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 메시아를 자처했다가 이슬람교로 개종한 샤베타이 체비. 위키미디어 코먼스
유대 메시아를 자처했다가 이슬람교로 개종한 샤베타이 체비. 위키미디어 코먼스
광고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95가지 논제’를 내걺으로써 시작된 종교개혁은 가톨릭교회의 자기 정화 운동을 불렀다. 그 운동의 구심이 된 사람이 스페인 바스크 출신 영성가 이냐시오 로욜라(1491~1563)다. 로욜라가 세운 예수회는 루터-칼뱅의 혁신을 이어받은 청교도와 함께 종교적 삶의 새 시대를 열었다.

젊은 날 로욜라의 꿈은 전장에서 무훈을 세워 공주의 사랑을 받는 것이었다. 중세 기사들이 뒤쫓던 세속적 성공이 로욜라의 꿈이었다. 서른살이 되던 해 이 꿈이 깨졌다. 1521년 로욜라는 프랑스군 포탄에 맞아 다리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이때 병상의 지루함을 달래려 손에 잡은 것이 성인들의 전기였다. 자신과 비슷한 젊은 시절을 보낸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이 가슴 깊은 곳을 찔렀다. 이 독서가 싸움꾼의 삶을 바꾸었다. 로욜라는 귀족의 표시가 나는 모든 것을 버렸다. 걸인의 옷을 얻어 입고 구걸을 하며 지난 삶을 참회했다. 다시 태어난 기사는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마흔여섯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서품을 받은 직후 동지 여섯명과 함께 예수회를 결성했다.

로욜라가 예수회를 창설하고서 먼저 한 일이 대학을 세우는 것이었다. 늦공부가 낳은 열정이었다. 이어 로욜라를 사로잡은 것이 땅끝까지 그리스도 말씀을 전하는 일이었다. 이때 선교사로 뽑힌 사람이 학업 시절 로욜라와 기숙사 방을 함께 쓴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였다. 하비에르는 막 열린 대항해의 길을 따라 동쪽으로 갔다.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을 건너 1549년 일본 규슈 남단 가고시마에 도달했다. 하비에르는 가고시마 영주의 허락을 받아 2년여 동안 수천명의 일본인에게 세례를 주었다. 16세기 말엽에는 기리시탄(그리스도인)이 수십만명에 이르렀다. 천민·빈민만이 아니라 유력 영주까지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전국시대 패자 오다 노부나가가 가톨릭의 확산을 도왔다. 수도 교토에 신학교가 세워졌다.

광고

그러나 바람은 오래 가지 않았다. 노부나가가 죽고 실권을 잡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규슈 지방 영주들이 서양 세력과 공모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탄압으로 돌아섰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온 사제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나라 밖으로 쫓겨났다. 히데요시 사후 전국을 통일한 도쿠가와 막부는 탄압정책을 더 밀어붙였다.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 시대에 이르러 규슈 지역 가톨릭 농민들이 ‘시마바라 반란’(1637)을 일으키자 탄압은 극에 이르렀다. 막부는 성모상이나 예수상을 밟고 지나가게 해 기리시탄을 색출하고, 배교를 거부하는 신자를 구덩이 속에 거꾸로 매달아 죽이는 극악한 고문을 했다. 가톨릭교도는 지하로 숨어들었다.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이 시작하는 곳이 여기다. 포르투갈 예수회 신부가 금단의 땅에 도착한다. 관의 눈을 피해 신자들을 만나던 신부는 끝내 붙잡혀 나가사키로 압송된다.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한다. 순교라면 처음부터 각오한 일이다. 그러나 신부가 걸려든 시험은 순교의 차원을 넘어선다. 관헌은 신부가 아니라 신자들을 구덩이 속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신부가 배교할 때까지 고문한다. 신자들은 신부가 가톨릭을 버리지 않는 한 참혹한 고통 속에서 죽어갈 수밖에 없다.

광고
광고

이 시험이 신부의 갈등을 극한으로 몰고 간다. 그리스도가 똑같은 시험에 들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신부의 내면에서 두 목소리가 싸운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을 위해 틀림없이 배교했을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괴로워하던 신부는 마지막 순간에 배교를 선택하고 십자가의 그리스도 얼굴을 밟는다. 배교야말로 “가장 괴로운 사랑의 행위”다.

소설 속 신부가 배교하고 난 뒤에도 일본의 가톨릭교도는 규슈 지역 여러 섬에 숨어 신앙을 지켰다. 이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 가쿠레키리시탄(숨은 그리스도인)이다. 사제도 없고 성경도 없이 가쿠레키리시탄은 불교도로 위장해 관음보살 가슴에 흐릿한 십자가를 새겨넣은 성모상(‘마리아 관음’)을 만들어 섬겼다. 숨은 기독교인들은 250년 뒤 메이지유신으로 금교령이 풀린 뒤에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광고

엔도의 소설 속 사건이 벌어지던 17세기 중엽, 지중해 동쪽 이스탄불에서 한층 더 기이한 배교 사건이 일어났다. 유대인 샤베타이 체비(1626~1676)가 주인공이었다. 오스만제국의 스미르나에서 태어난 샤베타이는 어느 날 신비체험을 하고 유대인의 메시아로 자처하기 시작했다. 메시아가 도래해 세상이 바뀌었으니 옛 율법이 낡은 것이 됐다. 샤베타이는 율법이 금한 음식을 먹고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불렀다.

보다 못한 유대 랍비들이 샤베타이를 추방했다. 샤베타이는 이집트를 거쳐 1665년 팔레스타인 가자의 유대인 공동체로 갔다. 그곳에서 샤베타이는 나탄이라는 젊은 랍비를 만났다. 나탄은 샤베타이가 유대인을 구원할 메시아임을 ‘알아보고’ 근동과 유럽 전역의 유대인 공동체에 메시아가 왔음을 알리는 편지를 썼다. 나탄의 편지는 박해 속에 살아온 유대인들 사이에 희망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 메시아 숭배가 삽시간에 번져 나갔다.

샤베타이는 1666년 1월 오스만제국 수도 이스탄불에 도착해 유대인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제국은 샤베타이를 반역죄로 붙잡아 갈리폴리 감옥에 가두었다. 샤베타이는 옥중에서 편지를 써 “나는 구세주, 너희의 신”이라고 선포했다. 유대 세계의 모든 시선이 갈리폴리로 모였다. 여섯달 뒤 샤베타이는 재판을 받으러 이스탄불로 불려 갔다. 제국의 술탄은 샤베타이에게 이슬람교로 개종하든가 아니면 사형을 받으라고 명령했다. 그 자리에서 샤베타이는 개종을 선택하고 머리에 터번을 둘렀다. 석방된 샤베타이는 제국의 연금을 받으며 충직한 무슬림으로 살다 죽었다.

유대 사회는 메시아가 배교했다는 소식에 거대한 충격을 받았다. 랍비들은 즉각 가짜 메시아를 지워버렸다. 그러나 어떤 유대인들은 메시아 환상을 빼앗기느니 현실을 왜곡하는 편을 택했다. 샤베타이를 메시아로 알아보았던 가자의 나탄이 그런 사람이었다. 나탄은 샤베타이의 배교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데 남은 삶을 바쳤다. ‘악의 세력과 싸우려면 악의 세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유대 민족의 신성한 의무를 배반하지 않을 수 없다.’ 악의 심연으로 들어가 악을 무찌르는 트로이 목마가 샤베타이라는 얘기였다. 나탄의 말에 설득된 유대인 수천명이 이슬람교로 개종해 터번을 두르고 메카를 향해 기도했다. 샤베타이의 배교를 메시아의 표시로 받든 유대인들은 이후 150년 동안 유럽 곳곳에서 출몰했다. 추종자들은 샤베타이를 따라 전통 율법을 부정했다.

광고

18세기 폴란드의 유대인 예언자 야쿠프 프랑크는 샤베타이 추종자 중에서도 가장 과격한 사람이었다. 프랑크는 자신이 샤베타이의 환생이라며 메시아가 왔으니 옛 율법이 모두 폐기됐다고 선언했다. “율법을 부정하는 것이 율법을 준수한다는 진정한 표현이다.” 프랑크는 극단적인 허무주의 발언도 마다하지 않았다. “내 발길이 닿는 모든 곳이 파괴될지니, 그것은 내가 세상을 파괴하고 멸망시키러 왔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프랑크는 추종자 수천명을 데리고 폴란드 가톨릭으로 개종함으로써 샤베타이의 배교 행위를 반복했다.

배교는 숭고할 수도 있고 기괴할 수도 있다. 샤베타이 추종자들의 배교는 믿음이 한계를 넘어 망상으로 치달은 경우였다. 사람의 마음은 기묘한 것이어서 어떤 대상에 정신의 에너지를 집중하면 그 대상에 대한 애착이 거의 자동으로 생겨난다. 한번 생겨난 애착은 어떻게든 관성을 유지하려 하고 방해를 받으면 오히려 강도가 커진다. 그래서 애착 대상을 잃어버릴 상황에 부닥친 사람은 극심한 타격과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고, 애착하는 대상을 더 강하게 붙잡음으로써 상실의 두려움을 이겨내려 한다. 샤베타이 추종자들이 보여주듯, 애착으로 응어리진 믿음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가짜 메시아를 진짜 메시아로 바꾸기도 한다. 법을 파괴해놓고는 법을 지킨다고 자부하기도 한다.

정치 영역에서도 똑같은 착란이 어김없이 반복된다. 특히 비이성의 맹신을 이용하는 세력이 배후에 있을 때, 맹신의 열광은 끄기 힘든 불길이 된다. 토머스 홉스는 오늘을 예견한 듯 ‘리바이어던’에 썼다. “권력의 이익에 반한다면, 인간은 삼각형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기하학의 진리마저 부정할 것이다.” 권력자의 욕망은 그토록 집요하다. 맹신의 광기가 이 권력 집착과 결합할 때, 거기서 유사 파시즘이라고 할 정치적 광풍이 인다. 광풍을 잠재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건전한 이성의 단단한 연대와 단호한 대응이다. 망상을 치료할 시기를 놓치면 광풍은 태풍이 된다.

고명섭 | 언론인
‘하이데거 극장-존재의 비밀과 진리의 심연’(1, 2), ‘니체 극장-영원회귀와 권력의지의 드라마’, ‘생각의 요새’, ‘광기와 천재-루소부터 히틀러까지 문제적 열정의 내면 풍경’, ‘지식의 발견-한국 지식인들의 문제적 담론 읽기’, ‘이희호 평전-고난의 길, 신념의 길’을 썼다. 카이로스는 때·시기·기회를 뜻하며 현재를 밝히는 순간의 섬광을 가리킨다. 카이로스의 눈으로 철학·사상·역사를 포함한 인문학을 탐사하며 우리 시대와 대화한다. kallipolis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