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 가운데 손솔 진보당 의원이 준비한 ‘수사·기소 분리 원칙에 따른 형사소송법 개정 방향 검토 및 의견’ 문서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지난 15일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 가운데 손솔 진보당 의원이 준비한 ‘수사·기소 분리 원칙에 따른 형사소송법 개정 방향 검토 및 의견’ 문서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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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소 분리의 대원칙 확고히 견지해야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의 핵심은 ‘검사는 더 이상 수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확립하고, ‘경찰 수사의 적정한 통제 방안’을 제대로 설계하는 것이다. 최근 논의 과정에서 ‘피해자 보호’의 가치가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를 검찰의 보완수사권 유지에 연동하려는 시도는 억지스럽고 우려스럽다.

검찰권 남용의 폐해가 누적되면서 검찰 수사권은 축소당하는 개혁의 흐름 속에 있다. 이제 검찰은 수사권의 한 자락이라도 유지하려 애쓴다. 정치, 언론, 법조, 시민사회 등 모든 영향력을 동원하여 전방위적인 기득권 사수에 애쓰고 있다. 왜 검찰은 그토록 보완수사권에 집착하는가. 개별 사건의 수사 효율성의 차원이 아니라, 조직론적 차원에서 접근해야만 이해관계의 실체가 보인다.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유지되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보완수사권은 무늬만 보완일 뿐 실질적인 ‘수사권’이다. 이를 쥔 검찰은 공소청에 머물지 않고 ‘공소+수사청’이 된다. 수천명의 검찰수사관과 특수활동비도 지킬 수 있다. 1차 수사를 못 하더라도 우회적 방법으로 원하는 수사에 개입할 수 있다. 보완수사의 범위가 ‘사건 동일성 범위 내’에 한정된다지만, 동일성 여부를 판단하는 주체는 검사 자신이다. 결국 검사가 정치적, 조직적 이해관계에 따라 수사에 개입할 선별적 재량권을 확보하는 셈이다. 나아가 ‘보완당하는 경찰은 열등하고, 보완하는 검찰은 우월하다’는 인식을 스며들게 하고, 검찰 전관예우의 토양이 될 수 있다. 정치 여건이 바뀌면 ‘보완’이라는 두 글자도 지우고, 이전처럼 수사·공소 통합기관으로 손쉽게 복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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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회 입법 과정에서도 검사들은 직간접으로 의중을 전달하고, 검찰 청부 입법과 유사한 법안과 논리의 생성에 관여하고 있다. 지난 수십년 동안 검찰은 수사권 조정에 찬성하거나 협조한 적이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은 검찰개혁이 왜 온 국민적 과제가 되었는가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다. 검찰 권력의 횡포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뼈저리게 되새기면서 개혁의 틀을 짜나가야 한다. 검찰과 기득세력의 완강한 저항을 물리치고 새로운 형사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조직과 절차를 속도감 있게 정비해야 한다.

서영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검사 권력 오남용 사례로 본 형사소송법 개정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영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검사 권력 오남용 사례로 본 형사소송법 개정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수사 통제방안의 충실한 설계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는 시대에 검사는 우월적인 지휘·감독관이라는 권위주의적 체질·관행과 결별해야 한다. 대신 수사기관과 동등하게 소통하는 수평적인 ‘협력자이자 지원자’로 위상을 변모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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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수사권이 없어도 검사에게는 강력한 법적 통제 권한이 있다. 현재까지의 수사 실무에서 영장 발부 여부는 수사의 중대한 변곡점이었다. 압수수색이나 구속을 위해 경찰이 영장을 ‘신청’하면 검사가 법원에 ‘청구’할지를 결정한다. 주요 수사는 검사의 영장 청구라는 심사 관문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검사는 경찰 수사의 무리한 점이나 적법 절차 위반 여부를 살펴보고, 수사의 문제점을 점검하여 영장 신청을 반려하거나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수사의 적정성을 기할 수 있다.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권은 가벼운 권한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검찰이 직접 수사 수단에 주안점을 두었기에, 경찰에 대한 보완수사 요구를 타성적으로 처리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앞으로 보완수사 요구의 방법과 내용을 잘 개발해간다면, 과거의 직접 수사 방식보다 훨씬 효율적이면서도 인권친화적인 사법적 통제를 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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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수사 주체가 됨에 따라 경찰 수사에 대한 통제 수단도 세밀하게 짜야 한다.

먼저 ‘기관 상피 제도’(상호 교차 수사)를 제도화해야 한다. 수사기관의 제 식구 감싸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경찰관의 범죄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에서 수사하고, 중수청 수사관의 범죄는 경찰이 수사하도록 교차 수사 체계를 정립해야 한다.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를 적정하게 이행하도록 경찰 내부의 지휘·감독 체계를 강화하고, 정당한 보완수사 요구를 거듭 불이행하는 수사관이나 부서가 있을 경우 해당 사건을 타 수사기관으로 이첩하여 처리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해야 한다.

수사권 남용에 대한 효과적 통제수단은 ‘수사인권보호관’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수사인권보호관은 수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의자나 참고인의 고충, 민원을 실시간으로 조사하여 시정하고, 수사 방향의 수정이나 수사관 교체까지 조기에 이뤄내도록 한다. 모든 수사 과정을 영상 녹화하도록 하고, 수사 기록을 누락하거나 폐기할 수 없도록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을 완비해야 한다. 사건 관계인의 수사 기록 열람권을 강화하여 수사 과정의 투명성을 높여가야 한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모습. 연합뉴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모습. 연합뉴스

피해자 보호의 충실화

이번 논의 과정에서 피해자 보호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고무적이다. 형사소송법의 전통적인 기본 이념인 실체 진실주의, 적법 절차주의 및 기본적 인권 보장에 더해, 이제는 ‘피해자 보호’에 비중을 둘 때가 되었다. 다만 피해자 보호라는 대의가 검찰의 기득권을 확보하기 위한 빌미로 이용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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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보호는 수사와 재판 절차 전반에서 구체적인 권리로써 접근해야 한다. 피해자는 범죄의 공포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안전할 권리’를 가진다. 피해자가 범죄를 신고하기만 하면 그때부터는 국가가 피해자 신변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피해자는 수사 과정에서 인격적으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수사관의 모욕적이거나 폄하적인 언행으로 위축되거나 사법 절차 속에서 2차 가해를 받지 않아야 한다. 문제 있다고 느낄 때는 ‘수사인권보호관’에게 즉각 신고하여 시정을 촉구하는 구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수사관들의 피해자 감수성을 함양하고 수사 매뉴얼도 전면 정비해야 한다.

피해자는 수사 과정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수사 진행 상황의 실시간 안내, 향후 진행될 사법 절차의 확인, 최종 수사 결과의 상세한 통보를 피해자는 당연한 권리로서 누려야 한다. 피해자의 정보 제공 요청에 대해 수사기관은 비공개 관행을 고집할 게 아니라, 제대로 협조해야 마땅하다. 나아가 피해자는 형사 절차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피해자 진술권을 편안하게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수사관은 피해자 감수성을 갖고, 피해자의 진술을 경청해야 한다. 피해자를 수사의 객체, 증거수집을 위한 도구로 취급하던 전근대적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울러 피해자가 조력자들로부터 ‘조력받을 권리’의 내실화가 시급하다. 신뢰관계인의 상담과 조력, 조사받을 때의 동석을 제도화하고, 피해자 변호인 조력 제도를 실질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절차 진행에 불복하는 피해자를 위해 ‘이의제기권’의 신설이 필요하다. 수사 절차에서 미흡하거나 왜곡·무시된 부분이 있을 때 피해자가 수사 단계별로 정당하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하며, 변호인이 밀착하여 피해자를 조력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피해자는 형사사법 전반에 걸쳐 ‘준주체’로서의 지위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핵심적인 권리들은 경찰의 초동 수사 단계부터 모든 절차에서 충실히 보장되어야 한다. 검사의 보완수사권이 작동해야만 피해자가 비로소 보호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은 피해자 권리의 담론에 거의 등장한 적이 없다. 경찰은 경찰대로, 검찰은 검찰대로 자신의 직무 분야에서 피해자 보호를 위한 개선을 해가면 된다.

신속하고 확실한 개혁이 되어야

2020년 수사권 조정 이후 제도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서는 대대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윤석열 검찰정권은 검찰 정치의 확대와 검사 수사권의 확대에만 골몰했을 뿐, 수사의 주체가 된 경찰 수사 역량의 발전은 철저히 외면했다. 최근 지적되고 있는 경찰 수사의 난맥상 이면에는 검찰정권의 냉대와 무시도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수사·기소의 완전한 분리와 검찰개혁은 현 정부와 여당의 핵심적 약속이다. 확실하고 속도감 있게 개혁의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법안 통과 즉시 국가 수사 역량의 공백을 막기 위해 중수청 조직을 실효성 있게 출범시키고 수사 인프라를 신속히 재배치해야 한다. 새로운 수사 제도가 현장에서 안착할 수 있도록 조직, 예산, 인력 배치, 수사관 훈련 등을 국가적인 정책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법률 개정은 새로운 수사·재판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첫 단계일 뿐이다.

한인섭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법학). ‘100년의 헌법’, ‘계엄과 내란을 넘어’, ‘가인 김병로’, ‘5·18재판과 사회정의’, ‘배심제와 시민의 사법참여’, ‘권위주의 형사법을 넘어서’ 등을 썼다. 한국 현대사와 민주화에 대한 심층 대담집으로 ‘이 땅에 정의를: 함세웅 신부의 시대 증언’,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 민주화운동 40년 김정남의 진실 역정’, ‘인권변론 한 시대’ 등이 있다. 시민이 주권자로 만들어 가는 헌법과 나라 이야기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