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정(35)
최수정(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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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에 ‘금녀의 벽’은 없다. 이달 초 7인제 여자럭비 대표팀에 일간지 여기자가 발탁되면서 남성 전유물로 여겨진 스포츠 영역 파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여자니까 안 돼!’ 하는 스포츠 보수주의는 몸으로 부닥칠 때 깨진다. 스포츠 현장에는 기성의 관념을 깨는 여성 파워가 있다. 럭비와 야구, 아이스하키와 사랑에 빠진 여걸 3인방을 만나본다.

채성은(18)
채성은(18)
야구 최수정 “공이 정통으로 맞을 때 짜릿함 잊을 수 없어”


컴퓨터 프로그래머 최수정(35)
은 주변에서 “야구에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다. “연애보다 야구가 좋다”니 남자들은 관심이 있어도 접근하지 못한다.

-왜 야구가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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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교양과목으로 체육수업 10개를 들었을 정도로 몸으로 하는 운동이 좋았다. 야구과목도 듣고 싶었지만, 남자애들한테 방해가 될까봐 못한 게 한이 됐다. 동네 배팅연습장에서 500원 동전 넣고 화풀이하듯 휘둘렀는데 그렇게 재미날 수 없었다. 그러면서 혼자가 아닌 팀으로 하고 싶었다. 2004년 가을 여자 야구팀 ‘비밀리에’에 가입하면서 전문 선수가 됐다.”

-남성 스포츠여서 보통 사람은 접근이 쉽지는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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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좋아하는 가족이 많이 이해해 주었다. 처음에는 여기저기 상처도 많이 나고 다치니까 어머니가 걱정을 많이 했다. 지금은 경기하는 날 엄마가 종종 보러 온다. 그러면 힘이 두배로 붙는다.”

-어떤 매력에 빠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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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하면서 경기에 나설 때 짜릿하다. 공이 배트 중앙에 정확히 맞았을 때 손끝으로 전해오는 짜릿함은 안해보면 모른다. 늘 배우는 기쁨이 있고, 감독 역할도 겸하다 보니까 선수들 오더 짜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자라서 더 어려운 점은 없는가?

“구장이 부족하다. 야구부가 있는 학교도 주민들 민원을 이유로 운동장 빌려주기를 꺼린다. 구장을 찾아서 멀리까지 가야한다. 당장 이번 주말 구장도 구해야 한다. 번듯한 여자야구 전용 구장이 여럿 생겼으면 하는 게 소원이다.”

-연애는 언제 하나?(최씨는 미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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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보다 야구가 좋다.(웃음)”

-구릿빛 얼굴이 건강미가 넘쳐 보인다.

“뙤약볕 아래서 하다 보니 얼굴도 많이 타고 기미도 많이 는다. 그래도 지금은 건강미가 인정받는 시대 아닌가? 어느 정도 몸집이 있어야 배팅도 되고 하니까 야구 하고 나서 살이 조금 쪘다.”

-훈련은 견딜 만한가?

“겨울에 근력을 키우는 훈련이 가장 힘들다. 따뜻한 곳으로 전지훈련 갈 형편이 안 돼 추운 곳에서 하다 보니 손등이 트는 게 보통일이다.”

-목표는?

“마흔이 되기 전에 투수 한번 해보고 싶다. 나중에는 여자리틀야구팀도 만들 거다. 더 나이가 들면 리틀야구팀 버스 기사가 돼 야구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다.”

   

 

한재연(21)
한재연(21)

럭비 채성은 “갈비뼈 부러진 것쯤 영광의 상처로 생각해요”

고3 수험생 채성은(18)은 럭비 없이 못 산다. 볕 좋은 휴일 봄날 남들이 나들이 갈 때 얼굴에 선블록을 듬뿍 바르고 그라운드를 달린다. 달리고 부닥치다 보면 가슴이 확 트인다.

-럭비를 하게 된 계기는? 

“작년 6월 엄마가 텔레비전 럭비선수 모집 광고를 접하고 추천했다. 럭비공을 가슴에 꼭 품고 질주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원래 초등학교 때도 축구를 해서 달리는 거라면 뒤처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거친 스포츠인데, 후원자는 누구인가?  

“처음엔 할아버지가 깜짝 놀랐다. ‘여자도 럭비를 하느냐’며 다른 운동도 많은데 왜 하필 럭비냐며 말렸다. 그런데 지금은 손녀딸의 가장 든든한 서포터스다.”

-트라이에 성공했을 때 기분이 궁금하다.

“넘어지고, 부딪히고, 다치고. 처음 돌파에 성공했을 때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페인팅 동작을 써가며 상대를 제치는 재미는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입시 문제로 고민이 많을 것 같다. 

“럭비부를 운영하는 대학이 없어 특기생으로 진학하는 건 꿈도 꾸지 못한다. 운동 못지않게 공부도 충실히 하고 있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지난해 출전한 광저우 아시아대회 때 갈비뼈가 부러졌는데.

“영광의 상처다. 무섭다기보다는 다친 만큼 더 강해진 것 같다. 건장한 선수가 풀스피드로 달려올 때 겁먹지 않고 앞길을 막을 수 있는 뚝심을 길러야 한다.”

-어떤 선수로 기억받고 싶나?

“지더라도 고개 숙이고 싶지 않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있으니까. 묵묵히 달려가는 모습으로 남고 싶다.”  


 

 

아이스하키 한재연 “남자 친구가 싫다하면 과감히 남친 버려야죠”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는 한재연(21)은 수다가 모두 아이스하키와 관련된 것이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다”고 했다.

-왜 아이스하키에 미쳤나?

“아버지가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이어서 어려서부터 아빠 따라 아이스링크에 자주 갔다. 전광석화의 속도와 몸싸움의 강렬함에 넋을 잃었다. 중학 2학년 때 아빠를 졸라 처음 스틱을 잡았다. 미국이나 유럽 프로리그 경기를 비디오로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반대는 없었나?   

“아버지가 선수 시절에 부상을 많이 당했다. 해보면 알지만 장비와 스케이트날 등 위험 요소가 있다. 할머니가 많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괜찮다.”

-퍽이 주는 매력은?

“빙판이 추운 이미지이지만 빙판 위를 지치면서 땀을 흠뻑 흘리는 것이 무엇보다 좋다. 또 힘차게 날린 퍽이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순간이 가장 짜릿하다.”

-장비가 고가일텐데. 

“진짜 부담된다. 후원도 없고 각자가 구입해야 하는데, 제대로 전부 갖추려면 200만~300만원이 든다. 스틱도 종종 부러지는데 한 개에 30만원이다.”

-남자 친구가 운동을 반대하면?

“과감히 차 버리겠다. 그런 거 이해 못 해주는 남자는 못 만난다.”

-탄탄한 몸매가 좋은가?

“다이어트도 해야 하고 몸에 상처도 생기면 안 될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나중에 가꿀 수 있지 않을까? 운동을 열심히 하면 살이 빠지긴 하지만, 근육이 생겨서 문제다.(웃음)”

-보디체크 때 무섭지 않나? 

“외국 선수들과 시합할 때는 키도 크고 힘이 세서 솔직히 겁이 나긴 한다. 퍽에 맞아서 발목 안쪽이나 종아리 등에 멍이 드는 일도 많다.”

-실업팀이 없어 장래가 불투명한데. 

“장기적으로 여자 아이스하키 쪽에서 일을 하고 싶다. 하지만 여자 선수로서 나중에 직업을 가질 수 있는 폭이 크지 않아 고민이다. 하고 싶어도 할 길이 없으니까.”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