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정 |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한 배우의 소년범 이력이 논란이다. 그 배우가 출연했던 장기 미제 사건 형사 드라마가 떠오른다. 사건을 해결하려고 뛰어다니는 경찰에 감동했었다. 나는 아동·청소년 때 폭력을 겪었던 이들을 생각한다. 그들도 자기 꿈을 이루고, 멋진 배우가 되고, 종횡무진하고, 과거 경험이 알려졌을 때 수많은 이들이 지지하고 옹호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열기가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의 자리가 더 넓어지는 데 쓰이면 얼마나 좋을까.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를 위해 필요한 정책을 논의해본다.
먼저 소년재판은 피해자가 참여하기 어렵다. 현행 소년법은 소년 보호 절차의 비공개와 관련 정보 비밀 유지를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피해자라도 가해 소년의 처분 결과나 재판 정보를 알기 어렵다. 소년범 사건이 아닌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가 재판 자료를 좀 더 잘 열람·등사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다. 피해자로서 의견을 내도록 하려는 장치다. 소년 가해자에 의한 성폭력 사건은 이렇게 할 필요가 덜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피해자 권리는 소년재판에서도 필요하다. 소년재판에서 해당 사건의 심리 개시 여부, 심리의 기일·장소, 심리 결과 등을 신청자에게 통지하고 피해자가 사건 기록을 열람·등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소년재판은 그나마 사건이 수사기관에 알려졌을 때 열린다. 그러나 대다수 청소년 피해자는 신고 자체를 망설인다. 과거 아동·청소년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할 때 ‘범죄수사규칙’ 2021년 1월 개정편은 보호자에게 무조건 통지하도록 했다. 영미권 국가가 18살 미만 청소년에게도 스스로 결정을 내릴 역량을 인정하여 의료·형사 절차에서 선택권을 폭넓게 보장한 것과 대비된다. 이런 수사규칙은 청소년을 두텁게 지원하기보다는 폭력 피해를 신고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서 올해 10월31일 경찰청은 수사규칙을 개정했다. 미성년자가 경찰에 신고할 때 법정대리인에게 신고 사실을 통보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 조항이 생겼다. 양육자의 정당한 보호를 받는 청소년이야 성폭력 피해 뒤 도움과 지지를 받겠지만, 도리어 피해자를 탓하는 양육자들도 있다. 나아가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성폭력이 있던 상태에서 또 다른 피해를 보거나 탈가정 상태에서 성폭력을 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수사규칙 개정은 전국 청소년쉼터에서 법정대리인에게 연락하던 관행을 바꾸게 할 것이다. 이는 청소년에게도 널리 알려져야 한다. 성폭력 피해 증거 채취 역시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할 수 있도록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이나 의료법도 앞으로 개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법정대리인에 의한 속박 없이 폭력을 고발할 수 있는 것은 청소년 피해자를 위한 안전과 권리보장의 시작이다.
앞서 윤석열 정부 때 여성가족부가 장애아동·청소년 성인권 교육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이 예산은 2011년 청각장애인 학교이자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발생한 성폭력이 ‘도가니’ 영화를 통해 공론화되면서 2013년에 생긴 것이다. 교육부의 폭력 예방 교육은 비장애 청소년 위주이고, 보건복지부에서 진행하는 발달장애인 성교육은 시청각, 지체 등 다른 장애를 지닌 청소년은 참여하기가 어려운데 중복 사업이라는 게 예산 삭감의 이유였다. 그래서 지난해엔 경기, 충남, 대전, 대구, 제주에서 지역 예산으로 757회의 교육에 2442명 장애 청소년이 성인권 교육에 참여했다. 이는 성평등가족부 예산으로 복원되어야 한다. 2023년 기준으로 전국 1만7309명의 장애 청소년이 참여할 수 있었던 예산이 필요하고, 일회성 교육에 그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지난 2일 밤 국회에서는 친족에 의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법안이 드디어 통과됐다.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은 오랫동안 연령과 무관하게 친족성폭력 전체 공소시효 폐지를 요구했지만,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이 먼저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공포 즉시 시행되고, 19살 미만 피해자가 겪은 친족성폭력은 향후 공소시효 적용을 받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최소한이다. 가족 내 성폭력 피해자가 입을 열어 피해를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 또 피해자의 주거, 생계, 교육, 돌봄, 건강, 학업과 진로 대책이 실현되면 좋겠다.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들이 과거에 속박되지 않고 사는가, 주변인에게 충분히 지지받고 있는가. 그것이 지금 필요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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