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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시즌 2의 스틸컷.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즌 2의 스틸컷.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이 재미와 더불어 서구권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얻었던 건 계층과 공동체적 이타성을 변수로 두고 인간 선택을 시험하는 사회 실험적 요소 때문일 것이다. 그 평가에 반박할 마음은 없지만, 시즌2에 들어 주인공 성기훈이 이 실험을 전복하려고 다시 실험체가 된다는 계획은 좀 어설퍼 보인다. 모든 사회 실험은 인간성의 이해를 목표로 하지만 잘못 설계된 실험은 인간을 극한 상황에 몰아넣은 후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것을 관측하며 대단한 진실을 발견한 척한다. 임의적 운이 작동할 여지가 큰 환경에서 인간성을 발견한다는 말은 흔한 착각이다. 우연과 타인의 선택에 좌우되는 실험에 스스로 들어가 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신념 자체는 용기 있지만, 계획이 정교하지 않다면 그 선택 자체가 오류이다.

뱅상 식탁 l 설재인 지음, 북다(2025)
뱅상 식탁 l 설재인 지음, 북다(2025)

설재인의 ‘뱅상 식탁’ 또한 인간성에 관한 사회 실험을 표방하는 소설이다. 총 7장으로 이루어진 구성조차 연구 배경부터 한계 및 개선방안에 이르기까지 실험 보고서의 형식을 따랐다. 배경은 나문시 서현지구, 새로 개발된 동네의 ‘뱅상 식탁’이라는 식당이다. 오픈형 주방이 총 네 개의 테이블을 내다보고, 각 자리에는 둘이 나란히 앉도록 의자가 배치되었다. 유일한 직원이자 사장인 정빈승은 요리하는 척하며 일종의 실험을 하는 중이다. 그가 맡은 임무는 문득 머릿속에 들려온 목소리, 정체 모를 연구팀의 일원이라는 미미가 시키는 대로 식당 손님들의 대화를 듣고 기록하여 인류의 본모습을 파악하는 것이다. 지리멸렬한 일상 대화를 몰래 듣던 나날 끝에, 빈승은 미미의 연구팀이 내린 지시를 따라 실험에 중요한 변수를 만든다.

그날 식당의 손님은 문예창작 야간 대학원 동기인 장년의 남녀, 학교 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의 학부모로 만나게 된 옛 동창, 억압적 엄마와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딸, 작은 회사의 고인 물인 상사와 학벌은 좋지만 일머리 없는 신입의 조합이다. 무난한 사이를 연기하던 그들은 위기에 몰리자 서로를 향한 발톱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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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사연에서 볼 법한 관계 속 복잡한 감정은 통속적 흥미와 현실적 공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과감한 전개는 역동적이다. 그러나 본질인 실험에 관해서 말하자면, 이것이 인간의 본모습을 발견하도록 설계되었는지는 의문스럽다. 손님들은, 인간은 사건이 없대도 대체로 본바탕대로 행동한다. 자기중심적 핑계, 편의적 거짓말, 노골적 비겁함, 오만한 자기 확신은 숨겨지지 않는다. 이런 성격은 실험 없이도 볼 수 있다. 그럼 그 이상은 뭘까?

설재인 작가의 힘차고 따뜻한 청소년 소설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뱅상 식탁’은 작가의 또 다른 관찰력을 보여준다. 작가는 후기에 “때로는 그늘과 진창에 대한 직시도 필요하다”(266쪽)고 썼다. 이 말에 동감한다. 하지만 이런 직시로 새로이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남는다. 실험의 목표가 소설의 마지막 문장처럼 “못생긴 것들이 연명하는 방법과 그것을 부술 또 다른 방도에 대해서”(264쪽)였대도 좋았겠다. 그 성공과 실패를 보여줄 후속 연구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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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작가
박현주 작가

박현주 작가·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