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동일지
재일한국인 정치범 이철, 13년간의 옥중 기록
이철 지음 l 서해문집 l 2만7000원
지난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967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돼 복역한 뒤 세상을 떠난 한 아무개의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했다. 앞서 1월에는 같은 법원이 1977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형을 확정받았던 이아무개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항소했다.

1960~80년대 군부 독재정권은 수많은 ‘조작 간첩’을 만들어냈다. 불법구금과 고문, 비열한 협박의 결과였다. 국정원과 검찰의 간첩 조작 행태는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2013년에는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이 수사기관이 증거 조작까지 일삼은 덫에 걸려들었다가 대법원에서 ‘간첩’ 혐의의 누명을 벗었다. 이철(75)도 피해자 중 한 명이다. 그는 1975년 ‘재일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 확정 판결(1979년 무기징역 감형)을 받고 13년간 옥살이를 했다. ‘장동일지’는 그가 2015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자신의 경험과 야만적 국가폭력을 기록한 고발장이자, 뒤늦게 결혼해 얻은 어린 자녀들에게 “부모가 살아온 가혹한 인생”을 알려주려 유서처럼 써내려간 슬픈 비망록이다. 2021년 일본에서 출간된 책이 우리말 번역본으로 나왔다.
이철은 해방 뒤인 1948년 일본에서 태어난 조선인 디아스포라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민단) 지부를 만들어 활동할 만큼 “반공 반북주의자”였다. 이철은 어린 시절 “가사의 뜻도 모른 채 “동해물과 백두산이… 하면서 애국가를 부르며 자랐”지만 “조국의 역사는 물론 우리말도 거의 몰랐다.” 1967년 도쿄 주오대학에 입학한 뒤 독학으로 우리말과 한국사를 공부하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한국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모국 유학을 꿈꾸던 그는 1973년 고려대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가슴이 부풀었다. 애인도 이때 만났다. 거기까지였다. 1975년 11월 중앙정보부가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사건’을 꾸며내면서 그의 모국 사랑과 젊은 꿈은 산산조각 났다. 당시 중정 대공수사국장이 박정희의 유신헌법을 만든 김기춘 검사였다. 1992년 대선을 앞두고 부정선거를 모의한 ‘초원 복국’ 사건의 주연이자,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국회의원을 연임하고 박근혜 정부의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자다. “자백하고 싶어도 자백할 것이 없었”던 이철은 모진 고문을 못 이기고 자살을 시도했지만 그마저 실패하고 결국 ‘간첩’이 되고 말았다.
그는 감옥에서 리영희·박현채·김지하·신영복·서승 등 양심수들과 비전향 장기수들을 만나면서 한반도의 비극적 현실에 눈 떴고, 좌익수들에 대한 가혹한 폭행에 굴하지 않고 옥중 처우 개선 투쟁에 나섰다. 책은 그가 징역살이를 하면서 겪은 희로애락과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일제의 식민 통치, 분단과 전쟁, 군부 독재와 민주화 투쟁이 이어진 한국 현대사의 축약판이다.
이철은 1988년 10월 개천절 특사로 출소한 뒤에도 양심수 석방 활동에 헌신했다.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해 피해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국가를 대표해 사죄”했다. 이철은 그러나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고 썼다. “서른 여섯 명이 무죄판결 받는 데서 끝날 것이 아니라, 재일동포 정치범 마지막 한 사람까지 무죄를 받아내는 일과 진정한 민주주의가 조국에서 실현되고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 시대가 도래했음을 먼저 가신 분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라도 아직 죽을 수는 없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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