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준 |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인공지능과 주식 시장을 바라보며 사회정책 전문가들은 언제쯤 이재명 정부의 사회 비전과 관련 정책들이 제시될지 조바심을 내며 기다리고 있었다. 반전은 부동산이었다. 불가능해 보였던 주식 시장 공약을 조기에 달성한 대통령은 진보정권의 무덤인 부동산 시장으로 직진했다. 주식 시장을 뜨겁게, 부동산 시장은 차갑게. 이제 시작 단계이지만, 국민들의 기대나 전문가들의 전망이 이전 정권과는 사뭇 다르다.
이쯤 되니 고용, 교육, 소득 보장, 돌봄과 같은 사회정책 이슈들 역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급격한 인구변화 속에 인공지능 충격까지 확대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들은 시급한 개혁 과제가 틀림없다. 다만, 사회정책 이슈는 주식 시장이나 부동산 시장만큼 현시성이 높은 과제가 아닐 수 있지만, 개혁의 난이도는 매우 높다.
이들 정책은 일방적인 확대를 통해 정치인들이 자신의 공적을 내세울 수 있는 개혁 시기를 지났다. 거의 대부분의 이슈들은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내는 정교함이 필요하다. 때로는 인기가 없는 결정으로 비난을 감수하거나 정교하게 비난을 회피하는 정치를 해야 하는 단계이다. 이 정책들의 뒤에는 정책들과 관계된 이해관계자들과 제도의 수혜자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득과 합의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 개혁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정책결정가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전 정부에서도 현 정부에서도 연금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을 주요 개혁 과제로 주창하고 있다. 두 정부 모두 미래세대와 국가의 성장이 달린 문제라고 한다. 우리 아이들이 받는 교육의 현실, 노동시장 이중화와 다가올 인공지능의 충격, 노후의 불안과 재정 이슈 등을 고려하면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전문가들과 시민들은 답답한 마음으로 이 개혁 과제들을 바라보고 있다. 인공지능과 기본사회라는 말은 떠돌고 있지만, 현 정부가 추구하는 사회의 비전과 미래 시민들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비전이 없는 구조개혁이 도달할 경로는 예측 가능하다. 공적 연금은 보장성 강화라는 생색과 함께 고령화라는 우려로 애매한 ‘70%’ 선정 기준을 문제 삼으며 기초연금 재정을 삭감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될 것이다. 기초연금 선정 기준인 단독 가구 ‘247만원’이 소득과 재산을 합한 환산액이라는 기초지식조차 없이 개혁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다.
교육개혁과 노동개혁도 크게 예상을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약자들과 소외 지역에 대한 안전망과 역량을 강화하는 정책을 살짝 곁들이지만, 변화하는 시대의 보편적이고 대담한 정합성보다는 이해관계자들의 늪을 적당히 빠져나가는 수준으로 끝날 우려가 있다.
하지만 답답한 마음의 또 다른 절반은 청와대 외부에 있다. 나에게 혹은 정부 정책에 답답해하는 이들에게 그러면 대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고용안정성은 건드리면 안 되고, 실업급여가 ‘시럽급여’가 되면 안 되며, 기초연금도 변화할 때가 아니다. 고질적인 교육 문제들도 추상적으로는 공감하지만, 작은 대안도 실현이 어려울 만큼 이해관계자들의 반대가 첩첩산중이다.
지금까지의 많은 사회정책들은 시대정신이 담긴 사회운동의 결과였다. 하지만 변화하는 시대와 정합성이 맞지 않는다면 새로운 개혁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제도의 비전과 목적은 사라지고, 수단이었던 제도를 지키려는 목소리만 남은 현실을 종종 목도한다.
그렇기에 청와대는 단기 개혁에 매몰되기보다 미래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거기에 각 제도가 어떻게 사람을 위해 새롭게 배치될 것인지를 그려야 한다. 예를 들어, 노동유연성은 구체적이고 충분한 안정성이 함께 가야 타협이 될 수도 있다. 연금 급여가 늘지 않아도 노후의 의료와 돌봄 비용이 절감된다면 연금 급여 증가 효과가 있다. 부자에게 복지를 주어도 누진적 조세가 강화되면 복지는 오히려 연대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사회정책 전문가들 역시 이제 대안을 가지고 비판해야 하는 시기임을 기억해야 한다. 인간형 로봇 ‘아틀라스’가 올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오래되었다. 우리의 학계와 노조는 이에 대해 얼마나 축적되고 정교화된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지금의 제도를 지키는 것만이 답이 될 수 없다. 대안에 소홀한 것은 정치와 관료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성찰해야 할 때이다. 함께 대안을 만드는 일에 천천히 하지만 서두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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