, 양면에서 국외 한국학의 성장은 지금 매우 중요한 모멘텀을 만든다. 이 정도의 급성장이라면 한국학은 이제 바로 중국학과 일본학 못지않게 유럽 등 여러 지역에서 ‘주류’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확고한 주류가 되자면 제도적 뒷받침이 요구된다. 중국·일본학만큼 한국학 분야에서도 교수직 등이 추가적으로 더 설치되어야 그 비중도 비슷해질 것이다. 한국어와 한국학에 대한 수요가 급상승하는 지금이야말로, 국외 한국학의 제도적 인프라에 대해 이와 같은 지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황금기다. 급상승이야 언젠가 멈추겠지만, 일단 그런 국면에서 구축된 인프라는 오래 남는다. 해외 일본학의 인프라는 주로 일본 정부 기관 등의 후원으로, 일본 대중문화의 인기가 오르던 1970~80년대에 구축되었다. 일본 대중문화 선호도의 상승은 결국 멈추었지만, 이미 만들어진 인프라는 지금도 그대로 남아 학계 ‘주류’의 일부로서 일본학의 위치를 보장해준다. 한국학으로서도 급성장 국면이 종료된 뒤의 장기적 수성은 궁극적인 과제일 것이고, 지키고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인프라는 지금 구축되어야 한다.
급상승하고 있지만, 국외 한국학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 학계가 앓고 있는 모든 질환들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일단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학계만큼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은 부문도 드물다. 유럽의 경우에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최근 박사학위 취득자 중에서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율은 20~49%로, 대개 각국의 전반적인 비정규직 비율보다 거의 2배 이상 높다. 유럽에서 박사학위 취득자의 평균 연령은 약 26~27살이지만, 정규직이 되자면 대개 35~40살 정도는 되어야 한다. 연구열과 연구 능력이 가장 왕성한 나이에 한국학을 포함한 대부분의 분야에서 수많은 인재들이 2~3년짜리 박사후과정, 방문교수직 등을 전전하면서 ‘노예’를 방불케 하는 삶을 강요받는다. 신자유주의가 지속되는 한 이 상황을 본질적으로 개선하기는 힘들지만, 국외 한국학에 대한 지원은 적어도 이 상황을 더 악화시킬 필요는 없다. 즉, 새로운 비정규직을 양산할 대형 프로젝트 지원보다는,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교수직 설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나라 밖 한국학을 보는 국내의 시선은 상당히 복잡하다. 압도적으로 이를 호의적으로 보지만, 일각에서는 외국에서 한국학 연구를 하는 이들을 마치 ‘글로벌 코리아의 홍보요원’처럼 취급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시선은, 기업 홍보와 달리 본질상 비판적이지 않을 수 없는 학문의 속성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외국의 비판적 한국학은 이미 한국 현대의 지성사에서 적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미 1968년에 나온 그레고리 헨더슨의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는 그 당시 국내에서 정치적 상황상 연구하기 어려웠던 미군정기의 일련의 실책, 그리고 미군정의 한국 극우 양성 정책의 전모를 밝혀내 국내 학계에도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을 대표적 성과로 하는 진보적 한국학이 해낸 해방기 역사에 대한 탐구 없이는 아마도 국내에서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같은, 한 세대의 정신세계를 지배할 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한 명저들이 나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최근에도 프랑스 연구자인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국역판은 2007년 출간)은 국내와 다른 시각으로 한국인들의 ‘아파트 중독’ 현상을 분석해 국내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 바 있다. 사실, 국외 한국학이 비판적일수록, 그리고 국내에서 조명하기 힘든 민감한 주제들을 다루면 다룰수록 궁극적으로 오히려 국내인들에게 더 유효해진다는 것은 나의 지금까지의 관찰이다.
국외 한국학 지원은 ‘자선’이 아니다. 외국에서 한국학 수업을 받던 학생들이 국내에 유학생으로 와서 입학생 부족에 시달리는 대학들의 ‘생명줄’이 될 수도 있고, 그들의 비판적 시선이나 참신한 의제 설정 등은 국내 동료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국외 한국학 지원책을 내놓을 때 그 자율성을 존중하고 그 비판적 정신을 있는 그대로 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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