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훈 | 전국부장
아버지는 실향민이다. 9남매 중 장남이다. 평양사범학교 재학 중에 한국전쟁이 터졌다. 전쟁이 난 줄도 몰랐다고 한다. 학교에 갇힌 채 군사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야밤에 도망쳐 집에 갔더니 할머니는 금덩이를 손에 쥐여주며 무조건 남쪽으로 가라고 했단다. 이렇게 아버지는 이산가족이 됐다.
2000년 여름은 통일 열기로 뜨거웠다. 6·15 남북공동선언에 합의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평양 순안공항에서 뜨겁게 포옹했다. 서울에 도착한 김 대통령 부부가 승용차를 타고 청와대를 향하는 거리에는 열광하는 시민들로 가득했다. 우리 국민은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듯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해 8월에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기도 했다.
그해 9월, ‘한겨레’ 신문에는 북한으로 송환되는 비전향 장기수 63명의 명단과 주소가 실렸다. 그중 어떤 분의 주소에 시선이 박혔다. ‘평양시 동구 선교리 34번지’. 아버지의 고향집은 선교리 32번지다. 같은 동네이고, 한 집 건너 옆집으로 추정된다. 마침 나는 당시 사회부에서 이산가족 상봉과 장기수 송환 등을 취재했다. 송환 전날, 시민단체가 마련한 북송 장기수 오찬 자리도 취재했다. 그리고 ‘선교리 34번지’ 장기수에게 다가가 아버지 부모 형제의 이름과 평양 주소가 적힌 쪽지를 건네며 생사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2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소식은 모른다.
45년 동안 0.75평 독방에 수감돼 세계 최장기 복역수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고 김선명씨도 당시 북한으로 송환됐다. 그는 수감 생활 내내 전향을 강요받으며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온몸을 바늘로 찔러대는 고문에 시달렸다. 가혹 행위를 견디다 못해 미쳐버리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동료 장기수도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존엄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도 엿보인다. ‘20년 장기수’ 신영복 선생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작업장에서 망치질하다 다쳤을 때 “손가락의 아픔보다는 서툰 망치질의 부끄러움이 더 크다”고 했다. 42년4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안학섭(95)씨는 최근 한겨레 전국부 이준희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나를 고문했던 사람들이 밉지 않았다”며 “나는 나의 양심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고문까지 감당하는데 그들은 아주 작은 이익을 위해 남을 고문까지 한다는 게 오히려 측은했다”고 말했다.
안학섭씨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이었다. 그는 전쟁 중이던 1953년 4월 붙잡힌 전쟁 포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그에게 간첩이라는 올가미를 씌웠다. 그는 수감 생활 내내 모진 고문을 받으며 끊임없이 전향을 강요당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전향하지 않았다.
안씨를 포함한 비전향 장기수 6명은 2000년 9월 북한 송환에 응하지 않았다. 이들은 “제국주의 미군이 여전히 한반도에 남아 있기 때문에 반미·조국통일 투쟁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일제와 미군정을 겪은 그들의 시각에선 미군은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침략군이다.
망백(望百·91살)을 넘어 상수(上壽·100살)를 바라보는 안씨는 건강이 좋지 않다. 그는 “죽어서도 미국 식민지에 묻히고 싶지 않다”며 “자주 국가인 내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정부가 제네바 협약에 따라 전쟁 포로인 자신을 북으로 송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864년 첫 협약 체결 이후 1949년 4개 협약으로 완성된 제네바 협약에는 “질병이나 장애로 전투 불가능한 경우 즉시 본국으로 송환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안씨의 송환을 두고 일각에선 남북 관계 악화를 걱정한다. 북한에 억류된 국군 포로나 납북자와 교환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협상과 흥정이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우리가 인도주의라는 대의로 먼저 다가간다면 북한도 분명 변화의 조짐을 보일 것이다. 실제 우리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면 북한도 호응하곤 했다. 이재명 정부 들어 우리 군이 대북방송 확성기를 철거하자, 북한도 순식간에 대남방송을 중단했다.
비전향 장기수 송환을 단행한 김대중 정부 당시 남북 관계는 큰 진전을 이뤘다. 지난 2일은 비전향 장기수 북한 송환이 이뤄진 지 딱 25년이 되는 날이다. 어느새 사반세기가 흘렀다. 장기수 송환, 다시 보고 싶다.








![4·3 기록이 운명…남매가 학살 현장 다랑쉬굴에 바친 책들 [.txt]](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57/154/imgdb/child/2026/0403/53_17751749810797_20260402503980.webp)


















![어른들의 책임을 요구한다 [세상읽기]](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57/154/imgdb/child/2026/0406/53_17754722837441_20260406503189.webp)







![<font color="#FF4000">[단독]</font> 윤석열 내란재판 지연 우려, 특검법 신속 선고 미적용](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408/53_17756300447058_20260408502768.webp)




![박상용 검사와 ‘전화 변론’ <font color="#00b8b1">[유레카]</font>](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408/53_17756553645694_20260408504077.web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