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다는 대부분 가정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12∼15살 소녀들이 기술을 배워 집안을 도와보겠다는 생각으로 들어간다.”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54년차 봉제노동자 배서연(68)씨가 ‘전태일평전’의 문장을 적어 내려갔다. 청년 전태일이 목격한 1960년대 평화시장 일대의 풍경이 묘사된 부분이다. 1973년 그 ‘소녀들’의 대열에 합류했던 배씨는 “어렸을 때 학교 다니는 애들이 가방 들고 다니면 중학교도 못 간 게 창피해서 도망을 다녔다”며 “아침부터 나와서 평일에는 밤 9시쯤 들어갔다. 밤새워서 일하는 토요일에는 일하다 졸지 말라고 주는 타이밍약 두 알을 먹으면서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일했다”고 말했다.
전태일재단은 이달 4일부터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11월13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줄 것을 촉구하며 전태일평전 손글씨 이어쓰기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은 배씨를 포함해 봉제노동자와 소공인 30여명이 참여했다. 전태일의 후배들이다. 박미경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은 “전태일의 후배들이 어떤 대목을 이어 쓰면 좋을까 하다가, 오신 분들이 평화시장 인근에서 어린 시절부터 일을 하셨을 것 같아서 2부 ‘평화시장의 괴로움 속으로’를 골랐다. 그 마음을 되새기면서 써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쓰기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전태일 열사 분신 이후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하루 13시간가량의 강도 높은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여전하다고 입을 모았다. 외환위기 때 추락했던 공임(인건비)이 여전히 제자리인 상황에서 일한 만큼 돈을 받는 구조가 이들을 과로로 내몬다. 봉제 일을 시작한 지 40년 넘었다는 박경미(60)씨는 “일은 예전보다 더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벌이로 따지면 오히려 못하다. 수입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엄청나게 오르니 충족이 안 된다”고 말했다. 양성례(55)씨도 “의류시장이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1년에 4개월 일하면 나머지는 손 놓고 놀 때도 있다. 일이 많을 때 뼈를 갈아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씨는 그나마 젊은 축에 속하는 양씨가 “새벽 4시에도 출근한다”고 귀띔했다. 수십 년째 ‘새벽 출근’이 몸에 밴 이들 가운데는 행사 시작 30분 전 도착해서 일찌감치 필사를 마친 경우도 있었다.
전태일재단이 전태일의 기일(11월13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이런 노동자 현실 때문이다. 전반적인 노동환경은 개선됐지만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 등이 여전히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만큼, 전태일 열사 기일 하루 만이라도 ‘일하는 사람의 날’로 만들어 노동과 연대의 가치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전태일재단은 “사각지대의 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로조건에도 생산과 내수에 이바지하는 소중한 구성원”이라며 “국가기념일 지정을 통해 노동의 가치와 연대가 사회 곳곳에 넓고 깊게 확산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태일평전 이어쓰기는 오는 9월까지 진행된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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