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2일 대법원에서 열린 2026년 시무식에서 판사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이 2일 대법원에서 열린 2026년 시무식에서 판사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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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인내를 심어 주던 달빛 깊숙이 비치는 숲속 고향길/고향길 가르쳐 주던 희망과 인내를 조국 강산 위에 뿌려 놓고 그날 다시 찾아오리다.”

2014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 후보자로 지명된 조희대 대법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중학생 때 쓴 시의 한 구절을 소개하며 “감개무량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45년 전 산속 고향길을 걸으며 큰 뜻과 희망을 품었던 소년이 오늘 대법관 후보자가 되어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 앞에 섰습니다. (중략)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엄숙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던 다짐이 무색하게 그는 지금 사법농단 사태의 양승태를 제치고 국민의 불신을 가장 많이 받는 대법원장으로 기록될 위기에 처해 있다.

2025년 추석 무렵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잘 드러난다. 9월24일 발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조사 결과 대법원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과 ‘탄핵돼야 한다’는 의견이 각각 29.0%와 16.4%로 나타났다. 둘을 합하면 45.4%로 ‘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 39.9%보다 높았다. 10월 초 SBS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의뢰한 조사 결과는 ‘사퇴해야 한다’가 48%로, ‘사퇴하지 말아야 한다’ 35%보다 크게 앞섰다. 또 MBC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한 조사 결과도 사퇴가 47%로, ‘사퇴할 필요 없다’ 39%보다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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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흠 없는 게 흠” 극찬한 까닭

11년 전 그가 대법관이 될 때는 전혀 딴판이었다. 2014년 2월18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박범계 의원은 “흠이 없는 게 흠인 것 같다”고 했다. 박 의원은 “재산이나 여러가지 경력 관계, 또 가족 관계, 병역, 세금, 하나도 흠잡을 바가 없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한 20여년 전부터 대법관이 되기 위해서 꿈을 꾸신 분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직하고 깨끗한 삶을 살아오셨고 철저하게 준비하신 것 아닌가 하는 느낌도 지울 길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인사청문회 때 그가 신고한 재산은 9억여원이었다.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평균 재산이 19억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청빈하다’는 표현이 전혀 과하지 않았다. 그는 2023년 대법원장으로 지명됐을 때는 16억원을 신고했다. 당시 고법 부장판사 이상 법관의 평균 재산이 38억원이었고, 그보다 앞서 대법원장으로 지명됐다가 낙마한 ‘윤석열 친구’ 이균용은 72억원을 신고했다. 고액 자산가가 즐비한 법조계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그의 재산은 ‘청렴하고 강직한 선비’ 이미지를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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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균용에 이어 윤석열 정권의 두번째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도 그 덕을 톡톡히 봤다. 대법관 시절 ‘양심적 병역거부’, ‘국방부 불온서적’, ‘백년전쟁’(이승만·박정희 친일 행적 다큐) 사건 등에서 강경 보수 성향을 거침없이 드러내 사법부의 보수화를 주도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지만, 청렴성과 도덕성을 앞세워 진보 진영의 반대를 가뿐히 넘었다. 조희대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총투표수 292표 가운데 찬성 264표, 반대 18표, 기권 10표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됐다. 당시 국회는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이 181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의 강경 보수 성향은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평균적인 보수보다 더 오른쪽에 있는 그가 대법원장이 되면 노무현·문재인 정권에서 어렵게 형성된 사법개혁 기조에 역행하는 일을 벌일 게 뻔했다. 앞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그랬다. 전임 이용훈 대법원장이 추진한 여러 개혁 조치에 제동을 걸고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를 강화하려다 사달이 난 게 바로 사법농단 사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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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 “불법 민간인 집단학살” 결정 무시하고 여순사건 재심 반대

2019년 3월21일 대법원에서 열린 여순사건 재심 인용 결정 재항고 선고를 앞두고 김명수 대법원장(가운데) 등 대법관들이 대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왼쪽 두번째가 조희대 대법관. 한겨레 자료
2019년 3월21일 대법원에서 열린 여순사건 재심 인용 결정 재항고 선고를 앞두고 김명수 대법원장(가운데) 등 대법관들이 대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왼쪽 두번째가 조희대 대법관. 한겨레 자료

특히 2019년 대법원이 여순사건 재심을 결정할 때 대법관 조희대가 낸 반대 의견은 예사로운 게 아니다.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을 못마땅해하는 보수 진영의 정서를 대변한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다수의견은 1948년 여순사건 당시 반군에 협조했다는 혐의로 군경에 체포돼 총살된 민간인들이 영장 없이 불법 체포·감금된 사실을 들어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그러나 조희대는 대법관 이동원·박상옥·이기택과 함께 ‘검사와 경찰, 군인이 불법행위를 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이미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4년여 동안 조사를 벌여 군경에 의한 불법 민간인 집단학살로 규정했는데도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여순사건에 대해 인권유린과 학살 등이 있었다는 진실 규명이 있고 그에 따른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졌으나, 그러한 역사적 평가가 특정 개인의 구체적인 범죄행위에 대한 증명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중략) 체포·구속이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에 관해 유죄를 인정할 정도의 증명이 충분하지 않음에도 군경이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범죄에 대한 엄격한 증명’을 재심 여부를 판단할 때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민간인인 재심 신청자에게 국가 수사기관 수준의 증거 수집을 요구하는 것은 아예 재심을 신청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특히 여순사건 희생자 유족은 ‘빨갱이 가족’이라는 낙인이 두려워 피해 사실을 숨기고 살아왔다. 이들이 낙인을 감수하고 군과 경찰, 검찰의 불법행위를 증명할 증거를 적극적으로 수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조희대의 반대의견에 대해 김재형·김선수·김상환 대법관은 보충의견을 내어 “무고한 민간인들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대량적·집단적으로 살해된 사건에 대해 수사기관이 범죄 혐의를 수사한 뒤 기소해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와 동일한 수준의 증명을 유족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일갈했다. 본질을 흐리는 법기술로 독재정권에 부역했던 법원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법부 과거사’ 재심에 반감 드러낸 보수 법조계

2012년 9월24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인혁당 사건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2012년 9월24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인혁당 사건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재심은 사법부 과거사 청산 방식 가운데 가장 소극적인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권력기관의 과거사 청산 작업을 추진할 때 대법원장으로 임명된 이용훈은 외부 기관을 통한 방식은 사법권 독립 침해 소지가 있다며 “재심을 통해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재심은 개시 사유가 매우 엄격해서 법원에서 좀처럼 인정되지 않는다. 법원은 과거사 재심 문턱을 낮추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진보 진영의 반발을 샀지만, 보수 진영은 재심조차 ‘사법 포퓰리즘’이라며 반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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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재심이 결정되자,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명백한 정치 공세로 나를 겨냥한 것”이라며 “지난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이고, 이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인데, 법 중 하나가 잘못된 게 아니겠느냐. 앞으로 역사와 국민이 평가할 것”이라고 했다. 2008년 9월 사법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과거사 반성을 강조한 이 대법원장 앞에서 “사법의 포퓰리즘은 경계해야 한다”고 일침을 놨다. 대법원 내부에서도 반발이 나왔다. 이용훈 체제에서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김용담 대법관은 2009년 9월 발간한 자서전에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모두 떠난 시점에 (중략) 잘못에 대한 책임 추궁이 아니라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사법 침해일 뿐이지 과거사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정권 관리 판사’ 모인 서울형사지법에 배치된 이유

조 대법원장은 1986년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형사지법은 당시 ‘정권이 관리하는 판사’들이 배치되는 곳으로 통했다. 시작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다.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민주적 정통성이 취약한 탓에 사법부의 협조가 절실했다.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거하는 데 법치주의의 외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제형 서울지방법원장이 말을 잘 안 듣자, 1963년 서울민사지법과 서울형사지법으로 분리해 김 원장을 자연스럽게 해임시켰다. 그리고 정권에 협조적인 판사들을 골라 형사지법에 배치했다. 신임 법관은 출신 지역 등을 따져 발령을 냈다. 주로 대구·경북 출신들이 배치됐다. 이들은 정권의 요구에 순응하는 판사로 길들어갔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에서 벌어진 여러 간첩 조작 사건에서 서울형사지법 판사들은 정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판사 조희대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시민들의 12·3 내란 진압 덕분에 사법권을 지킨 법원이 오히려 시민을 불안하게 합니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과 그 일당에 대한 단죄가 지지부진한 탓입니다. 대법원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내란 세력을 심판하려는 시민의 선택을 방해했습니다. 여론의 사법개혁 요구는 사법권 독립을 들어 반대합니다. 한때 ‘국민을 섬기는 법원’을 다짐했던 그 사법부가 맞나 싶습니다. 이런 사법부가 과연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사법개혁이 왜 필요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짚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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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논설위원 c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