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미란 | 디자이너·아트 워크샵 리더
선사시대 상징체계를 다룬 책, ‘여신의 언어’를 흥미롭게 읽다가 문득 오래 알던 한 작가가 보고 싶었다. 책에 실린 토용(흙 인형) 유물처럼 천진하고, 가슴 따뜻해지는 박미화 작가의 흙 작업이었다. 강화 작업실로 연락을 넣고 기다리는데 마음은 묘하게 경건함으로 기운다. 메마른 길을 오래 달려 도착인가 싶을 즈음 오솔길이 펼쳐진다. 창공으로 몸을 힘껏 밀어 올린 소나무 아래 차를 세운다. 마당의 나무 지모상이 혹한으로 언 땅에 숨죽인 생명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다. 화살나무 울타리를 따라 작업실로 들어선다.
그의 전시들은 종종 숙연함을 안겼다. 납작하게 이마를 대고 엎드린 소녀, 툭 던져진 묘비, 작고 가련한 존재들과 뒹구는 토르소. 작가는 어려서 불교와 가톨릭 교육을 거치며 종교적 태도를 체득했고, 대학 연극반 경험은 공간을 무대처럼 구성하는 감각으로 이어졌다.
작업실은 가마실과 작업 공간이 느슨하게 구획돼 있고, 벽에는 생태, 기후, 난민 관련 스크랩들이 곳곳에 붙어 있다. 선반과 작업대에는 붉은 테라코타와 건조 중인 작품들이 무대에 오를 배우들처럼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흙으로 빚은 문자도였다. 다가올 전시의 주제어가 식물 줄기와 천사들로 장식돼 있다. 철망으로 짠 작은 제단 위에 놓인 화살나무들과 어린 양은 어쩔 수 없이 번제의 희생을 떠올리게 했다.
작가는 아침마다 흙 앞에 앉아 가만 떠오르는 흔적들을 기다린다. 손으로 대강 그린 뒤 나무칼로 걷어내며 의도를 최소화한다. 아기를 받아내듯, 흙 속에서 형상을 건져 올리는 것일까. 흙이 마르면 화장토(흙물)를 입혀 굽는데, 빛깔이 본래 흙빛처럼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되풀이한다. 이 오래고 지루한 기다림을 그는 “참는 연습”이라 말한다. 흙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달래고 기다려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따뜻한 것이 제일이에요. 차가운 점토가 뜨거운 불을 지나 따뜻한 사람이 되어 나와요.”
그는 자신을 ‘참여적 리얼리스트’라 소개한다. 세상을 외면하지 않되, 약간 비켜선 은유의 자세를 취해 왔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은 그를 세상 쪽으로 던져버렸다.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천과 나무에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기고, 호명했다. 문명의 야만과 폭력에 지워진 죽음들을 불러 모아 위로하고 진혼한다.
코로나를 겪으며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만을 성찰하게 되었다. 흙은 구워지면 소멸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죄의식으로 다가왔다. 완성한 작품을 불에 굽지 않는 일이 점차 잦아졌다. 안타까운 영상이 있다. 붉은 고무 다라이에 두상 하나가 물에 잠긴다. 턱과 볼에 물이 스미기 시작하자 두상은 쩍 갈라지고 이내 무너져 내린다. 예술이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애도보다 탐심이 앞섰다. “그러지 말고 제게 버리세요” 간청해보지만, 작가는 단호할 것이다. 그는 무엇을 더 만들 것인가 보다, 언제 멈출 것인가를 고민한다. “작가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지구 위에 더 적은 자취를 남기려 한다, 더 레서(The lesser)!” 예술의 영생과 사라짐 사이에서, 그의 선택은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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