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올 주역 계사전
김용옥 지음 l 통나무 l 2만8000원
동아시아 유교 문명의 기축을 이루는 경서 가운데 하나가 ‘주역’이다. ‘주역’은 ‘역경’과 ‘역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역전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꼽히는 책이 ‘계사전’이다. 도올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가 쓴 ‘도올 주역 계사전’은 이 계사전의 우주론을 치열하게 논구한 책이다. 지은이의 석사 논문과 박사 논문이 모두 ‘주역’에 관한 것이었으니,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주역을 붙들고 탐구한 결과물이 여기에 담긴 셈이다.
주나라 시대에 성립한 역경은 64개의 괘와 384개의 효, 그리고 각 괘‧효마다 붙어 있는 말씀(사, 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괘와 효, 괘사와 효사가 모여 역경의 텍스트를 이룬다. 그러나 역경의 언어는 극도로 압축적이고 상징적이어서 후대에 역경을 풀이하는 여러 해설서가 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역전이다. 역경이 몸통이라면 역전은 날개에 해당하기에, 흔히 ‘십익’이라고 부른다. 그 십익(단전‧상전‧계사전‧문언전‧설괘전‧서괘전‧잡괘전)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 ‘계사전’이다.
계사전은 기원전 4세기 이전 춘추전국시대의 사유와 교양이 집약된 ‘천하제일의 명문’이자 장엄하고도 심오한 우주론(코스몰로지, cosmology)이 펼쳐진 저술이다. 단순한 점서에 지나지 않았던 역경을 유학의 성경으로 일으켜 세운 것이 바로 이 계사전이다. “계사전이 없었다면 유학은 철학으로 발전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사전은 역경만큼이나 난해한 텍스트여서 그 해석을 놓고 2000여년 동안 무수한 주장이 쏟아져 나왔다. 지은이는 고대 동북아 사상 지형을 시야에 넣은 채로, 위진시대 왕필에서부터 명말청초의 왕부지까지 주요한 학설들을 두루 검토해 일관성 있는 해석의 틀을 제시한다. 특히 송대 신유학의 계사전 해석을 논박하는 데서 지은이의 고유한 관점이 두드러진다.
계사전은 상하 두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상편 제1장 첫머리에 등장하는 말이 ‘천존지비’(天尊地卑)다. ‘하늘은 높고 땅은 낮다’는 뜻이다. 여기서 ‘존’이나 ‘비’는 가치론적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니라 사실을 기술하는 말이라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이 첫 문장에 담긴 우주론을 지은이는 ‘천지 코스몰로지’라고 부른다. 천지, 곧 하늘과 땅은 분리된 두 세계가 아니다. 천지는 서로 동등하게 교섭하면서 인간 삶의 세계를 형성하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우주다. 여기서 지은이가 계사전의 우주론에 대립하는 것으로 거론하는 것이 인도유럽어권의 우주론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으로 대표되는 서방의 우주론은 하늘을 이상화하고 지상의 삶을 부정하는 이원론적 성격이 강하다.
계사전의 핵심 어휘를 하나만 들라면 ‘역’(易)을 꼽을 수 있다. 역이란 생성하고 변화하는 천지의 운행 양상이자 그렇게 운행하는 우주 자체를 가리킨다. 천지의 모든 것이 끊임없이 바뀌어 가면서도 코스모스(우주적 조화)를 잃지 않는 것이 역의 세계다. 여기서 지은이가 특히 주목하는 것이 초월적인 절대적 ‘신’이 없다는 역의 우주관이다. 계사전이 그려 보이는 세계에서는 신조차도 변화의 흐름 속에 있다. 그런 인식을 보여주는 문장이 ‘신무방 역무체’(神无方 易无體)다. 신 곧 하느님에게는 고정된 모습이 없고, 역의 우주에는 불변의 실체가 없다는 뜻이다. 신은 하늘 저 너머의 이데아 세계에 따로 있는 존재가 아니다.
천지의 모든 것은 변화와 이행의 상태에 있다는 이런 세계 인식은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라는 문장에서 또렷이 나타난다. ‘한번은 음이 되고 한번은 양이 되는 것을 가리켜 도라고 한다’는 뜻이다. 음과 양은 자기동일적 실체가 아니어서, 음이 양이 되고 양이 음이 되는 바뀜이 끝없이 되풀이된다. 지은이는 이 음양의 세계관이 송대 신유학에 이르러 어떻게 곡해됐는지 상술한다. 신유학은 불교를 통해 유입된 인도유럽어권 사유의 깊은 영향 속에서 유학을 재구성했다. 그 영향의 결과가 세상 모든 것을 이(理)와 기(氣)로 나누어 보는 ‘이기론’이다. 이기론을 인식의 틀로 삼아 신유학은 ‘일음일양’과 ‘도’를 분리한 뒤, 일음일양을 ‘기’의 세계로, 도를 ‘이’의 세계로 해석했다. 신유학의 이런 해석은 역의 우주론의 근원적 왜곡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계사전이 말하는 것은 음양의 변화가 곧 도라는 것이지, 도가 음양과 떨어져 따로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지은이는 계사전에 등장하는 ‘태극’이라는 말도 이런 곡해를 겪었다고 말한다. 신유학은 이기론의 틀 속에서 태극을 ‘기’의 세계에서 분리된 순수한 ‘이’의 세계로 보았다. 태극이 플라톤의 이데아와 유사한 것이 되고 만 것이다.
계사전에 등장하는 말 가운데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이 ‘형이상자위지도, 형이하자위지기’(形而上者謂之道,形而下者謂之器)라는 문장이다. 에도 말기의 일본 학자들이 이 문장 속 ‘형이상’을 끌어와 서양의 ‘메타피직스’(metaphysics)를 번역하는 데 적용했다. ‘형이상학’이라는 번역어가 그렇게 탄생했다. 그러나 서양의 메타피직스와 계사전의 ‘형이상’은 함의가 아주 다르다. 메타피직스는 현상세계 너머의 본질세계에 대한 탐구라는 의미가 강하지만, 계사전의 형이상에는 현상과 본질의 이원론이 들어 있지 않다. 형(形), 곧 형체가 있고 나서 그것이 위로 향하면 하늘의 도가 되고, 아래로 향하면 땅 위의 구체적 사물(기, 器) 이 된다는 뜻일 뿐이다. 도가 하늘을 향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도는 천지라는 큰 하나 안에서 나타나는 것이지 초월적 세계의 이데아는 아니라는 얘기다.
계사전의 우주 안에서 모든 것은 일음일양으로 바뀌어 가고, 그 결과로 ‘길흉’이 있게 된다. 그러나 길과 흉도 때가 되면 바뀐다. 이를테면 ‘건괘’의 여섯 번째 효사 ‘항룡유회’는 하늘 꼭대기에 올라간 용에 관한 이야기다. 권세가 극에 달한 용에게 남는 것은 후회뿐이다. 높이 나는 용의 오만이 그 원인이다. “인생의 가장 큰 병폐는 오(傲), 이 한 글자에 있다.”(왕양명) 지은이는 유교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 ‘우환의식’, 곧 세상을 걱정하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계사전 상편 11장의 ‘길흉여민동환’(吉凶與民同患)은 점을 쳐 나온 ‘길흉’을 놓고 백성과 더불어 걱정한다는 뜻이다. 걱정하는 마음은 세상이 바르게 되기를 염원하는 마음이다. 여기에 ‘역’의 핵심이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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