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꾸미 청자’ 덕분에 ‘바닷속 경주’로 떠오른 곳은?
충남 태안군 마도 앞바다를 문화재동네에서는 이런 문답풀이로 설명하곤 한다. 지난 2007년 5월 한 어부가 마도 해역에서 푸른빛 고려청자 접시를 휘감은 채 그물에 걸린 주꾸미를 잡아 올린 것이 계기가 돼 문화재 당국이 수중발굴을 지금까지 지속해왔기 때문이다.
보물 다 건지려면 100년도 모자란 ‘마도’
실제로 조사해보니 이 지역 앞바다 밑바닥에는 삼국시대~조선시대의 침몰선 뱃조각과 돛, 선적한 도자기와 목간, 생활유물 등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고 광범위하게 흩어진 양상이 드러났다. 한반도 옛 배들과 배에 실린 화물들이 무더기로 가라앉아 공동묘지처럼 각기 자리 잡고 밀집해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100년이 지나더라도 전부 발굴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동아시아 굴지의 해저 유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어마어마한 유적 범위를 지닌 태안군 마도 앞바다 해역에서 발굴을 시작한 지 18년 만에 조선시대 선박이 처음 바다 위로 끌어올려졌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소장 이은석)는 10일 오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올해 4월부터 최근까지 진행한 마도 해역 인양 조사 설명회를 열었다. 연구소 쪽은 이날 자리에서 현존 유일의 조선시대 선박 실물인 마도4호선의 선체 부재 인양 작업을 지난달 마무리한 사실을 알리고 작업 과정에서 거둔 15세기께의 인화문(도장 찍은 무늬) 분청사기 조각 5점 등도 내보였다.
마도4호선은 15세기 조선시대 전기의 조운선이다. 지난 2015년 마도 바닷속 해저에서 선박 부재가 흩어진 채 발견됐다. 지방에서 조정에 바치는 세금용 곡물을 싣고 가던 세곡 운반선의 실체를 처음 드러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배의 부재들이 흩어진 해저 바닥에서는 10년 전 첫 발굴 당시 ‘羅州廣興倉’(나주광흥창)이란 먹글씨가 쓰인 목간(나무쪽 문서) 60여점이 나왔다.
공납용 분청사기 150여점 중 ‘內贍’(내섬: 궁궐 공물과 외빈 접대용품을 관리하던 내섬시(內贍寺)의 줄임말)이란 글자가 표면에 들어간 그릇도 확인돼, 나주에서 세곡과 공물을 싣고 한강변 마포에 있던 광흥창(곡물로 주는 관료의 급여를 관리하는 기관)의 창고로 항해하다 침몰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 인양된 선체 조각들과 함께 나온 분청사기는 양식상 15세기 전반의 작품들로 판명됐고, 선박 조각들의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조사에서도 1410~1433년의 범위가 나와 조선 전기인 1420년께 가라앉은 세곡선임을 밝혀냈다고 연구소 쪽은 전했다.




발견한 직후 선체를 다시 해저 바닥에 묻고 10년이 지난 뒤에야 인양한 경위가 취재진의 궁금증을 낳았다. 연구소 쪽은 이에 대해 보존 처리 시설 차례가 뒤늦게 돌아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남 목포의 연구소 본소와 충남 태안 지소의 유산보존센터에 탈염 처리 수조 등이 있으나 마도4호선보다 먼저 인양한 고려시대의 마도1·2호선, 태안선을 장기 처리하는 작업이 올 상반기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시설을 활용할 여력이 생긴 올 하반기에야 4호선 부재를 인양해 처리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연구소 쪽은 “지금까지 통일신라(1척)와 고려(17척)의 옛 배가 수중 발굴 조사로 확인됐는데, 이번 인양으로 조선시대 선박의 실물 자료를 처음 확보하게 됐다”면서 “선체를 분석해 조선 전기 선박의 몇몇 특징들을 찾아냈다”고 했다. 고려 선박은 배 가운데에 외돛대만 세웠는데, 조선시대의 마도4호선은 앞부분과 중앙에 각각 설치한 쌍돛대 얼개임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항해 속도를 높이고, 바람 방향에 따른 조정을 쉽게 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또 고려 선박은 목재를 세로로 배열해 앞판(선수부)을 짜맞추고 큰 나무못과 보조못을 같이 쓴 반면, 마도4호선은 가로로 배열해 내구성을 높였고, 작은 나무못을 다수 박아 부재들을 세밀하게 이어나간 차이도 보인다. 지금까지 발견된 옛 선박들이 모두 나무못을 썼던 것과 다르게 선체를 수리하면서 쇠못을 박아 쓴 흔적도 처음 확인됐다.

최근 음파탐사로 해역 일대를 조사하다 12세기께 고려 중기로 추정되는 별개의 고선박(마도5호선) 흔적들을 찾은 부분도 주목된다. 연구소 쪽은 그 뒤 수중 조사를 벌여 고려청자 다발 2묶음 87점과 목제 닻, 밧줄, 볍씨 등을 거두었고, 통나무로 된 화물받침목(통나무) 등도 발견했다. 유물들의 구성과 양상이 고려시대 마도1·2호선과 비슷해 곡물과 도자기를 싣고 가다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자사가인 한성욱 민족문화유산연구원 이사장은 청자 유물들에 대해 “팽이형 잔과 눌러 돋을새김한 꽃무늬 그릇 등에서 12세기 고려청자의 전형적 특징을 보여준다”면서 “그 시기 식기 등 귀족들의 생활용기로 쓰였던 유물들”이라고 분석했다. 연구소 쪽은 마도 해역에서 발견된 옛 배들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일 가능성도 있어 구체적인 모양새를 띤 선박 부재 발굴에 주력하기로 했다.
옛부터 태안 앞바다는 바람과 안개, 암초가 많아 ‘난행량’이란 별칭으로 불릴 만큼 해난 사고가 잦았다. 연구소는 2007년 태안선 발굴을 시작으로 조사를 시작했고, 지난 2015년까지 마도1~4호선을 잇따라 발굴하면서 이 해역이 ‘바닷속의 경주’라 불리는 수중유산 보고로 떠오르는 데 중요한 밑돌을 놓았다. 현재까지 마도 해역에서 나온 유물들은 도자기와 목간을 비롯해 2만8천여점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고려청자매병 등 9점은 국가지정 보물이 됐고, 마도4호선 분청사기를 비롯한 다른 8점은 보물 지정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1976년 전남 신안 앞바다 해저에서 중국 원대 화물선(신안선) 적재품을 발굴하며 시작된 국내 수중발굴 역사가 내년 50주년을 맞는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50돌을 앞두고 국민과 함께 기념할 수 있는 행사들을 잇따라 선보일 계획이라고 알렸다. 앞서 지난 9월에는 마도 해역에 재현한 고려 난파선 체험장에서 잠수가 가능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선박 실측과 유물 인양을 해보는 국민체험단 행사를 처음 진행하기도 했다. 체험단에는 32명 모집에 800여명이 지원하는 등 관심이 뜨거웠다고 연구소 쪽은 전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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