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 믿었던 지배 l 네이딘 매컬루소 지음, 문가람 옮김, 생각지도(2026)
사랑이라 믿었던 지배 l 네이딘 매컬루소 지음, 문가람 옮김, 생각지도(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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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그 폭력에 일조한 거예요!” 상담사의 호령에 내담자는 고개를 푹 숙인다. 오랜 시간 폭력적인 관계에 노출되어 지친 그/녀는 자기를 탓하며 괴로워한다. ‘이 모든 폭력과 고통은 내 잘못이었구나. 내 팔자 내가 꼬았구나. 그 사람을 믿은 것도, 그 사람이 폭력을 쓴 것도 다 내 영향이구나.’ 이런 장면이 버젓이 공중파에 방영될 때마다 나는 화면 속 내담자와 화면 바깥에 있을 많은 이를 떠올린다.

추천사 제안을 받은 책 ‘사랑이라 믿었던 지배’에서 “폭력은 결코 피해자 탓이 아니다”라는 당연한 문장을 만나고서야 숨이 쉬어졌다. 이 말을 저곳에 던져야 하는데…. 친밀한 관계 안의 폭력은 “사회적 토양에서 자란다.” 피해자에게 당신도 공범이라며 호통치는 상담가, 복잡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이별하지 못한 여자를 향하는 손가락질, 필요한 때 부재한 공권력, 낭만적 이성애를 찬양하며 가부장제에 침묵하는 사회가 공범이다. 그런데 정작 고개 숙이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오랫동안 사랑이라는 구실로 행해지는 폭력을 공모한 사회에서, 한 여자가 남자를 만나 22살에 결혼한다. 여자는 8년간 폭력적인 관계에 감금되었다가 집안에 경찰이 들이닥치고서야 마침내 관계에서 벗어난다. 남자의 죄목은 폭력이 아니라 ‘돈 놀음’이었다. 이후 자기 신화에 빠진 남자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고, 소설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로 탄생했다. 영화가 세계적으로 흥행하며 오락으로 소비되는 동안, 주인공이길 자처한 가해자 곁에서 서서히 말라가던 조용한 여자를 발견하거나 기억하는 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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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네이딘 매컬루소. 지워진 여자는 누구도 자신처럼 지워지지 않길 바라며, 상처와 생존으로 습득한 지식과 고민을 필사적으로 썼고, 그 책이 우리 앞에 도착했다. 사랑하라, 등 떠밀기만 하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이 세계에서 그녀는 사랑의 ‘다른 이야기’를 써낸다. 새끼를 지키려는 곰처럼, 가해자의 폭력성까지 피해자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상담가와 언론, 해묵은 시선을 사납게 할퀸다. 상처 입은 존재에게 연결과 고립이라는 두가지 길만이 아닌, 경계를 존중하는 중간 지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편, 그녀는 가해자가 ‘정상일 리 없다’며, ‘병리적’ 연인으로 표현하는데, 나는 다르게 해석하며 읽었다. 정상적인 사랑과 남성성의 기준이 무엇인지 되물으며 읽어내지 못한다면, ‘병리적’이라는 표현 역시 사회적 토양을 외면하는 면죄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세계에서 ‘정상성’은 가장 어색한 단어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저자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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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고도 여전히 연결되고 싶은 우리에게, 이 이상한 세계에서 사랑이 무엇인지 계속 질문하고 책임지고자 하는 우리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필요했다. “책임 없이 사랑도 없다. 어떤 치료도 고통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삶을 견디는 힘은 기를 수 있다.” 무엇보다 허물어진 상태에서 다시 고개 숙인 이들에게, 저자는 온 삶으로 발명해 낸 언어를 악착같이 쥐여준다. 당신은 더 나은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다.

홍승은 집필 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