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 이재현(55) 씨제이(CJ)그룹 회장 아들 선호(25)씨는 주식 280억원어치를 아버지로부터 증여받았다. 선호씨는 증여세로 120억원가량을 내야 한다. 씨제이 입사 3년차 사원인 그는 어떻게 세금 낼 돈을 마련할까?
선호씨는 이미 큰 부자다. 그는 2006년 씨제이미디어가 유상증자할 때 주주인 씨제이엔터테인먼트가 실권한 주식 74억3647만원어치를 주당 6512원에 인수했다. 이후 씨제이오쇼핑에서 분할한 씨제이이앤엠(E&M)이 씨제이미디어 등을 합병하자, 이앤엠 주식 26만4984주(지분율 0.68%)를 갖게 됐다. 2월23일 종가 기준으로 계산하면, 선호씨의 지분 가치는 125억3374만원에 이른다.
그해 부동산 관리업 등을 하는 씨앤아이(C&I)레저산업이 설립됐는데, 선호씨도 출자해 144만주(38%)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13년 매출 122억9600만원 가운데 72억4000만원을 씨제이이앤엠과 거래하는 과정에서 올리는 등 매출의 98%가 계열사 거래에서 나온다. 2009년에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빌딩을 누나 경후(30)씨와 함께 170억원에 매입했다. 이듬해에는 씨제이파워캐스트 24만주(24%)를 74억3088만원에 매입했다. 이 회사도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계열사 내부거래를 통해 올렸다.
이쯤 되면 궁금증이 생긴다. 부동산과 주식을 살 돈이 어디서 났을까? 그에 대한 답 역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회장은 선대로부터 증여받은 차명주식을 매각해 2004~2005년 무기명채권 등의 매입에 썼다. 2006년 무기명채권 278억원씩을 남매에게 증여하려 한 정황이 2013년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수사는 더는 진행되지 않았다. 이례적으로 자금 출처 조사는 물론 상속·증여세를 면제받을 수 있게 한 무기명채권의 특성 때문이다.
정부가 외환위기 극복 구조조정 자금을 마련하려 1998년부터 한시적으로 발행한 무기명채권은 비실명 거래가 가능해 ‘묻지마 채권’으로 불린다. 3조8700억원의 규모로 발행된 뒤 편법적 부의 증식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전두환(84) 전 대통령은 이를 통해 비자금을 은닉했고, 한화 김승연(63) 회장의 아들 동관(32)씨는 재산을 세금 없이 증여받았다.
씨제이 쪽은 선호씨의 자산 매입이 노출될 때마다 무기명채권을 자금 조달 출처로 들어왔다. 씨제이는 2006년 500억원대의 무기명채권이 증여된 점을 인정하면서도 선호씨가 받은 정확한 금액은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경후씨와) 반반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씨제이 관계자는 이번 증여세 납부 재원에 대해 “무기명채권을 증여받은 게 있어 세금 내는 데 문제없다”고 말했다. 세금 없이 넘겨받은 거액의 무기명채권이 선호씨 재산 증식 과정에서 종잣돈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씨제이는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씨제이도 수백억원의 세금을 피해 자녀에게 돈을 넘겨주고, 이를 종잣돈으로 계열사 주식을 사게 하고, 이를 키워 재산을 불려준 다른 재벌가를 닮아간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선호씨가 이번에 주식을 증여받은 씨제이시스템즈(현 씨제이올리브네트웍스)는 다른 재벌들이 편법 승계 통로로 가장 많이 활용한 시스템통합(SI) 업체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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