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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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서울의 한 의대생이 의사 가운을 들고 걷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서울의 한 의대생이 의사 가운을 들고 걷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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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윤수 | 대전을지대병원 권역외상센터 교수

 잊을 듯하면 ‘응급실 뺑뺑이’라는 기사가 반복된다. 국민 모두 이런 기사를 보면 누구보다 빨리 클릭하고 함께 공감하며 분노한다. 다만 그 분노에는 그 기사의 주인공이 본인과 본인 가족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이 함께할 것이다.

1980년대 후반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같은 학교에 다니는 후배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나 또한 같은 길을 걸어 매일 등하교하였고 친한 후배였기에 그 슬픔이 나에게 너무 컸다. 흐릿흐릿 슬픈 기억을 되새겨보니 지금이라면 그 후배가 죽음이 아닌 삶과 생존에 더 가까운 곳에서 치료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19 구급대원의 신속한 출동과 초기 처치가 이루어지고 환자 상태에 따라 적절한 병원을 선정하여 이송한다. 만약 권역외상센터로 이송된 경우 나 같은 외상외과의사들이 중심이 되어 모든 의료진이 함께 초기 소생부터 신속하고 빠른 검사, 수술 등을 시행한다. 3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아쉽고 안타깝다는 생각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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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과거가 아닌 머지않은 미래, 10년 뒤로 돌려보려 한다. 10년 뒤라면 나도 반백을 훌쩍 넘겨 환갑에 더 가까운 나이가 된다. ‘외상외과의사가 없어 권역외상센터 여러 곳 문을 닫는다.’ 이런 제목의 기사가 반드시 나오리라 생각한다. 2025년 현재도 ‘외상외과의사 10여명 이상’이라는 권역외상센터 인력 규정을 충족하는 곳은 극히 몇곳에 불과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절반 이상의 권역외상센터는 외상외과의사들을 한손으로 쉽게 셀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그 인력들이 나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연배가 높은 외상외과의사들이 대부분이다. 현재도 극히 소수의 외상외과의사들이 몸을 갈아 넣어 죽어가는 생명들을 살려주려 노력하는 것이 우리나라 의료의 현실이다. 그러하기에 앞서 상상한 10여년 뒤 권역외상센터가 문을 닫는다는 기사 제목은 상상이 아닌 당연하게 올 미래다. 동시에 ‘응급실 뺑뺑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이 하루가 멀다고 나올 것이다.

남들보다 더 둔탁한 안전화를 신고 더 높은 곳에서 일하거나, 안전장치는 헬멧 하나밖에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일하는 노동자들은 10년 뒤에도 계속 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국가는 10년 뒤에도 이러한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을 더 소중히 여기고 지켜주며 치료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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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의사이자 제자가 다음달에 미국으로 떠난다. 이곳 대한민국 사람이 아닌, 미국 사람들을 위한 의사를 하고 싶다며 떠난다. 정확히는 대한민국 의료 제도 아래에서 일하기 싫다는 마음이다. 이 후배가 4년 전 의대생으로 외상외과에서 실습할 때 수술실에서 처음 만났다. 내가 교통사고로 배에 피가 가득한 환자를 수술하는 동안 후배는 옆에서 지켜봤다. 평생 볼 피를 그날 수술실에서 다 봐서 충격받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오히려 후배는 그날 이후 외상외과에 매우 관심을 가졌다. 후배는 나와 자주 만나면서 몇년 뒤 외상외과의사가 될 꿈을 키워갔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것처럼 지난해와 올해 보건복지부 등 정부는 이 후배 의사의 꿈과 진로를 바꾸는 정책들을 남발하였다. 당시 학생이었던 후배는 본인이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의사를 할 나라를 바꾸기로 결정하였다. 지난해 ‘의료개혁’이라는 거창한 구호로 시작한 국가적 실정으로 후배 의사는 더 열심히 미국 의사시험을 준비하고 결국 원하는 꿈을 이루었다. 제자이자 후배 의사를 외상외과의사로 키워 이곳 권역외상센터에서 함께 일하는 꿈이 처참하게 깨져버렸다. 하지만 나는 쓰리고 아픈 마음이었지만 진심으로 후배를 응원하고 축하해 주었다.

전국적인 산불로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안타까운 희생자들이 나온다. 분명 천재지변이라고 말하지만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고 손실과 희생자를 줄일 수 있는 또 다른 인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구라도 언제든지 또 다른 중증외상환자가 될 수 있다. 예기치 않는 사건, 사고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 그 사건, 사고가 지금 나 자신의 것이 아니기에 전혀 무관심하다. 다만 드라마에 나오는 가상의 외상외과의사에만 관심을 갖는다. 현실에서 묵묵히 일하다 사고를 당해 피 흘리는 누군가의 가족을 치료해 줄, 또 다른 미래의 외상외과의사가 미국으로 떠나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너무 늦었지만, 외상외과를 비롯한 필수 의료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