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의료 기반 강화는 최근 뉴스에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과 함께 지역·필수 의료와 함께 공공의료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공공의료'란 정확히 무엇일까? 넓게 보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 서비스 전체가 공공적 성격을 띤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위기 상황에 놓인 공공의료는 좀 더 좁은 범위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하며, 손해를 감수하고도 시장이 포기한 환자 곁에 남아 있는 병원들이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전체 병상의 10%도 안 되는 이 기관들이 코로나 팬데믹 당시 전담병원으로 전환하고, 의정 갈등 속에서도 진료실 불을 끄지 않았다. 정부의 공공의료 정책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결국 이 현장이 버텨줘야 한다. 서울시 중랑구에 있는 서울의료원은 그 최전선에 서 있는 기관 중 하나다.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간 2023년 7월부터 서울의료원을 이끌어온 이현석 원장을 만나 공공병원의 현재와 미래를 들어보았다.
반세기 공공의료의 현장, 서울의료원
서울의료원은 서울시 공공의료의 변천사를 고스란히 품은 병원이다. 1977년 두 시립병원을 통합해 출발한 이후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이름과 자리를 바꾸면서도 서울 시민의 공공의료를 지탱해 왔다. 2011년 강남구에서 지금의 중랑구 신내동으로 이전하며 서울 동북권을 대표하는 시립 종합병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 존재감이 가장 선명하게 빛났던 시간은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민간 대학병원들이 정상 진료를 유지하며 코로나 환자를 일부 받는 방식을 택할 때, 서울의료원은 달랐다. 전체 병상을 비우고 100%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전환하며 도시의 방파제 역할을 자처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가는 혹독했다. 팬데믹이 끝나자, 환자는 사라지고 정부 지원금은 10분의 1로 줄었다. “새 병원을 다시 개원하는 기분이었습니다”라는 이 원장의 말은 그 시간의 무게를 압축한다.
가파른 회복세를 되찾아 가던 찰나, 2024년 의정 갈등이라는 또 다른 절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전국 대형 병원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원내 갈등으로 몸살을 앓는 동안, 서울의료원은 단 1시간의 진료 단축도, 단 한 번의 진료 거부도 없이 2년을 버텼다. 이른바 빅5로 불리는 상급종합병원이 받아내지 못한 중증 환자들, 분만 도중 30~40여곳을 헤맨 산모들을 서울의료원이 고스란히 흡수했다.
“공공의료 기관은 민간병원이 기피하는 영역을 감당하는 것, 즉 수익이 나지 않아도 필요한 곳에 의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게 공공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고, 국가가 든든한 지원을 해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누구에게나 열린 병원…“의료 재난 상황에선 군대의 역할”
실제로 서울의료원의 운영 원칙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병원”이다. 서울 외 지역 국민이든, 외국인이든, 탈북자든 관계없이 오면 진료받을 수 있다. 에이즈 환자처럼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기 어려운 환자들을 적극적으로 받는다. 비급여 수가는 민간병원의 절반 수준이고, 진단과 치료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검사만 하는 문화가 오래전부터 자리 잡혀 있다. 수익성 때문에 대학병원조차 기피하는 호스피스 병동(7월 재개 예정)과 어린이 안심 병원을 운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원장은 서울의료원의 역할을 두 가지 국면으로 압축한다. 평상시에는 ‘최후의 보루’, 위기 때는 ’최일선’이다. 다른 병원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환자를 받아주는 안전망이자, 국가 재난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몸을 던지는 군대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의료원 권역응급의료센터 복도 벽에는 흡입기와 산소 공급기가 촘촘히 설치돼 있다. 평소에는 쓰이지 않지만, 재난 상황에서 복도에 병상을 놓고 즉각 진료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장치다.
이 논리는 재정 지원 문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전쟁이 없다고 군인 월급을 안 주지는 않잖습니까. 21세기 의료 재난에 대비하려면 평소에도 일정 수준의 투자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한국에서 실질적인 공공병원 비율은 전체의 5% 수준에 불과하다. 코로나 지원금은 팬데믹 종식 이듬해 10분의 1로 줄었고, 의정 갈등 기간에도 충분한 지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 원장은 이 같은 ‘착한 적자’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공공의 사명을 다하느라 생긴 적자인 만큼, 이를 메워줄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책 지원과 관련해 이 원장이 특히 경계하는 것이 있다. 지원이 지방의료원에만 집중되는 현상이다. “지방의료원에만 쏠린 지원책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서울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역차별받는 것은 옳지 않아요. 서울의 취약계층도 지방의 취약계층만큼 똑같이 소중합니다.” 공공의료 지원이 지역 균형이라는 명분 아래 또 다른 불균형을 낳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처벌이 전공의 지원자 없애고, 지원자 부족이 또 사고 내”
공공의료 현장에서 필수 의료의 위기는 더욱 선명하게 균열을 드러낸다. 서울의료원 역시 이 문제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필수 의료 인력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채용이 거의 확정된 의사를 민간 대학병원이 대폭 인상된 연봉으로 채용해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민간이 공공의 2~3배 수준을 제시하는 상황에서 공공병원이 경쟁할 수 있는 수단은 현실적으로 없다.
이 원장은 필수 의료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수가 문제다. 난도 높은 수술에 상응하는 보상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한, 필수 의료로의 유입은 구조적으로 막혀 있다.
둘째는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문제다. 한 대학병원 신생아 사건 이후 소아·청소년과 지원자가 급감했고, 응급실 레지던트가 대동맥 파열을 즉각 진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수년 뒤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 이후 응급의학과 지원자도 크게 줄었다. “처벌이 지원자를 없애고, 지원자 부족이 무리한 업무로 이어지고, 그게 다시 사고를 낳는 악순환입니다.” 이 원장은 “처벌보다는 그 분야에 뛰어난 의사를 많이 키워 경쟁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사고를 줄이는 더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공공의료의 자구 전략: AI 혁신과 조직문화의 변화
재정과 인력의 구조적 한계 앞에서 서울의료원이 선택한 돌파구는 내부 혁신이다. 기술과 조직문화, 두 방향에서 동시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 원장이 올해 초 AI 비전 선포식을 연 그것은 그 첫 번째 시도다. 흉부 엑스레이 판독과 당뇨 망막 검사에 AI를 도입한 결과 진료 속도가 2배 이상 빨라졌다. AI가 표시한 이상 소견을 보며 놓칠 수 있는 진단을 잡아낼 수 있게 됐다. 의사 부족 문제를 보완하는 동시에, 진단 정확성까지 끌어올리는 이중 효과다.
“공공병원이 AI에 투자하지 않으면 민간과의 격차는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집니다. AI를 도입하지 않은 공공병원에 내 몸을 맡기기 불안하다는 인식이 생기면, 그 인식을 되돌리기는 너무 어려워집니다.”
서울의료원의 목표는 단독 질주가 아니다. 전국 35개 지방의료원과 13개 서울시 산하 병원이 AI를 도입할 수 있도록 경험과 기술을 나누는 ‘선도자’ 역할이다.
“처음에 작게 시작해서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키워나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게 AI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입니다. 우리만 가는 게 아니라 같이 가겠다는 뜻에서 ‘선도’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기술적 혁신만큼이나 이 원장이 공을 들여온 것은 조직 내부의 변화다. 의학박사 외에 광운대 신문방송학과에서 의료커뮤니케이션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수평적 문화의 힘을 믿는다”라고 말한다. 부임 초기, 회의에서 그의 말에 토를 다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한국 조직에서는 당연한 풍경이었다. 그가 1년 가까이 공을 들인 끝에, 지금은 회의 때마다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내부에서 충분히 다양한 의견이 부딪치고 검증되어야 밖에서의 실수와 시행착오가 줄어들어요.”
그는 실무자에게 최대한 권한을 위임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던진 말이 지시로 굳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늘 조심한다고 했다. “이렇게 하라는 게 아니라 ‘이것을 포함해 몇 가지를 검토해서 판단해 보라’고 말합니다.” 자율성이 주어지자, 분위기도, 성과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설립을 주도했던 이 원장은 현재도 학회 명예회장 직책을 맡고 있다.
재정, 인력, 기술, 조직문화 등 서울의료원이 동시에 손을 댄 네 가지 과제는 공공의료가 안고 있는 문제의 지형도이기도 하다. 이재명 정부가 공공의료 강화를 국정 과제로 내세운 지금, 현장이 필요로 하는 것은 새로운 선언보다 실질적인 구조 변화다. 반세기 동안 시민 곁을 지켜온 이 병원이 다음 반세기도 버틸 수 있는지는, 결국 선언이 현장을 실제로 얼마나 바꾸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윤은숙 기자 su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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