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쉐도우’ 공연 장면. 블루스테이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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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을 가볍게만 비틀면 우스워지고, 무겁게만 다루면 버거워진다. 그 사이의 지점을 영리하게 짚어낸 작은 뮤지컬이 ‘뮤덕’(뮤직컬 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백암아트홀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쉐도우’(10월26일까지)는 조선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임오화변을 무대에 불러낸다. 왕인 아버지가 왕자인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게 한, 세계사적으로도 보기 드문 비극을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 장치로 풀어낸다. 무겁기만 할 것 같은 소재가 록 뮤지컬의 질주와 만나니, 극장은 어느새 역사 강의실이 아니라 뜨거운 콘서트장이 된다.

뮤지컬 ‘쉐도우’ 공연 장면. 블루스테이지 제공
뮤지컬 ‘쉐도우’ 공연 장면. 블루스테이지 제공

관객을 단번에 끌어당기는 건 무대다. 철제 뒤주가 무대 중앙을 차지하고, 엘이디(LED)와 현란한 조명이 번쩍이며 차갑게 닫힌 밀폐 공간을 표현한다. 기타 리프가 불붙으면 공연장은 금세 밴드 무대처럼 진동한다. 록의 신남은 단순한 장르적 포장지가 아니라, 절망의 순간에도 삶을 움켜쥐려는 본능 같은 메시지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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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가장 흥미로운 설정은 뒤주 속에서 벌어진다. 사도세자가 옥추경 부적에 자신의 이름을 쓰는 순간, 시간이 열리고 과거의 어린 영조가 나타난다. 교과서 속 권위적인 군주가 아니라, 상처와 콤플렉스를 지닌 인간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역사의 논리보다 감정의 논리가 서사를 끌고 가고, 관객은 부자의 갈등을 이해하게 된다.

뮤지컬 ‘쉐도우’ 공연 장면. 블루스테이지 제공
뮤지컬 ‘쉐도우’ 공연 장면. 블루스테이지 제공

음악은 부자의 감정 곡선을 선명하게 그린다. 사도의 넘버는 분열과 절규가 뒤엉킨 록 발라드, 사이키델릭 록으로 쏟아져 나오며, 고립된 내면을 드러낸다. 영조는 하드 메탈의 냉혹함과 포크 발라드의 따스함을 오가며, 권력자의 얼굴과 인간의 얼굴을 동시에 보여준다. 두 사람이 함께 부를 때는 팝과 팝록의 밝기가 스며들며, “관계는 정의될 수 있다”는 희망이 선율로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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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2인극의 제약을 오히려 강점으로 삼는다. 오직 두 인물이 시선과 호흡, 노래만으로 이야기를 밀고 나간다. 영상과 조명은 서사를 보조하되 과장하지 않는다. 콘서트의 질주와 정지의 순간을 번갈아 배치하며 110분 내내 긴장감을 유지한다.

뮤지컬 ‘쉐도우’ 공연 장면. 블루스테이지 제공
뮤지컬 ‘쉐도우’ 공연 장면. 블루스테이지 제공

무엇보다 배우들의 힘이 크다. 사도 역에는 아이돌그룹 펜타곤의 진호와 신은총, 조용휘가 캐스팅돼 각기 다른 톤으로 고독과 분열을 풀어낸다. 아이돌 출신 진호는 록 보컬의 힘으로 분노와 절규를 터뜨리고, 신은총은 섬세한 표현으로 내면의 흔들림을 그린다. 조용휘는 폭발적인 성량으로 비극의 무게를 직설적으로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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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역의 한지상, 박민성, 김찬호는 왕과 청년 시절을 함께 연기하는데, 각기 다른 색깔로의 변신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메탈 보이스로 권력자의 냉혹함을 쏟아내던 배우가, 곧이어 포크 발라드의 음영으로 소년의 흔들림을 노래하는 순간, 같은 몸에서 권력과 취약이 공존하는 기묘한 울림이 생긴다.

뮤지컬 ‘쉐도우’ 공연 장면. 블루스테이지 제공
뮤지컬 ‘쉐도우’ 공연 장면. 블루스테이지 제공

비극의 결말은 변하지 않는다. 사도는 결국 뒤주에서 생을 마치지만, 타임슬립은 ‘죽음을 피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사랑할 용기를 확인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래서 ‘쉐도우’가 주는 카타르시스는 기적 같은 반전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지막 시도 자체다. 이 결심은 동시대의 우리에게 “끝내 용기 내어 사랑하라”는 위로로 다가온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