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올해부터 시행된 ‘학사관리 강화방안’으로 온통 뒤숭숭하다. 휴학이 부쩍 늘었고, 과외활동이나 전문분야 공부에 나선 이들은 크게 줄었다. 성적 경쟁에 따른 중압감 때문이다. 특성화 강좌까지 폐강되는 등 수업 과정의 파행도 잇따르고 있다.
■ 삭막한 생존 경쟁 지난 11일, 지방의 한 국립대 로스쿨에 1학년 여학생이 휴학계를 들고 왔다. 며칠 전 끝난 중간고사 점수에 충격을 받은 탓이다. 소식을 들은 동기들이 말렸다. 한 학생은 “걱정 때문이라기보다 ‘네가 나가면 내가 디(D) 학점을 받게 된다’는 생각인 것 같더라”고 말했다.
이번 학기부터 시행된 로스쿨 학사관리 강화방안은 엄격한 상대평가와 강력한 유급제를 뼈대로 한다. 모든 로스쿨은 예외 없이 에이(A)부터 디(D)까지의 학점을 정해진 비율대로 부과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학기나 학년마다 평점 평균이 ‘시 제로(C0)’ 이하면 학사경고나 유급 처분을 받는다.
학생들로선 ‘의자 뺏기’ 게임을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수강생의 4%는 반드시 ‘디’를 받게 돼 있다. 이를 두려워해 수강을 포기하면 다른 누군가가 또 그런 처지가 된다. 유급이나 학사경고가 아니라도 주요 과목에서 ‘디’를 한둘 받게 되면 좋은 취직자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2학년 여름방학 때 법률회사(로펌) 인턴 선발을 앞둔 1학년생들의 중압감도, 내년 1월 변호사시험을 앞둔 3학년생 못지않게 크다.
중압감은 이미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서울대 로스쿨의 이번 학기 휴학생은 16일 현재 모두 17명으로, 지난해의 갑절이 넘었다. 1학년생 150명 가운데선 12명이 휴학했고, 1명이 자퇴했다. 기말 성적까지 나오면 더 늘어날 수 있다. 교수들 사이에선 1학년의 20%가 휴학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온다. 학교는 군 입대나 질병으로 인한 휴학만 인정하다 지난 3월 카이스트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 뒤 일반휴학까지 받아들였다. 로스쿨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 교수는 “전반적으로 많이 침체해 있지만, 특히 1학년들이 많이 힘겨워한다”며 “걱정스런 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 교육의 질 제고는커녕 과거 회귀만 교육과정의 파행도 심각하다. 전종익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새 평가체제에 가장 걸맞은 수업 형태는 개별적으로 공부하고 시험으로 성적을 평가하는 전통적 수업방식”이라고 말했다. 과거 사법시험 시절처럼 혼자 틀어박혀 법서를 들여다보는 풍토로 되돌아간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팀별 수업 등 새로운 교수법이나 실무교육을 시도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학점 평가도 까다롭거니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따위 이유로 기피되기 일쑤다. 로스쿨 교육의 질 제고를 내걸고 강력한 경쟁체제를 도입했지만, 정작 법학교육은 과거로 회귀한 셈이다.
이렇게 학점과 변호사시험에 목을 매다 보니 ‘눈치보기’만 늘었다. 전북대 로스쿨의 3학년 과목인 ‘헌법종합연습’엔 모두 19명이 수강을 신청했지만, 개강 전날 13명으로 줄더니, 첫 강의 때 11명, 수강신청 변경 뒤에는 8명이 남았다. 우등생들이 몰린 것을 보고 몇몇이 수강을 취소하자, 애초 ‘비(B)’ 정도는 받을 것으로 기대했던 학생들까지 차례로 수강을 포기한 탓이다. 수강생이 8명으로 ‘안정’된 것은 이 숫자면 최소한 ‘디’는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울대 로스쿨의 ‘건설행정법’ 강좌도 예비수강신청 때는 15명이 신청했지만 결국 3명으로 줄었다. 한 학생은 “관심은 있었지만 ‘시’ 이하를 받을 것이 뻔해 포기했다”고 말했다.
특성화와 전문화의 실종은 당연한 결과다. 조세특성화 학교인 서울시립대 로스쿨의 경우, 조세법을 수강하지 않고 졸업할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한 학생은 “회계사·세무사 출신이 10명 이상 함께 수강하는데 어떻게 좋은 학점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수강 기피의 이유를 설명했다. 동북아시아법을 특성화 과목으로 정한 전북대에선 이번 학기 일본법·중국법 5개 강좌 가운데 3개가 수강인원 미달로 폐강됐다. 생명의료와 여성 특성화 학교인 이화여대 로스쿨에선 1학년 과목인 젠더법학에 고작 1명이 신청해 결국 폐강됐다.
그 대신 헌법·민법·형법 등 변호사시험의 기본과목에는 어느 로스쿨을 가릴 것 없이 수강생들이 몰리는 양극화 현상이 빚어진다. 로스쿨별 특성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 평가체제 손질 서둘러야 이런 모습은 3년 전 로스쿨 출범 때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김창록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법조인을 ‘시험을 통한 선발’ 대신 ‘교육을 통한 양성’으로 충원하자는 애초 취지에서 보면 희생양만 찾는 지금의 평가방식은 잘못”이라며 “예외 없는 상대평가와 유급제 강화는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송기춘 전북대 로스쿨 교수는 “지난해 12월 변호사시험의 합격률을 정하면서 이에 연계해 학사관리 강화방안을 도입한 것이 파행의 시작”이라며 “각 학교가 자율적으로 평가체제를 정하는 방향으로 서둘러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전국 법학전문대학원 학생협의회는 학교별로 현 평가체제에 대한 의견을 모아, 오는 20일 열릴 법학전문대학원 협의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일부 로스쿨 교수들 사이에선 헌법소원을 내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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