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여성·청소년 업무 수기집 ‘여기, 우리가 있습니다’ 집필에 참여한 일선 여성청소년 수사관, 피해자보호팀, 신상정보 등록 대상자 관리담당, 지역경찰 등이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다리소극장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객석에 인사하고 있다. 정인선 기자
경찰청 여성·청소년 업무 수기집 ‘여기, 우리가 있습니다’ 집필에 참여한 일선 여성청소년 수사관, 피해자보호팀, 신상정보 등록 대상자 관리담당, 지역경찰 등이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다리소극장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객석에 인사하고 있다. 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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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피해자는 불안에 떨며 집을 나와야 하는데 가해자는 두 발 뻗고 편안히 잠드는 게 말이 되나요?” 배유빈(24) 대구남부경찰서 순경은 경찰행정학을 공부하던 학생 시절, ‘피해자를 임시 숙소로 인계한다’는 경찰 내부 매뉴얼을 보며 교수에게 따져 물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배 순경은 한겨레에 “지난 4월 처음 경찰복을 입고 현장에 나가 피해자들을 만나기 시작하니, 물음표가 어느 정도 느낌표로 바뀌었다”고 했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는 집을 떠나더라도 가해자가 재차 접근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게 중요했다. “가정폭력·데이트폭력 등 관계성 범죄의 가장 큰 특징이 피해자와 가해자가 가까운 사이라는 거잖아요. ‘언제든 가해자가 찾아올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일단 피해자를 꺼내 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더라고요.” 다만 학생 시절 의문 또한 마음 한쪽 여전하다. 당장 피해를 막는 것을 넘어, 피해자의 회복과 안정을 위해 무언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배 순경은 이런 고민을 ‘딜레마, 법과 현실 사이에서’라는 제목을 단 수기에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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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이 16일 여성청소년 수사관, 피해자 보호팀, 지역 경찰 등이 직접 쓴 수기를 모은 여성청소년 업무 수기집 ‘여기, 우리가 있습니다’를 펴냈다. 수사와 가해자 처벌만큼 피해자 보호와 회복 지원이 중요한 성폭력, 스토킹,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 ‘관계성 범죄’를 담당하는 경찰들 얘기다. 경찰청 수기 공모에 저마다 고민과 다짐을 담은 글 129편이 당도했고, 이 중 27편을 추렸다.

관계성 범죄 피해자 마음을 살피는 일은, 배 순경 수기 제목처럼 자주 딜레마에 놓이고, 법만으로 완벽히 해결되지도 않는다. 매 순간 다짐할 뿐이다. 배 순경은 수기에서 “막막함을 느낄지라도, 피해자 곁에서 흔들리지 않고 서 있는 것,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이자 끝까지 지켜야 할 약속”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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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이 일선 여성청소년 수사관, 피해자보호팀, 신상정보 등록 대상자 관리담당, 지역경찰 등이 직접 쓴 수기를 모아 여성·청소년 업무 수기집 ‘여기, 우리가 있습니다’를 펴냈다. 도서출판 사우 제공
경찰청이 일선 여성청소년 수사관, 피해자보호팀, 신상정보 등록 대상자 관리담당, 지역경찰 등이 직접 쓴 수기를 모아 여성·청소년 업무 수기집 ‘여기, 우리가 있습니다’를 펴냈다. 도서출판 사우 제공

사회적 지원과 지지에 대한 신뢰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경찰 보호 처분을 외려 두려워하는 피해자를 만나는 일도 흔하다. 올해 14년차 경찰관인 조병기(38) 부산진경찰서 경사는 최근 “아빠에게 맞았다”는 초등학생의 학대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장에서, 아이 엄마에게 들은 “그런 일 없었어요”라는 말을 수기에 적었다. 학대 정황은 뚜렷했고, 조 경사는 “참고 넘길 문제가 아니”라며 긴급 임시조치, 피해자 보호, 상담 지원 등 절차를 안내했다. 엄마는 소리쳤다. “경찰관님이 저 대신 이 집에서 살 거 아니잖아요!”

집을 쉽게 떠날 수 없는 처지에, 경찰 처분이 더 큰 보복 폭행으로 이어질까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조 경사는 “경찰이 진짜 누군가를 돕는 순간은 가해자를 체포할 때가 아니라 피해자가 ‘나도 이제 혼자가 아니구나’라고 느낄 때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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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서울 마포구 다리소극장에서 열린 북토크에는 ‘여기, 우리가 있습니다’의 공저자가 된 경찰 27명 중 26명이 모였다. 수기집을 기획한 조주은 경찰청 여성안전학교폭력대책관은 “여성폭력 범죄와 싸우는 경찰관들 이야기가 영화와 드라마, 소설에도 등장하길 기대해 본다”며 “책을 읽은 국민들은 경찰을 믿고 안심하고 신고해주기를, (경찰청) 직원들은 계속 사명감을 갖고 근무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