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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낮 동대구역 광장 박정희 동상 뒤로 ‘1975-2025 암흑의 날로부터’ 전시가 열리고 있다. 김규현 기자
9일 낮 동대구역 광장 박정희 동상 뒤로 ‘1975-2025 암흑의 날로부터’ 전시가 열리고 있다.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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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의 동상은 반드시 무너진다.”

9일 찾은 동대구역 광장, 볏짚을 들고 선 박정희 동상 뒤로 이런 문구가 적힌 대형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펼침막 사이로 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광장에서 시민들이 쓴 응원봉, 손팻말 등이 걸렸다. 흑백으로 인쇄된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인혁당 사건) 관련 신문 기사와 컬러로 인쇄된 최근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 관련 신문들이 섞여 보였다. ‘4·9통일열사 50주기 행사위원회’(행사위)는 지난 5일부터 10일까지 동대구역에서 ‘1975-2025 암흑의 날로부터’ 전시를 열었다.

전시 뒷편으로 1975년 인혁당 사건부터 2025년 윤석열 파면까지 해마다 중요한 사건들의 이미지가 나열됐다. 시각예술가 50여명이 각자의 방식으로 “암흑의 날을 헤쳐온 빛나는 기억들”을 표현했다. 이들은 “어설픈 독재자의 동상과 그 후예들의 뒤틀린 욕망을 넘어, 다시 광장의 민주주의를 되찾고 소중한 일상의 길잡이가 되기 위하여”라는 작품 해설도 덧붙여뒀다. 지나가는 시민들은 발길을 멈추고 전시를 들여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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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낮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리는 ‘1975-2025 암흑의 날로부터’ 전시를 시민들이 보고 있다. 김규현 기자
9일 낮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리는 ‘1975-2025 암흑의 날로부터’ 전시를 시민들이 보고 있다. 김규현 기자

9일은 박정희 정권이 조작한 인혁당 사건으로 8명이 ‘사법 살인’을 당한 지 50주기가 되는 날이다. 희생자 8명은 모두 영남지역 출신이었다. 이 가운데 4명은 대구·경북 출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구·경북은 가해자인 박정희 동상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해 12월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동상을 세웠다.

지난해 11월 경북 경산시 영남대에도 박정희 동상이 세워졌다. 사법 살인 희생자 8명 가운데 도예종(1924~1975)·서도원(1923~1975)·송상진(1928~1975) 등 3명이 이 대학 출신이다. 지난달 29일 학교 후배들은 50주기를 앞두고 종합강의동 앞 통일동산에 가로 69㎝·높이 45㎝의 추모비를 세우려고 했지만, 학교 쪽은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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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영남대 통일동산 앞 학교 쪽이 펼침막과 포크레인으로 막아 높은 모습. 4·9통일열사50주기영남대행사위원회 제공
지난달 29일 영남대 통일동산 앞 학교 쪽이 펼침막과 포크레인으로 막아 높은 모습. 4·9통일열사50주기영남대행사위원회 제공

“학교 쪽이 포크레인을 세워 놓고, 형법을 들먹이면서 펼침막으로 통일동산을 꽁꽁 봉쇄해서 아주 패악질을 해놓았습니다.” 영남대 88학번인 안홍태(57) 4·9통일열사50주기영남대행사위원장은 추모비를 세우려고 했던 통일동산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했다. 학교가 붙인 펼침막에는 “학교의 허가 없이 불법으로 구조물 등을 세울 목적으로 학교에 들어오거나 퇴거 요구를 받고도 응하지 않으면 형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애초 통일동산에는 추모비가 있었다. 인혁당 사건 20주기인 1995년 4월9일 영남대 총학생회는 이곳에 2m 높이의 추모비를 세웠다. ‘통일동산’이라는 이름도 이때 붙혔다고 한다. 하지만 한달여 뒤인 5월11일 새벽 경찰은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포크레인을 동원해 추모비를 뽑아갔다. 안 위원장은 “30년 전 그날이 떠올랐다. 그날 새벽 쇠파이프 하나 들고 추모비 앞에 서 있다가 경찰에 잡혀갔다. 이제는 학교가 박정희에게 살해당한 선배들의 작은 묘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가슴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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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4월9일 영남대 ‘4·9통일열사 추모비 제막식’ 모습. 영대문화 갈무리
1995년 4월9일 영남대 ‘4·9통일열사 추모비 제막식’ 모습. 영대문화 갈무리

인혁 열사들의 공통점은 4·19혁명, 한일회담 반대 투쟁, 3선 개헌 반대 투쟁, 유신 헌법 반대 투쟁 등으로 이어지는 반독재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점이다. 윤정원 경북대 강사(사학과)는 50주기를 맡아 행사위가 펴낸 소식지 ‘1975-0409’에 기고한 글에서 “박정희 정권은 정권 유지를 위한 희생양으로 영남 지역, 특히 대구 지역 혁신계를 중심으로 한 반유신세력을 공산주의자 또는 체제 전복자로 조작했다. 희생자 모두 박정희의 안정적인 정치적 텃밭으로 작동되어야 할 영남 출신이라는 점이 사형으로 끌고 가는 중요한 동인으로 작동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 위원장은 “희생자가 가장 많은 영남대에서 살인자의 망령은 더 크게 휘날리고 있다. 정말 모순적이다. 박정희는 인혁당 사건을 조작해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리던 대구를 죽였다. 대구는 ‘간첩의 새끼들’이라는 올가미에 매여 말하지 못하는 도시가 됐고, 오늘날 보수의 심장이 됐다. 이러한 모순에서 벗어나야 한다. 50주기를 맞아 열사들의 명예를 새롭게 회복하고, 그들의 정신이 대구에서 올곧게 다시 깨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인혁당 사건은 1974년 박정희 정권이 유신독재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려고 조작한 사건이다. 1975년 4월8일 8명에게 사형이 선고됐고, 18시간 만인 다음날 새벽 사형이 집행됐다. 국제법학자학회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정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2년 고문에 의한 조작사건이라고 발표했고, 2007년 법원은 8명에게 무죄를 선고해 국가배상이 결정됐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