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은 단순히 말을 잘하는 기술이 아니라 다른 생각과 부딪히고 귀 기울이며 더 나은 답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다. 클립아트코리아
토론은 단순히 말을 잘하는 기술이 아니라 다른 생각과 부딪히고 귀 기울이며 더 나은 답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다.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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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 질문을 던지면 몇 초 만에 답을 내놓는 시대, 아이들은 점점 스스로 생각하는 노력을 불필요하게 느끼고 있다. 검색하고 판단하고 논거를 갖춰 주장하는 능력, 즉 토론력은 그래서 지금 시대에 더욱 절실하다. 토론은 단순히 말을 잘하는 기술이 아니다. 다른 생각과 부딪히고 귀 기울이며 더 나은 답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다. 25년차 현직 교사이자 ‘토론 쫌 하는 중딩이 되고 싶어’의 저자인 이현옥 교사와 함께, 토론력을 키우는 방법을 짚어봤다.

아이들은 누군가 내 얘기를 경청해준 경험들이 쌓이면 토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때 어른들이 이끌기보다 모든 의견이 동등하게 다뤄진다는 것을 보여줄 때 비로소 아이는 안심하고 자기 생각을 꺼낼 수 있다. 아이들이 토론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이현옥 교사 제공
아이들은 누군가 내 얘기를 경청해준 경험들이 쌓이면 토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때 어른들이 이끌기보다 모든 의견이 동등하게 다뤄진다는 것을 보여줄 때 비로소 아이는 안심하고 자기 생각을 꺼낼 수 있다. 아이들이 토론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이현옥 교사 제공

AI 시대에 더 절실해진 토론력

자료를 읽어보라고 하면 대충 훑고는 “다 읽었다”고 답한다. 정보를 찾아야 하는 과제는 AI에 물어본 후 몇 분 만에 끝낸다. 조금 더 생각해보라고 하면 돌아오는 말은 “수행평가에도 안 들어가는데 왜 그래야 해요?”이다. 이현옥 교사는 요즘 교실에서 마주하는 장면들이 요즘 아이들의 사고방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생각하기를 싫어하게 된 데는 원인이 있다. 이현옥 교사는 두 가지를 짚는다. 첫째는 과부하다. “아이들이 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천천히 생각하고 판단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빠르게 판단하고 필요없는 것들은 바로 가지치기한다.” 둘째는 결과 중심의 교육 문화다. 시험 점수나 정답과 오답을 찾는 데만 익숙해진 아이들은 과정을 소홀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AI 시대는 이런 문제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2025년 미국의 랜드연구소가 미국 청소년 12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67%가 “AI를 많이 쓸수록 비판적 사고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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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답을 찾고 사고의 과정을 생략할 수 있는 시대, 토론력이 더욱 절실해진 이유다. 토론은 주어진 자료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의심하고 질문하는 태도, 즉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능력 그 자체다. 이현옥 교사는 “토론은 서로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며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을 거부하지 않고 합일점을 찾는 연습을 해본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유연할 수밖에 없다”라며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토론은 서로 다른 생각 받아들이는 과정

아이들에게 토론은 익숙하지 않은, 부담스러운 활동인 경우가 많다. 반대 의견을 냈다가 친구에게 공격받았던 쓴 경험도 적지 않다. 이현옥 교사는 건강한 토론과 말싸움의 차이를 이렇게 구분한다. “말싸움이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내세우는 것이라면, 토론은 대안이 필요하다. 다른 의견을 내놓고 끝이 아니라 그 안에서 최선의 대안을 찾아가는 것까지가 토론의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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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그가 즐겨 활용하는 방식은 ‘배심원 토론’이다. 찬반으로만 나누면 토론 중 공격당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찬성도 반대도 선택하지 않는 배심원 역할의 학생을 따로 둔다. 찬반 양쪽이 의견을 주고받은 뒤, 배심원들이 허점이나 대안을 제시하며 토론을 이끌어간다. 이현옥 교사는 “이런 토론을 경험한 아이들은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재미있다고 느껴 토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라고 말한다.

토론에서 말솜씨보다 중요한 것은 태도다. 이현옥 교사가 첫손에 꼽는 것은 경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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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강박과, 발표가 성적에 반영된다는 생각에 친구의 발표를 듣기보다 자신이 말할 내용을 고민하느라 바쁜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듣지 않으면 상대의 의견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고 자기 주장도 논리적으로 할 수 없다. 토론은 결국 꼬리물기이다.”

감정 조절 역시 토론의 중요한 기술이다. 자신의 주장이 반박당하면 공격당했다고 느끼기 쉽고, 어른들끼리 목소리를 높이는 대화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구나’라고 학습하기도 한다. 이현옥 교사는 이럴 때 ‘쿠션어’를 사용해보기를 권한다. 상대의 주장을 듣고 나서 “얘기한 의견은 이런 지점에서 매우 타당하다. 그런데 이런 부분도 생각해볼 만하다”라는 식으로 상대 의견을 존중하며 부드럽게 표현해보는 것이다. 경어 사용도 토론 중 감정이 격해지는 것을 막는 데 효과적이다.

아이들에게 적합한 토론 주제를 고르는 기준도 있다. 이현옥 교사는 나이대에 맞고 일상생활과 연결된 주제를 권한다. 찬반 토론은 초등 고학년 이후에 적합하며, 찬성과 반대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정해진 답이 없는 주제를 선택하는 편이 좋다. 찬반이 균형을 이루는 주제일 때 다양한 견해를 접하며 생각을 확장할 수 있다.

가정에서도 외식 메뉴,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 등을 토론 주제로 삼아 스스로 결정하고 대안을 찾는 과정을 경험해보면 아이의 자기주도성도 함께 향상된다. 이현옥 교사 제공
가정에서도 외식 메뉴,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 등을 토론 주제로 삼아 스스로 결정하고 대안을 찾는 과정을 경험해보면 아이의 자기주도성도 함께 향상된다. 이현옥 교사 제공

가정에선 일상의 질문이 토론의 출발점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아이의 토론력을 키울 수 있다. 주제가 거창할 필요도 없다. “이번 주말에 무엇을 하면 좋을까” 같은 질문부터 시작해도 충분하다. 엄마는 전시회에 가고 싶고 아이는 만화카페에 가고 싶다면 거기서부터 토론을 시작할 수 있다. 왜 만화카페에 가고 싶은지 이유를 물어보고, 전시회보다 만화카페가 도움이 되는 점을 서로 설명해봐도 좋다. 외식 메뉴,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 등 토론 주제로 삼을 것이 주변에 넘친다. 스스로 결정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이의 자기주도성도 함께 향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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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옥 교사는 크게 세 가지 방식의 토론 활동을 제안한다. 첫째는 생활 토론이다. 아이의 삶과 직결된 주제를 다루는 방식으로, 아이가 실제로 결정권을 갖고 싶어 하는 주제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둘째는 책을 토대로 하는 독서 토론이다. 책을 끝까지 다 읽지 않아도 괜찮다. 짧은 글이라도 읽은 것을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게 하고, 생활과 연결해서 생각해볼 문제를 질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셋째는 찬반 토론이다. 시험은 꼭 필요한가,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팔로어 수가 인간관계의 척도인가처럼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면서 다양한 견해를 접할 수 있는 주제면 좋다.

이현옥 교사는 토론력의 두 가지 기본기로 문해력과 정보 분별력을 꼽는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을 읽는 능력이 아니라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며 읽는 것이다. 이현옥 교사는 “한 줄 한 줄 이해 안 가는 부분이 없도록 읽어야 한다”라며 “짧은 글이라도 읽은 것을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게 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한다. 정보 분별력도 중요하다. 아이들은 쏟아지는 정보의 진위를 의심해본 경험 자체가 드물다. 정보를 찾을 때 출처를 확인하고, 반대 입장에서 검토하고, AI를 활용해 검증하는 과정을 함께 연습하는 것이 좋다.

이현옥 교사는 토론력의 기본기는 글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는 문해력과 정보분별력이라고 말한다. 쏟아지는 정보의 진위를 의심해보고 출처를 확인하고 반대 입장에서 검토하고 AI를 활용해 검증하는 연습을 함께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한다. 본인 제공
이현옥 교사는 토론력의 기본기는 글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는 문해력과 정보분별력이라고 말한다. 쏟아지는 정보의 진위를 의심해보고 출처를 확인하고 반대 입장에서 검토하고 AI를 활용해 검증하는 연습을 함께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한다. 본인 제공

구체적인 칭찬으로 토론 마무리해야

토론에 처음 임하는 아이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내 의견을 말해도 괜찮다’는 경험이다. 이현옥 교사는 “누군가 내 얘기를 경청해서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준다면 또 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야 토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조언한다. 그래서 토론을 할 때 어른의 입장에서 이끌려고 하거나 권위를 내세우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이상적인 답을 미리 정해두거나 말을 중간에 자르는 행동은 아이에게 ‘내 말은 들을 가치가 없다’는 신호로 읽힌다. 모든 의견이 동등하게 다뤄진다는 것을 보여줄 때 비로소 아이는 안심하고 자기 생각을 꺼낼 수 있다.

자기 표현이 약하고 내성적인 아이가 토론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보호자도 많다. 이현옥 교사는 오히려 내성적인 아이가 토론에 유리한 면이 있다고 말한다.

“내성적인 아이는 자기 주장을 내세우기 전 많은 생각을 한다. 그 과정에서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잘 정리한다. 토론을 잘하는 아이들이 갖춰야 할 경청과 자기점검을 스스로 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자신감인데,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평소 보호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이가 의견을 이야기했을 때 맞장구 쳐주고 바로 반영해주는 상황을 자주 만들면 좋다. 내성적이고 분석적인 강점에 자신감이라는 시너지가 더해질 때, 아이는 토론을 진정으로 즐기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토론의 마무리도 시작만큼 중요하다. 이현옥 교사는 칭찬으로 마무리를 열라고 조언한다. “토론을 하느라 애쓴 아이들에게 칭찬부터 건네야 한다. 주장을 두괄식으로 설명해줘서 좋았다, 말을 또박또박했다, 이야기를 귀 기울여 잘 들었다는 식으로 아주 작은 모습이라도 찾아서 얘기해주자. 그래야 아이들이 토론에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후에는 각자 주력했던 점, 새로 알게 된 점 등을 편하게 이야기 나누면 된다.

대단한 결론을 낼 필요는 없다. 아이가 생각을 확장하고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는 유연성을 조금씩 키워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토론은 승패를 가르는 기술이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면서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조금씩 쌓일 때, 아이는 자기 언어로 사고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

박은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