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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정부의 과제는 민주주의의 지속력을 증명하는 일이 될 것이다. 실패한다면 스트롱맨의 시대에 그저 막간을 채운 정부에 머물고 말 것이다.”

영국의 한 저널리스트가 쓴 ‘스트롱맨의 시대’(한국판 제목 ‘더 스트롱맨’)에 나오는 대목이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이 몰고 온 정치적 파장을 지켜보면서 세계 곳곳에서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득세하는 상황을 짚은 책이다. 2024년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다시 승리함으로써 그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스트롱맨의 시대라는 구분은 트럼프라는 화려한 주역을 통해 얼핏 역사적 지위를 획득한 것처럼 보인다.

스트롱맨의 대두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가 존중받지 못하고, 외려 공격받고 있는 세태를 보여준다. 스트롱맨은 제도와 규범이 아니라 본능과 취향에 따라 통치한다. 거친 화법, 군사 퍼레이드에 대한 갈망, 상대방의 이익에 대한 무관심, 언론을 장악하려는 태도 등을 공유한다. 인종과 종교, 성적 지향에 대한 편견을 지양하는 ‘정치적 올바름’을 경멸한다. 그런데도 선거 과정에서 대중의 지지를 받는 괴력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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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2차대전 이후 60년 가까이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즐겼다. 민주주의의 초점이 변화하고, 의제 또한 분화했지만, 권위주의적 체제에서 벗어나려는 방향만큼은 분명했다. 그러나 2005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이때부터 정치적, 시민적 자유가 커지는 나라보다 줄어드는 나라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국제 인권단체 ‘프리덤 하우스’의 2023년 보고서를 보면, 세계의 자유지수는 18년 연속 떨어졌다. 언론의 자유, 사법부의 독립 같은 민주주의의 장벽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의 등장과 복귀는 이처럼 이미 견고해진 세계적 변화를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다.

트럼프는 더욱 힘이 세졌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충성파들로 내각을 채우고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역사상 가장 거친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국제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는 경고했다. 트럼프의 등장을 미국의 일탈로 치부했던 이들에겐 혹독한 미래다. 책을 읽다 보면, 그들이 그런 오판에 빠진 이유가 나온다. 우선 민주주의의 재생력을 과신했다. 거기에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윤리적 우월감이 가세했다. 결국 자신이 바라는 대로 현상을 바라보는 ‘소망적 사고’에 갇히고 말았다. 막간극이 끝나고, 스트롱맨은 슈퍼맨이 됐다.

유강문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상임이사·논설위원 m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