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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 백악관을 예방한 조란 맘다니 뉴욕 시장 당선인과 만난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자신의 종전안을 우크라이나가 수용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 백악관을 예방한 조란 맘다니 뉴욕 시장 당선인과 만난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자신의 종전안을 우크라이나가 수용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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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이 개전 이후 최대 갈림길에 놓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토와 안전보장을 교환하는 종전안을 우크라이나에게 사실상 최후통첩했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존엄을 유지하느냐 동맹을 잃느냐 기로에 섰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종전과 관련한 자신의 ‘28개항 트럼프 계획’을 오는 27일까지 수용하라고 통보했다. 이날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이다. 미국인이 가족과 모이는 명절까지 자신의 종전안을 수용하라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날 폭스뉴스 라디오와 회견에서 “많은 마감일이 있으나, 일이 잘되면, 마감일은 연장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목요일(27일)이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적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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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이날 조란 맘다니 뉴욕 시장 당선자와 만난 자리에서 젤렌스키가 자신의 종전안을 “좋아해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그는 좋아해야만 할 것이고, 만약 그가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계속 싸워야만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어떤 지점에서 그는 무언가를 수용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는 자신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좋은 관계로 전쟁을 곧 끝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두 사람이 탱고춤을 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가오는 겨울, 늘어나는 사망자,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에 대한 반복되는 공격은 종전의 시급성을 보여준다며 “지금 일어나는 일은 끔찍하다, 우리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평화를 이루는 방법을 갖고 있다”며 “그는 이를 승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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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가 존엄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동맹을 잃느냐는 기로에 섰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종전안을 받으면 국가적 존엄이 무너지고, 받지 않으면 미국이라는 최대 동맹을 잃게된다는 의미이다.

젤렌스키는 이날 텔레그램에 올린 영상에서 우크라이나가 “역사상 가장 어려운 순간 중 하나에 직면다”며 이렇게 밝혔다. 그는 “지금 우크라이나에 가해지는 압박은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며 조국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존엄성을 잃거나 핵심 동맹국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거나, 어려운 조항 28개를 받아들이거나 혹독한 겨울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미국 및 모든 파트너와 차분히 협력하고 주요 파트너와 함께 건설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해, 트럼프의 종전안을 명백히 거부한다고는 밝히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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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는 이날 제이디 밴스 미국 부통령과 통화하고, 우크라이나를 방문 중인 댄 드리스콜 미국 육군장관과도 회담하고는 트럼프의 28개항 종전안 수용을 압박받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미국의 종전안을 환영했다. 푸틴은 이날 국가안보위원회 회의에서 이 종전안이 지난 8월 트럼프와의 알래스카 회담 전에 논의했던 것의 “새로운 버전”이고 “현대화된 계획”이라며, 러시아는 이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최종적인 평화해결책의 토대가 될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이 안을 반대하고 있고 이는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푸틴은 “문안은 아직 우리와 실질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며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동의를 지금까지 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반대한다”며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들은 명백히 아직도 환상에 빠져있고, 전장에서 러시아에게 전략적 패배를 가할 수 있다고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전역을 러시아에게 넘기고, 대신에 미국의 안전보장을 받는 것을 뼈대로 한 이른바 ‘28개항 트럼프 계획’을 마련해, 우크라이나 쪽과 협상해왔다. 이 종전안은 스티브 윗코프 미국 특사가 키밀 드리트리에프 러시아 특사가와 합의한 뒤 젤렌스키가 파견한 루스템 우메로프 특사의 많은 양해가 이뤄졌다고 액시오스가 보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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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코프 특사는 지난 19일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이 종전안을 놓고 젤렌스키 및 종전을 중재하는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교장관과 3자 회담을 가질려고 했으나 연기됐다. 미국의 한 관리는 젤렌스키가 우메로우가 한 합의에서 물러나, 28개항 계획을 추가적으로 논의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의 한 관리는 젤렌스키가 미국의 계획을 브리핑받으려고 우메로우를 파견했으나, 그가 그 계획의 조건들을 수용하지는 않았고, 많은 점에서 반대했다고 주장했다.

28개항 트럼프 계획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게 돈바스 전역 할양, 군 병력 축소, 장거리 무기 포기를 하는 대신에 자신과 유럽에 대한 미국의 안전보장을 받는 것이 뼈대이다. 전후 우크라이나 및 유럽에 대한 안전보장은 그동안 미국이 제공하기를 꺼려하던 것이었다. 미국은 종전이 되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보장은 유럽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 계획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아직 돈바스 지역에서 14.5%를 지키고 있으나, 이를 러시아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돈바스에서 우크라이나가 철수하는 지역은 러시아가 통제하나, 군사력을 배치하지 않는 비무장지대로 운영한다. 헤르손과 자포리자에서는 현 전선이 동결되나, 협상에 따라 러시아가 일부 영토를 반환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군 병력을 절반 이상 감축해 40만명 정도로 축소한다.

또 미국과 다른 나라들은 크림반도와 돈바스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나, 우크라이나가 이를 인정하도록 요구하지는 않는다. 미국이 제공하는 안전보장은 향후 러시아의 침략에 대해 방위를 약속하나, 그 이상의 구체적 사항은 아직 불투명하다.

액시오스와 시엔엔 등이 확보한 28개항 트럼프 계획 초안을 보면, 그밖에도 루한스크·도네츠크·크림·헤르손·자포리자 5개 지역 외에서 러시아의 영토 포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차단 등도 포함됐다. 또, 우크라이나의 전후 재건을 위한 국제 자금 조달, 트럼프가 의장으로 이끄는 평화위원회 설치 등 가자 지구 휴전 협상안과 유사한 내용들이 담겼다.

전날, 캐롤라인 레빗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평화계획 세부 내용에 대해 “아직 협상이 진행 중이고 유동적”이라며 “이 계획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좋은 계획이며 양측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안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트럼프와 푸틴은 지난 8월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우크라이나 종전협상에 합의했다. 당시 합의는 공개적으로 발표되지 않았으나, 트럼프는 “일종의 영토 교환”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전역을 러시아에게 넘기고, 러시아가 점령 중인 하르키우 등 동북부 영토를 반환받는 협상안이 예상됐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현 전선에서 전투동결을 강력히 주장해, 협상이 진척되지 않았다. 지난 10월에도 트럼프와 푸틴은 통화를 갖고, 헝가리에서 정상회담이 예상됐으나 무산됐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