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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소송 헌법소원 선고 전날인 28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청구인 중 한명인 한제아양이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김영원 기자
기후소송 헌법소원 선고 전날인 28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청구인 중 한명인 한제아양이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김영원 기자

정부가 미래세대를 위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정하지 않은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2030년까지만 감축목표를 규정한 현행법을, 그 이후의 감축목표도 정해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보호하도록 개정하라는 것이다. 정부는 헌재의 판단을 무겁게 받아들여 미래세대에 기후위기를 떠넘기지 않도록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

헌재는 29일 초등학생 한제아(12)양 등 청소년들과 시민단체가 제기한 ‘기후소송’ 헌법소원 사건에서 탄소중립기본법의 일부 조항을 개정하라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해당 조항은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배출량 기준 40%만큼 감축하겠다고 돼 있지만, 2031년부터는 아무런 목표치가 없다.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협정)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도록 돼 있다. 청구인들은 이런 식으로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2도 수준으로 억제하는 파리협정을 지킬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연도별 목표치를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된다고 버텼다. 헌재는 정부의 이런 태도가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최소한의 조처를 해야 한다는 ‘과소보호금지’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봤다. 특히 기후 위기는 미래세대에 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목표치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헌재 결정은 앞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2021년 내린 판결과 같은 취지다. 독일 헌재는 파리협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30년 이후 더 짧은 시간 안에 급격하게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독일 정부는 곧바로 후속 조처에 나섰다. 감축목표치를 상향 조정하고 탄소중립 시기도 2050년에서 2045년으로 앞당겼다. 탄소감축 기술 개발을 위해 50억유로(약 7조4천억원)를 투자했다. 우리 정부가 본받아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 때 수립한 탄소중립 이행 계획을 흔들려고 애쓴다. 온실가스 감축목표에서 산업계의 부담을 줄이고 그 축소분은 원자력발전 확대 등으로 대체한다고 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산업 부문의 감축목표치를 축소하고 원전을 늘리는 게 탄소중립인가. 원전 확대는 미래세대에 또 다른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다. 이번 헌법소원을 청구한 한제아양은 소송에 참여하는 동안 ‘권리는 나에게 있다’고 당당하게 주장했다. 정부는 이 말을 깊이 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