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식을 먹으면서 성관계에 대한 호기심을 스스럼없이 발산하는 여학생들, 쪽쪽 소리를 내며 키스를 하는 남녀 커플, 서로에 대한 ‘디스’와 잡담으로 왁자지껄한 교실. 대학 입시라는 구름을 거둬내면 나름의 생기가 넘쳐나는 고등학교의 일상 풍경에서 주인(서수빈)은 오차범위를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평범하고 활기찬 학생이다.
유명한 사건의 아동 성폭행범이 출소해 동네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리자 같은 반 수호(김정식)는 이를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벌이는데, 전교생 중에 주인만 ‘영혼을 파괴하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 등이 적힌 구절에 동의할 수 없다며 거부한다. 이후 주인에게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쪽지가 오기 시작한다.

‘우리들’ ‘우리집’의 윤가은 감독이 6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세계의 주인’이 22일 개봉한다. 어른이 아닌 당사자의 눈높이에서 미성년자의 세계를 응시해온 윤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 10대의 삶을 그린다. 다른 점도 있다. 훨씬 무거운 사건을 스크린에 던지고 이것이 일으키는 파장을 집요하게 들여다보며 용감하게 관객을 설득해나간다. 주인은 올해 한국 영화에 등장한 캐릭터 가운데 가장 용감한 인물이고, ‘세계의 주인’은 까다로운 소재를 가장 용기 있게 다룬 영화로 기록될 만하다.
‘청소년들의 성과 사랑, 연애에 대해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출발한 ‘세계의 주인’이 영화로 완성되기까지는 10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진짜 그 나이의 마음과 몸으로 경험하는 성과 사랑을 들여다보니 공포나 불안, 위험, 폭력 등이 자연스럽게 침투해오는 걸 느꼈어요. 그런 방향으로 쓰는 건 부담스럽기도 하고 제 마음이 힘들어서 덮었다가 다시 들여다보고 또 덮고를 오래 반복했습니다.” 2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윤 감독이 말했다.

망설이면서 벗어나지 못하고 서성거리던 윤 감독이 “더는 피하면 안되겠다”고 마음먹게 도움을 준 건 이금이 작가의 청소년 소설 ‘유진과 유진’, 그리고 성폭력 생존자 지침서 ‘아주 특별한 용기’였다. “‘유진과 유진’에 담긴 활기와 명랑함을 보면서 ‘아!’ 이런 느낌이 왔어요. ‘아주 특별한 용기’에서 한 생존자 지인이 말하기를 ‘사람들은 사건의 참혹함만 생각하지만, 실제 생존자들은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더 고민하고 노력하는데, 이걸 모른다’고 해요. 이 말이 제가 가야 할 길을 열어줬어요.”
‘세계의 주인’이 놀라운 지점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주인뿐 아니라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자리에서 겪은 고통의 흔적이 배어 있지만, 그 앞에 놓인 삶의 무게를 지고 나가려는 단단한 힘과 에너지가 느껴진다. 죄책감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술에 의지하는 엄마(장혜진)와 우연히 단짝 친구의 상처를 알게 되면서 혼란에 빠진 유라(강채윤), 여자친구도 연애도 어렵기만 한 남자친구(김예창)까지 이 ‘세계’의 혼란스러움과 폭력성에 맞서 몸부림치고 살아남으려는 모든 캐릭터들을 기특하고 애틋하게 그려내는 솜씨가 감독의 전작들보다 한층 무르익었다.

영화 제목이 ‘주인의 세계’가 아니라 ‘세계의 주인’인 이유는, 하나의 고통스러운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로만 구성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과 복잡하게 연결된 하나의 세계이며, 치유와 용기가 필요한 이들 또한 그 모두이기 때문이다.
윤 감독은 “우리가 당할 수 있는 폭력과 고통의 형태는 다양하고 양상도 너무 넓어서 내가 그걸 다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은 오만이라고 생각했다”며 “관객 각자가 겪어온 재난의 순간들, 자신이 고통스러웠을 때의 얼굴이 떠오르면 된다는 여지만 남겨두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매일을 어떻게 채워나가는지에 초점을 맞추자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했다.
윤 감독은 “우리가 당할 수 있는 폭력과 고통의 형태는 다양하고 양상도 너무 넓어서 내가 그걸 다 드러내야 한다는 고민은 오만이라고 생각했다”며 “관객 각자가 겪어온 재난의 순간들, 자신이 고통스러웠을 때의 얼굴이 떠오르면 된다는 여지만 남겨두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매일을 어떻게 채워나가는지에 초점을 맞추자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했다.
윤 감독은 “우리가 당할 수 있는 폭력과 고통의 형태는 다양하고 양상도 너무 넓어서 내가 그걸 다 드러내야 한다는 고민은 오만이라고 생각했다”며 “관객 각자가 겪어온 재난의 순간들, 자신이 고통스러웠을 때의 얼굴이 떠오르면 된다는 여지만 남겨두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매일을 어떻게 채워나가는지에 초점을 맞추자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했다.
윤 감독은 “우리가 당할 수 있는 폭력과 고통의 형태는 다양하고 양상도 너무 넓어서 내가 그걸 다 드러내야 한다는 고민은 오만이라고 생각했다”며 “관객 각자가 겪어온 재난의 순간들, 자신이 고통스러웠을 때의 얼굴이 떠오르면 된다는 여지만 남겨두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매일을 어떻게 채워나가는지에 초점을 맞추자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했다.
‘세계의 주인’은 주인과 친구들, 가족들,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이들이 하루하루를 빛나는 삶의 의지로 채워나가는 모습을 침착하게 쌓아올린다. 때로 뒷걸음치기도 하지만 멈춤 없이 뚜벅뚜벅 앞을 향해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 용기가 관객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다. 용기야말로 회피하지 않는 응시이고, 그것이 우리 삶에서 가장 큰 위로라는 걸 보여주는 값진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