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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칼럼

하와이에서 만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록 :2022-09-20 18:35수정 :2022-09-21 09:15

전세계 많은 사람이 이상한(extraordinary) 인물에 매혹된 건 질서의 바깥에 새로운 힌트가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 아닐까. 당대의 시스템이 세상의 균열을 감당하지 못할 때 새로운 길을 만드는 이들은 종종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왕왕 생각한다. 누가 인류를 구할지 모른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우석
일러스트레이션 김우석

김현아 | 작가·로드스꼴라 대표교사

# 이야기 하나.

하와이 마우이에 도착해 점심을 먹으러 ‘스타누들’이라는 식당에 갔다. 유명한 국숫집이라 사람이 많았다. 예약하지 않은 터라 한쪽에서 기다리며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백인 할아버지가 우리 쪽을 쳐다보았다. 내 말소리가 컸나, 목소리를 낮추어 소곤소곤 대화하는데 아예 빤히 우리를 바라보았다. 뭐지? 왜 저렇게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거지? 기분이 나빠진 내가 말하자 친구가 대답했다. 그러게요. 잘 안 그러는데. 하와이에 산 지 10년이 넘은 친구도 고개를 갸웃했다. 인종차별주의자인가? 그러고 보니 식당에 동양인은 우리뿐이었다.

인상을 찌푸리며 불평을 하려는 찰나, 어라 그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서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긴장돼 친구에게 빠르게 말했다. 무기 될 만한 거 있어요? 어찌할 틈도 없이 우리 앞에 다가선 할아버지. 실례합니다. 혹시 당신들이 쓰고 있는 말이 한국어인가요? 예측하지 못한 질문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그렇습니다만…. 할아버지가 활짝 웃었다. 아 역시 한국어가 맞군요. 긴가민가 유심히 들었어요. 한국어 참 듣기 좋은 말입니다. 내가 최근에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어요. 제목이 뭐더라. 여자 법률가가 나오는 건데. 친구와 나는 동시에 말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물론 친구는 영어로 ‘익스트로디너리 어터니 우?’(extraordinary attorney Woo) 아 맞아요. 우영우. 참 재미있습니다. 여자 주인공이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그제야 우리는 박수를 치며 웃었다.

이야기인즉슨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할아버지는 마우이에 휴가를 왔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우리가 하는 말이 한국어인지 아닌지 유심히 듣다가 확인해보고 싶어 말을 건 것이다. 한국어 참 아름답습니다. 고저와 장단이 유려하고 유럽의 어느 언어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할아버지는 여러번 한국어가 참 아름답다는 말을 했다. 한국에 와본 적이 있냐고 묻자 비행기를 갈아타느라 공항에 잠시 머문 적이 있다고 했다. 사실 한국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서 한국에 흥미가 생기고 있어요. 할아버지의 말에 친구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제 친구가 그 드라마 작가를 알아요. 할아버지의 눈이 커졌다. 정말? 아니라고 하기에는 할아버지가 너무 반가워했다. 아, 네, 뭐. 얼버무리자 그가 말했다. 작가에게 전해주세요. 아름다운 드라마를 써줘 감사하다고. 미국에는 그런 드라마가 없어요. 그러겠다고 얘기했다.

영감, 우리 차례예요. 어서 오라고요. 저쪽에서 할머니가 불렀다. 미국 민주당 이야기며 범죄 이야기로 넘어가 수다를 떨던 할아버지가 아쉬워하며 안녕을 고했다. 친구가 말했다. 우영우 힘이 센데요. 그러게, 그나저나 문지원 작가를 만날 일이 없으니 여기에라도 한 미국 시청자의 의견을 전한다.

# 이야기 둘.

먼 길 온 걸 환영한다며 하와이에 사는 친구들이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일본 음식을 파는 밥집에 모여 뭐 먹을까 차림표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주문을 받던 종업원이 서툰 한국말로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재미있어요. 친구 J가 한국말 잘하시네요 하자, 한국 드라마 보고 배웠다고 대답한다. 무슨 드라마 보냐고 물어보자 여자 법률가 나오는 그 뭐더라, 한다. 아, 익스트로디너리 어터니 우? 우리가 합창하듯 말하자 종업원이 엄지를 세워 올린다.

친구 H가 나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분이 드라마 작가를 알아요. 종업원의 눈이 커진다. 아, 네, 뭐. 어쩌다 나는 하와이에서 문지원 작가를 아는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다. 오, 종업원이 다시 엄지를 치켜올렸다. 넷플릭스 1위를 실감하겠는데요. 내 말에 J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은 그 나무 이야기 나오는 거 있죠, 소덕동 에피소드, 그걸 세번이나 봤어요. J의 남편은 하와이 사람이다. 재미를 느끼는 지점이 다르구나. 나는 그 편이 조금 긴장이 떨어졌는데. 오글거린다고 해야 할까. H가 말했다. 이게 글로벌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니까 감동의 지점이 다른 거 같아요. 모두 각자의 경험과 맥락에서 드라마를 시청하니까 공감의 포인트도 다양하달까. 그나저나 문지원 작가는 어떻게 알아요?

# 이야기 셋.

고백하자면 문지원 작가가 ‘원이’라는 걸 알고 너무 반가워서 나 저 작가 알아요 한 게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까 나는 작가가 ‘원이’로 불리던 10대 시절 하자센터에서 만난 게 전부다. 10대의 문지원 작가는 하자센터 죽돌이(학생)였고 나 또한 하자센터에서 글쓰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가끔 마주칠 기회가 있었다. ‘원이’는 그때도 영화를 만들었다. 어쩌다 나는 그이의 초기작을 두편이나 보는 행운을 누린 셈이다.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라는 공식 명칭 대신 하자센터로 더 자주 불린 이 공간은 ‘다른’ 생각과 ‘다른’ 꿈과 ‘다른’ 욕망이 용인되고 지지받고 발아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도전과 실험은 권장됐고 실패는 장려되었으며 ‘다름’은 존중받았다.

그러나 몹시 창의적인 그 교육시스템 안에 있던 사람들도 ‘원이’가 넷플릭스 1위에 해당하는 드라마 작가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전세계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는 오티티(OTT) 시스템이 등장할 걸 예측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므로 한 청소년이 장차 무엇이 될지 예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시시한 일인가. 기껏 우리가 아는 그 무엇이 된다는 의미일 테니.

원이가 문지원으로 등장하기까지 20여년,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붕괴 혹은 진화하고 있다. 전세계 많은 사람이 이상한(extraordinary) 인물에 매혹된 건 질서의 바깥에 새로운 힌트가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 아닐까. 당대의 시스템이 세상의 균열을 감당하지 못할 때 새로운 길을 만드는 이들은 종종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왕왕 생각한다. 누가 인류를 구할지 모른다. 제멋대로이고 한심하고 고집불통이고 내 맘대로 안 되는 저 아이가, 장차 세상을 구할 것이다.

# 이야기 넷.

나는 그라미가 조금 돌아이같이 행동할 때가 있지만 용기 있고 모든 것에 노력하는 사람 같다. 나는 또 최수현도 참 지혜롭고 좋은 사람 같다. 나는 우영우가 이렇게 말했을 때가 감동적이었다. “최수현 너는 봄날의 햇살이야.” 너무 감동스러워~. 최수현이 되고 싶다.

열살 한채민이 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감상문 중 일부다. 문지원 작가 드라마를 보고 자란 소녀들은 장차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인가. 다른 행성으로 이주한 사피엔스의 낯선 별 정착기 같은 걸 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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