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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뉴스AS] 화재에 대피 못한 시각장애인…살릴 방법 있었다

등록 :2022-08-26 14:33수정 :2022-08-26 18:11

화재로 대피 못한 시각장애인 50대 여성 숨져
해당 주택 스프링클러 등 화재감지기 설치 안 돼
소방청 ‘119 안심콜’ 당사자 직접 등록해야
“정부 차원 종합 긴급 구조 시스템 갖춰야”
24일 오전 0시 27분께 서울 은평구 역촌동의 한 다세대주택 2층에서 불이 나 50대 시각장애인 여성이 숨졌다. 은평소방서 제공.
24일 오전 0시 27분께 서울 은평구 역촌동의 한 다세대주택 2층에서 불이 나 50대 시각장애인 여성이 숨졌다. 은평소방서 제공.

“엊그제까지만 해도 이사 갈 집 알아봐 준다고 연락했었는데…새벽에 누님이 사망했다는 전화 받고 처음에는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어요. 너무 황망하죠.” (화재로 숨진 50대 시각장애인 ㄱ씨 동생 최아무개씨∙50)

지난 24일 서울 은평구 역촌동 빌라 4층에 살던 50대 시각장애인 ㄱ씨가 아래층에서 난 불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끝내 숨졌다. 2층에서 시작된 화재에 이웃주민 4명은 대피해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앞을 볼 수 없었던 ㄱ씨는 현관문 앞에서 쓰러진 채 소방관들에게 발견됐다. 재난 속 장애인들의 잇따른 희생을 막기 위해선 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안전·구조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5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ㄱ씨 빈소에서 만난 동생 최아무개(50)씨는 갑작스레 떠난 누나의 사망 소식에 황망해했다. “누나가 그 빌라로 이사 간 지 보름도 안 돼서 집주인이 ‘나가 달라’고 했대요. 누나가 시각장애도 있고 정신장애도 있다는 걸 알아서 그런가봐요. 제가 누나에게 새로 이사 갈 집을 알아봐 준다고 바로 엊그제까지 통화도 했었는데….”

숨진 ㄱ씨는 기초생활수급자이자 중증시각장애인으로 한달 120시간, 하루 5시간의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불이 난 새벽 시간에는 활동지원서비스 없이 혼자 있었다. 경찰과 소방서의 설명을 종합하면, ㄱ씨가 살던 4층 다세대 주택 건물에는 자동화재탐지설비와 스프링클러가 없었고, 의무 설치 대상도 아니었다.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8조는 다가구·다세대 주택에 소화기와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설치하도록 했지만 처벌 조항은 없다. 또한 해당 건물에는 계단 외 별도의 대피 통로도 없었다.

지난 8일 밤 폭우를 비롯해 반복되는 재난 속에서 잇따르는 장애인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안전·구조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020년 보건복지부는 독거노인, 중증장애인 가정에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장비 10만여대를 설치해 화재·낙상 등 응급상황 발생 시 실시간으로 소방서와 연계하는 ‘응급안전 알림 서비스’를 발표했다. 소방청도 지난해부터 개인정보, 병력, 복용 약물, 보호자 연락처 등을 등록하고, 응급 상황이 생겨 119에 신고가 접수될 경우 현장 출동 대원에게 미리 입력해둔 개인정보가 전달되는 ‘119 안심콜’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서비스 지원 대상이 한정돼 있고, 서비스 자체를 장애인 당사자들이 모르는 경우도 많아 구조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숨진 ㄱ씨는 소방청의 ‘119 안심콜 서비스’에 등록돼 있지 않았다. 은평소방서 관계자는 “안심콜 서비스는 거동이 불편하신 장애인·노인 분들이 직접 소방 쪽에 연락해 등록해야 한다”고 했다.

이연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사무총장은 <한겨레>에 “현재는 장애인들이 소방서에 응급 알림 서비스를 직접 신청해야 하고,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이런 서비스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장애인 등록 정보가 해당 지역 관할 소방서로 자동 공유되는 시스템을 정부가 종합적으로 구축하면, 화재 같은 비상 상황 발생 시 재난 문자부터 빠르게 발송되고 소방 당국도 미리 장애인 정보를 알고 구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25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는 성명을 내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번 화재사고를 비롯하여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에서도, 폭우로 인한 홍수 등 수많은 재난상황이 발생됨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안전에는 등한시하고 있으며, 사과는 물론 기본적인 대책 마련도 없는 상태”라며 “재난상황에서 취약계층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 마련을 강력히 요구하며, 중증장애인의 안전한 삶이 보장될 수 있도록 강력히 대처할 것”을 촉구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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