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연극 그리고 제국 l 벤자민 푸어 지음, 박희본 옮김, 교유서가(2026) 오른쪽=자아 연출의 사회학 l 어빙 고프먼 지음, 진수미 옮김, 현암사(2016)
왼쪽=연극 그리고 제국 l 벤자민 푸어 지음, 박희본 옮김, 교유서가(2026) 오른쪽=자아 연출의 사회학 l 어빙 고프먼 지음, 진수미 옮김, 현암사(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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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에 쫓기며 책과 원고에 침잠하는 시간에도 세상은 정신없이 돌아갑니다. 미국과 이란은 종전협상을 두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봉쇄된 호르무즈 해협에선 폭음과 유가가 치솟고, 한국에선 윤석열 내란 세력 재판이 열립니다. 그 와중에 코스피(KOSPI)는 거침없이 7000선을 뚫고, 투자자들의 환호와 불안이 뒤섞입니다. 모든 행위자가 자기 역할에 진심입니다. 지구촌 곳곳의 야단법석을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어떤 모습일까, 쓸데없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예술의 본질을 ‘인간 행동에 대한 모방(미메시스)’이라고 했습니다. ‘재현’의 가장 직관적인 장르가 연극일 겁니다. 어쩌면 사회적 인간의 삶도 한 편의 연극일지 모릅니다. 행위자 관점에서 보면 개인뿐 아니라 기업, 조직, 국가도 주어진 무대에서 최선을 다해 주어진 역할을 수행해내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캐나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자아 연출의 사회학’에서, 인간의 일상적이고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일종의 ‘퍼포먼스(연기)’ 개념으로 해석했습니다.

이번 주 신간 중에 ‘연극 그리고 제국’(벤자민 푸어 지음, 박희본 옮김)이라는, 시집 크기의 얇은 번역서가 눈에 띄었습니다. 교유서가가 펴내는 ‘연극 그리고 Theatre &’ 시리즈의 다섯번째 책입니다. 앞서 ‘연극 그리고 ○○○’의 빈칸에 섹슈얼리티, 동물들, 장애, 역사가 들어간 책들이 나왔습니다. 시리즈의 필진은 세계의 저명한 연극학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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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그리고 제국’의 지은이는 18~19세기 영국 제국주의와 이후 패권을 움켜쥔 미국 제국주의의 결과로 탄생한 다양한 극작품들을 분석하고 그 연극이 어떤 방식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는지 파헤칩니다. 연극이론은 기본이고, 제국의 개념부터 제국주의에 관한 담론까지 톺아보며 ‘연극’과 ‘제국’의 유비를 펼칩니다. 그런 연극에서 관객은 배우와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탐욕으로 일군 ‘비즈니스 제국’도 모자라 세계 최강대국의 왕이자 최고사령관을 연기하며 즐기는 것 같습니다. 부패 혐의 재판을 연임으로 회피해온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가 국가안보를 구실로 파괴와 살상을 계속하는 것도 나름 고심한 퍼포먼스로 보입니다. 윤석열의 재임 중 언행과 재판 중 항변은 또 어떤가요. 배우는 즐거울지 몰라도 관객은 아찔하고 역겹습니다. 설령 세상이 연극이라 해도, 기왕이면 재미와 감동을 주는 연기를 보고 싶습니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