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내년 12월 서울 창동 서울아레나와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대규모 케이(K)컬처 축제 ‘패노메논’(FANOMENON)을 연다. 케이팝 콘서트와 음악 페스티벌, 게임·웹툰·영화·뷰티·푸드 등의 전시·체험을 한데 묶어 ‘한국판 코첼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프로그램이 ‘팬덤 시상식’이다. 한해 동안 가장 뜨거운 열정과 영향력을 보인 팬덤을 가려 상을 주고, 해당 아티스트가 팬을 대신해 수상하는 방식이다.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에서 박진영 대중문화교류위원회 공동위원장은 분야별 ‘톱10 팬덤’을 선정한 뒤 그중 최고 팬덤까지 뽑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팬을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케이컬처를 함께 키운 동반자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케이팝 팬덤은 이미 ‘누가 더 많이 샀나, 들었나, 투표했나’를 둘러싼 경쟁에 상당한 피로를 겪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2023년 3월 케이팝 팬덤 활동 경험자 500명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52.7%가 굿즈 수집을 위해 음반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조사한 주요 케이팝 음반 50종 가운데 96.9%에는 무작위 포토카드가 들어 있었다. 음악을 듣기 위한 소비보다 특정 포토카드나 팬사인회 응모권을 얻기 위한 반복 구매가 음반 판매를 떠받치는 구조가 이미 만들어진 셈이다. 2024년에는 일본 도쿄 시부야 거리에 한 아이돌 그룹의 새 앨범이 상자째 버려진 것이 뉴스가 된 바 있다. 팬덤의 애정을 판매량과 숫자로 환산해온 케이팝 산업의 풍경이 극단적인 모습으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음반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음악방송과 연말 시상식 투표, 음원 총공(반복 청취), 유튜브 조회수 경쟁까지 더해지면 팬의 애정은 어느 순간 ‘성적을 만들어야 하는 의무’로 바뀐다. 특히 시상식 투표에 참여하려면 비용을 내야 하는 과금제는 케이팝 팬덤의 오래된 불만이다. 팬덤 시상식이 또 하나의 경쟁을 추가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기자회견에서도 “팬덤의 열정을 정량화하면 순수성이 훼손되고 경쟁이 과열될 수 있지 않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박 위원장은 “부작용보다 순작용이 크다면 해볼 수 있다”며 “순수성을 잃지 않는 것은 상당 부분 팬들에게 달린 문제”라고 답했다. 공정한 데이터를 만들겠다는 설명도 이어졌지만 핵심 질문에는 충분한 답이 되지 못했다.
문제의 본질은 어떤 팬덤에게 상을 주느냐보다 정부가 왜 팬들의 애정을 경쟁 순위로 만들어야 하느냐다. 팬덤은 케이팝 산업의 가장 강력한 동력이면서도 가장 쉽게 소진될 수 있는 자원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팬들을 더 치열하게 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팬덤이 만나 문화를 즐기고 교류할 공간을 넓히는 일이다. ‘최고의 팬덤’을 가리는 시상식보다 세계의 팬덤이 경쟁하지 않고 함께 즐기는 축제가 패노메논이라는 이름에도 더 어울리지 않을까.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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