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8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2025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정인선 기자
민주노총이 8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2025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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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전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스스로 몸에 불을 댕긴 서울 동대문 일대, 산업별 노동조합 단위로 분홍색, 노란색, 초록색 조끼를 맞춰 입은 다양한 모습의 노동자 5만여명(주최 쪽 추산)이 차도 6차선, 도보와 광장을 가득 메운 채 전태일의 외침과 같은 의미를 담은, 다만 주어를 보다 넓힌 손팻말을 들었다. “모든 노동자의 기본권 쟁취.”

매년 전태일 열사 기일(11월13일)을 즈음해 열리는 ‘전국노동자대회’가 8일 오후 서울 도심 곳곳에서 열렸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센터 앞에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서울 여의도 여의대로에서 각각 멈춰있던 노동존중 사회를 향한 움직임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외쳤다.

이재명 정부 출범 뒤 처음 열린 이 날 전국노동자 대회는 ‘윤석열 정부 퇴진’을 요구하며 경찰과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졌던 한해 전에 견줘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이어졌다. 다만 각자의 자리에서 느낀 노동 현실의 고통과 위기감, 요구 목소리는 한층 다양해졌다. 특히 이주노동자와 특수고용 노동자,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이 놓인 기본권 보장 사각지대를 메워야 한다는 외침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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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30주년을 맞은 민주노총이 연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2025 전국노동자대회’는 지난달 대구 성서공단 이주노동자 단속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베트남 노동자 뚜안과 최근 울산 화력 발전소 철거 공사 현장에서 사망한 하청 노동자를 향한 묵념으로 시작했다. 김희정 대경이주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한국 법무부에 쫓겨 죽은 베트남 노동자 뚜안님과 미국 이민단속국에 죽어도 잊지 못할 폭력을 당한 한국 노동자들은 모두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 노동자”라며 “책임자를 처벌하고 강제단속 중단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지난 30년을 짚은 뒤 “이제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이 되기 위하여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쟁취하자. 업종의 담벼락을 넘어 초기업 교섭을 조직하고 울타리 바깥 노동자와 함께하자.”며 “정규직이 비정규직 손을 잡고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손을 잡고, 성별과 인종, 국적의 차이를 넘어 단결하고 연대해 싸울 때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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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이 8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연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2025 전국노동자대회에 다양한 부스가 차려졌다. 정인선 기자
민주노총이 8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연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2025 전국노동자대회에 다양한 부스가 차려졌다. 정인선 기자

무대에 오른 노동자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여전한 우려와 위기감을 전했다. 김태규 공공운수노조 서울교통공사노조위원장은 공공부문 노동자와 정부의 교섭 필요성을 언급하며 “정부는 공공부문의 실질적 운영주체이자 사용자로서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노동자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준현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장은 미국의 과도한 요구 속에 국내 제조업이 흔들릴 우려를 짚으며 “중국은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뿌린다. 미국은 제 나라 제조업 일자리를 지킨다고 죄 없는 한국 노동자를 끌고 갔다. 우리 정부는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현장에는 성소수자, 장애인 등 이동약자, 국제연대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부스들이 차려졌다. 현장을 찾은 노동자들은 ‘노동 탄압’에 맞서야 했던 지난해 노동자대회에 견줘 평화롭고 밝은 분위기를 전하면서도, 여전한 과제와 우려를 함께 짚었다. 왕복근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본부 조직국장은 “부스 별로 다양한 목소리가 전해지고 시민 참여도 늘어난 것 같다”면서도 “노조법 2·3조 개정(노란봉투법)은 시작일 뿐인데, 실제 어떻게 교섭을 해야 할지는 여전히 우왕좌왕하는 상태다. 5인 미만 사업장 문제도 그대로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탄압이 거두어진 정도이지, 더 나아가거나 획기적인 변화는 아직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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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범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 대외협력국장은 “오늘 2천명 가까이 광주에서 올라왔는데 지난해 보다는 편한 분위기였다. 특히 20~30대 청년 조합원 활동이 크게 늘었다”면서도 “(이재명 정부가)지난 정부보다는 낫지만 공무직, 돌봄 노동자들의 임금과 사회 안전망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했다.

집회를 마친 이들은 둘로 나뉘어 서울지방고용노동청과, 해고 노동자 고진수씨가 269일째 고공농성을 이어가는 서울 중구 세종호텔을 향해 행진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